[정재우의 오버타임] 쌍방과실을 일방과실로? FA 몸값 상한제의 한계

입력 2018-10-02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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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KBO 총재. 스포츠동아DB

정운찬 KBO 총재. 스포츠동아DB

한국시리즈까지 마치려면 앞으로도 1개월은 더 필요하다. 거액이 오가는 프리에이전트(FA) 시장은 그 뒤에 열린다. 아직 페넌트레이스 도중임에도 올해는 FA가 일찌감치 핫이슈로 떠올랐다. 얼마 KBO가 FA 몸값의 과도한 상승에 따른 부작용을 이유로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에 총액 상한제와 등급제 시행, 자격취득연수 단축을 골자로 한 FA 제도 개선안을 건넸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간 폭등한 FA 계약액은 KBO리그 전반의 연봉 인플레를 촉발하고, 그에 따른 구단 운영의 압박과 부정적 여론 형성이라는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FA 거품을 걷어내지 못하면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감돌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4년 총액 80억원’이라는 인위적 규제가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있는지에 대해선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제도개선을 통해 나름의 출구를 모색하려는 KBO와 각 구단의 노력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KBO리그가 극소수의 초고액 연봉자들을 위한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서도 곤란하다. 다만 방법에 있어선 좀더 정교하고 신중한 접근과 고민이 전제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최근의 FA 몸값 폭등을 ‘선수 탓’으로만 돌리는 듯한, 태생적으로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는 프레임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쌍방과실을 일방과실로 포장한 냄새가 풍긴다. 상한제라는 일종의 극약처방을 내놓았지만, 이런 한계를 내포한 개선안으로는 선수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FA 몸값 폭등의 당사자는 선수들만이 아니다. 그간 수십억도 모자라 백억이 넘는 뭉칫돈을 극소수 FA에게 안겨준 이들이 누구인가. 언론과 팬들을 상대로는 “FA 몸값이 과도하다”며 볼멘소리를 냈던 구단들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FA 몸값 상한제가 제대로 지켜질지는 의문이다.

과거 외국인선수를 대상으로 한 연봉 상한선이 유명무실해진 끝에 폐지된 이유 또한 일부 구단들이 현실론을 이유로 일찌감치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 ‘이적료를 원하는 메이저리그 구단과 협상할 때 필요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라도 존속시키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그 문제의 상한선이 내년부터 부활한다.

메이저리그는 KBO리그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의 시장이다. 그들은 우리보다 수십 년 앞서 비교하기도 힘든 수준의 연봉 인플레를 겪었다. 그에 따른 숱한 진통과 시행착오 역시 경험했다. 지금은 ‘사치세(Luxury Tax·전 구단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기준 연봉총액을 넘어설 경우 거두는 세금)’를 시행하고 있다.

1994년 시즌 도중이다. 메이저리그는 ‘샐러리 캡(Salary Cap·전 구단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연봉총액 상한)’을 도입하려다 이듬해까지 이어진 사상 최장의 파업으로 미국 전역을 들끓게 했다. 구단들이 담합해 인위적으로 몸값 거품을 빼려다가 극단적인 노사대치를 불러온 사례다. 물론 선수들도 거센 비난을 받았지만, 파업의 여파로 더 큰 타격을 입은 쪽은 구단들이었다. 샐러리 캡은 철회했고, 1995년 시즌도 팀당 162게임이 아닌 144게임으로 축소해 치렀다.

KBO와 구단들 또한 선수협이 상한제를 최종적으로 거부했을 때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은 있는지부터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다층적이고 복잡한 성격의 문제를 단순한 방식으로 풀 수 있으리란 환상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샐러리 캡에서 한 발 빼 (한결 시장친화적인 또는 온건한) 사치세를 도입한 메이저리그가 KBO리그의 ‘타산지석(他山之石)’일 수 있다.

정재우 전문기자 jac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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