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들의 수다①] 이정은 “‘아줌마1’서 ‘함블리’로 인생역전…화장품 광고도 찍었죠”

입력 2018-10-19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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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함안댁 역할을 맡아 활기를 불어넣어준 배우 이정은.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미스터 션샤인’ ‘아는 와이프’의 신 스틸러 이정은

내게도 애칭이 생기다니 신기했죠
사인 요청 쇄도…무슨 복인가 싶어
그래도 여전히 지하철 타고 다니죠

이한열 열사 사건 계기로 연기 입문
아직 미혼…열렬한 연애의 후유증
해외 진출 꿈…무술도 배우고 싶어


이정은(48)이란 이름은 낯설어도 ‘함블리’라고 하면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공블리’(공효진)과 ‘마블리’(마동석)에 이어 연예계 ‘파워 러블리’로 합류한 그는 어딜 가도 인기 만점이다. 푸근한 외모와 다정한 목소리, 누구라도 먼저 달려가 안기고 싶게 만드는 마성을 지녔다. 덕분에 영화와 드라마를 바삐 오가며 몸값을 높이고 있다. 최근 숱한 화제 속에 종영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애기씨’ 김태리의 정신적 지주이자, 엄마와 같았던 이정은은 TV 속과 똑같았다. 그렇다고 귀여운 외모만 보고 속단하면 큰코다친다. 1991년 연극 ‘한여름 밤의 꿈’으로 데뷔해 연기 경력만 28년째다. 그 연기 내공과 함께 넘치는 매력으로 안방극장을 휘어잡고 있다. 예전과 다르게 “사인 요청이 많아지긴 했다”고 해도, 여전히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그저 그 인기에 동승했을 뿐”이라는 그다.

배우 이정은.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미혼이지만 엄마 역할은 기분 좋은 일”

-데뷔 30년 만에 뒤늦은 조명이 아쉬울 만한데, 어떤가.


“연기자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연기에 대해 의심하게 된다. ‘이 일을, 이 캐릭터를 얼마나 열중해서 표현했나’ 하는 의문이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다. 그런 상태에서 누군가 호감을 표현한다고 해도 잘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작품이 성공적으로 끝나다보니까 ‘나도 폐 끼치지 않고 조화롭게 했나보다’ 하는 안도감이 생긴다.”


-‘미스터 션샤인’은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김은숙 작가가 영화 ‘군함도’를 보고 흥미롭게 생각했다고 하더라. 그 전에 출연한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에 출연한 모습을 보고 ‘도깨비’ 때 특별출연 같은 작은 분량을 주시려고 했다. 언젠가 서울 한남동 한 북엇국 집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깊은 호감을 표현해주셨다.”


-‘함안댁’을 왜 맡겼을까.

“요즘 두각을 나타내는 40대 후반 여배우들이 많지 않나. 그저 여주인공을 보좌하는 역할 같은데, 계속 당부하는 말이 ‘애신 애기씨’는 부모가 없기 때문에 엄마와 같은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했다. 아무래도 나이가 어린데 유난히 엄마 역할이 많이 들어와서 그런 이미지를 좋게 보셨나하는 생각이 들더라.”


-엄마라는 역할만 주어진다면 여배우 입장에서 걱정이 생길 수도 있는데.

“행복한 일이다. 그런데 제가 결혼도 안 했고, 육아 경험도 없는데 혹시라도 그런 경험을 가진 시청자들이 ‘저건 아니다’, ‘부족하다’는 생각을 할까봐 그게 걱정이다. 사실 그 역할을 맡았을 때 기분 좋다. 나에게 엄마의 토양이 존재한다는 거니까.”


-결혼도 안 한 딸이 엄마로만 출연하는데, 어머니는 뭐라고 하시나.

“엄마는 제 프로그램만 보신다. ‘네가 안 나오면 재미없다고. 하하하! 솔직히 여태까지 엄마 역할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조금 더 예쁘게 나왔으면 좋겠다’는 말만 하시다가 (한)지민 씨랑 같이 했던 ‘아는 와이프’를 보고 나서는 ‘참, 나랑 비슷한 면이 많구나’라고 하시더라. 뭔가 찡했다.”


-당신은 어떤 딸인가.

“지금은 다 좋아하시지만, 고등학교 때 걱정을 많이 하셨다. 공부를 꽤 잘했다. 평범하게 좋은 대학에 가서 공부할 거라 생각하셨는지 3학년 때 갑자기 진로를 바꿔서 연기하겠다고 했더니 많이 답답해하셨다.”


-연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

“당시 ‘이한열 열사’ 사건이 일어났다. 데모가 한창이었을 때 반 친구의 오빠가 고려대를 다녔다. 우리도 조의를 표하기 위해 검은 리본을 달자고 했다. 그게 학교에서는 가장 큰 사건이 됐다. 그때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 같은 게 생기더라. 어른들이 생각하는 대로 인생을 살면 재미없을 것 같았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생각해봤다. 어릴 때 앞에 나가서 장기자랑을 하고 좋아했던 게 떠올라 음주가무나 유희에 관심이 많은 걸 느끼면서 진로를 바꿨다.”

배우 이정은.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무언가에 온전히 흡수돼 있을 땐 언제나 전성기”

-광고도 2편이나 찍었다고 들었다. 올해 대운이 들었나.


“하하! 나도 놀랍다. 화장품 광고도 찍었다. 이런 거 생각하고 달려온 건 아닌데, 그저 신기할 뿐이다. 근데 내 역량보다는 어쨌든 좋은 작품에 참여해서 나에게도 기회가 오는 거다. 그 사람들의 명성이 하루아침에 쌓인 게 아니니까. 그들의 은혜를 많이 얻은 거다.”


-첫 광고였나.

“옛날에는 시안에만 참여했다. 그게 꼭 광고로 연결되지는 않더라. 그런 정도의 경험이지 이렇게 모델로 촬영하기는 처음이다.”


-광고는 대중들이 선호한다는 의미다. 인기의 척도이기도 하고.


“얼마나 놀랄 일인가. 옆집 아줌마처럼 생겨서 무슨 복인가 싶다. 조심스러우면서도 신나고 그렇다.”


-‘함블리’라는 애칭도 생겼다.

“진짜 깜짝 놀랐다. ‘오 나의 귀신님’에 출연할 때 연출을 맡았던 PD를 ‘유블리’라고 부른 적이 있다. 그 타이틀이 나한테 생긴 걸 보고 신기했다. 정말 매력 있는 애칭인 것 같다. 그전까지는 ‘서빙고’(‘오 나의 귀신님’ 때 서빙고 보살 역을 맡음)로 많이 불렸다. 그것도 작품의 영향이었다. 그저 아줌마1, 아줌마2 정도였는데 캐릭터가 생기니까 이런 반응도 받아본다.”


-캐릭터가 돋보일 수 있는 건 자신이 가진 매력이 더해져서이지 않을까.


“저는 인상이 둥글둥글해서 표정이 많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함안댁은 쪽진 머리를 해서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나서 그냥 귀엽게 봐주신 것 같다. 의외로 화면을 보면 가필드 같은 표정이 있더라. 만화적인 표현이 많아서 원래 별명도 가필드였다.”


-데뷔 후 첫 전성기가 온 건가.

“내 인생의 전성기가 언제일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대중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을 때도 그렇지만, 무언가에 온전히 흡수되어 있거나 작품에 몰두해 있을 때가 전성기인 것 같다. 그 사람이 가장 아름다울 때니까. 그런 의미에서 전성기는 이미 있었다. 앞으로 또 있을 거고. 시청자들에게 계속 사랑받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걸 계속 바란다면 욕심이다.”

배우 이정은.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20·30대에 열렬한 사랑, 지금은 나를 사랑하는 시간”

이정은은 1991년 연극 ‘한여름 밤의 꿈’으로 데뷔해 30년 가까이 연기를 해왔다. 하지만 2013년 드라마를 시작으로 방송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당시 연극 무대에 함께 오른 이들이 먼저 드라마와 영화로 발길을 돌린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늦은 출발이다. 연기에 대한 회의감이 들 수 있었던 시기에 그를 채찍질한 건 선배의 뼈아픈 한마디였다.

“한 선배님이 방송이나 영화로 가는 배우들은 출중한 연기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고 하셨다. 너는 연기가 부족하니까 지금 네 자리를 지키라고. 그 이야기가 고깝게 들리지 않았다. 1년 정도 고민하다가 그 다음에는 잊었다. 체력적으로 많이 소진되고 아프고 나니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다. ‘나는 정말 그런 쪽에 관심이 없을까’ 하고. 아니라는 걸 알고 그때부터 주변에 말하고 다녔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영화나 드라마라고!”


-말하고 다니면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나.

“진짜 입 밖으로 꺼내 말하고 다니니 되더라. 농담으로 할리우드에 가고 싶다고 했더니 목소리로 가지 않았나. 하하하! (영화 ‘옥자’ 속 ‘슈퍼돼지’ 옥자가 이정은의 목소리다) ‘옥자’가 미국에서 상영하는 걸 보고 더 놀랐다.”


-요즘 말하고 다니는 건 또 없나.

“지난해 일본 영화 ‘야키니쿠 드래곤’ 촬영을 위해 일본에 갔는데 재미있는 경험을 하고 돌아왔다. 현지 배우들과 작업하는 게 굉장히 재미있었다. 새로운 환경이 두렵고 무섭지만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언어는 통하지 않더라도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열정적으로 산다.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도 일 때문인가.

“20∼30대에 열렬한 연애를 했다. 40대가 되어서 정신을 차렸다고 할까. 그땐 정말 젊었다. 자유로운 영혼의 시대가 지나니까 나를 위해서라도 무언가를 해야겠더라. 내 시간이 별로 없었다. 지금은 저하고 사랑하는 거다.”


-먼저 마음을 표현하는 스타일인가.

“바로바로 말한다. 상대의 감정? 내 느낌이 중요하다. 상대가 싫다고 하면 그만두는 거지. 내가 언제까지 살지 모르는데 빨리빨리 더 많이 사랑해야한다. 지금도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그럴 것 같다. 사랑관은 변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인물이 좋은 사람이 좋았다면,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남자, ‘아는 와이프’에서 사위로 나온 지성 씨 같이 눈이 예쁜 사람이 좋다. 그런 남자 어디 없나.”


-연기 말고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진 분야가 있다면.

“몸이 받쳐주면 춤이나 무술을 배우고 싶다. 이소룡을 좋아하는 오빠의 영향이 크다. 연기를 가르쳤던 후배가 절권도 사부가 됐다. 그 친구의 도장에 7번 정도 나갔다. 스포츠댄스도 2년 반 정도 배웠다. 배우는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스포츠댄스도 상대와 ‘케미’를 살리기 좋을 것 같아 배우기 시작했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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