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리의 듀얼인터뷰] ‘완벽한 타인’ 감독·제작자 “우리 모습도 담겼죠!”

입력 2018-11-02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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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완벽한 타인’의 이재규 감독(왼쪽)과 제작자인 박철수 대표. 2015년 영화사 필름몬스터를 설립한 두 사람은 좀비물이나 히어로 장르 등 영화를 넘어 드라마 기획과 제작 등 다양한 시도를 준비하고 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영화 ‘완벽한 타인’의 이재규 감독(왼쪽)과 제작자인 박철수 대표. 2015년 영화사 필름몬스터를 설립한 두 사람은 좀비물이나 히어로 장르 등 영화를 넘어 드라마 기획과 제작 등 다양한 시도를 준비하고 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영화 ‘완벽한 타인’ 이재규 감독 & 제작자 박철수 대표

이재규 감독
박 대표한테 연출 시켜 달라 졸랐죠
제작비 없어도 촬영…난 천생 연출
돈 날릴 위기의 석호, 사실 내 이야기

박철수 대표
연출할 거면서 왜 내 허락 구했는지…
완벽주의 감독 덕에 좋은 작품 나와
요즘은 가장의 일탈 이야기에 끌려


근래 이런 한국영화는 없었다. ‘완벽한 타인’이 늦가을 극장가에 상쾌한 공기를 불어넣고 있다. 몇백억씩 쏟아붓고도 대동소이한 이야기와 메시지에 머무는 안일한 기획이 넘치는 최근 영화계에 모처럼 원석처럼 빛나는 작품이 탄생했다. 흥행의 바로미터로 통하는 SNS 반응도 뜨겁다. 눈 높은 관객은 기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덕에 예매율도, 관객동원도 상승세다.

‘완벽한 타인’은 친구 집들이에 모인 40년 지기 친구 부부들이 저녁식사자리에 모여 엉겁결에 휴대전화 게임을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식탁, 주방, 발코니가 배경의 전부인 데다 순제작비가 30억 원에 불과하지만 10월31일 개봉과 동시에 거센 입소문을 타고 있다. 기발한 기획과 탄탄한 시나리오, 최적의 배우 캐스팅을 넘어 전체를 아우르는 연출까지 흠잡을 곳이 없다.

‘완벽한 타인’의 연출자 이재규 감독(48)과 제작자 박철수 대표(47)를 개봉을 이틀 앞두고 만났다. 친구 사이인 둘은 2015년 영화사 필름몬스터를 공동으로 설립, 3년 만에 첫 작품을 내놓았다. 편하게 대화하는 평소와 달리 인터뷰 자리에선 깍듯이 서로를 ‘감독님’과 ‘대표님’으로 칭했다. “다른 게 많아 더 잘 맞는다”고 말하는 두 사람은 다양한 아이디어로 구현한 콘텐츠를 세상에 꾸준히 내놓겠다고 했다.


● 스타PD에서 영화감독으로, 투자배급사에서 제작자로

-인연의 시작이 궁금하다.



박철수(이하 박) “15년 전쯤? 내 고등학교 친구이자, 이재규 감독에게는 대학과 군대 동기인 친구가 있다. 영화에서 조진웅이 맡은 석호의 모델이 된(웃음), 성형외과 의사다. 그의 소개로 만나 서로 친구가 됐다.”

이재규 감독은 드라마의 역사를 새로 쓴 주인공이다. MBC ‘다모’부터 ‘베토벤 바이러스’ 등 숱한 히트작이 그의 손을 거쳤다. 영화로 눈을 돌려 2014년 ‘역린’을 연출했고, 4년 만에 신작을 내놓았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박철수 대표도 만만치 않은 이력의 소유자. CJ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본부장 등을 거치면서 10년간 60여 편의 영화가 그의 손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영화사를 함께 세운 건 새로운 도전을 향한 두 사람의 열망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이재규 감독은 “영화 연출자나 작가 중에 드라마를 하고 싶은 분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며 “내가 이미 경험했듯, 영화와 드라마가 크로스오버하면서 융합하는 길을 우리가 할 수 있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첫 작품이 나오기까지 3년이 걸렸다.


이재규(이하 이) “그동안 논 건 아니다. 하하! 처음엔 음악으로 초능력을 갖게 되는 청년이 주인공인 히어로물을 2년간 작업했는데 원하는 궤도에 오르지 않았다. 그 사이 고등학교 배경의 좀비드라마 각본 작업도 해왔고. 그건 내년이나 내후년쯤 TV 드라마로 만들 생각이다. 직접 연출도 하고. 또 내년엔 드라마 감독 두 명이 각각 연출하는 영화 두 편도 제작한다.”


-왜 ‘완벽한 타인’을 첫 작품으로 했나.


“처음엔 제작만 하려 했다. 원작(이탈리아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를 리메이크했다)을 보니 갑자기 연출이 하고 싶더라. 사람들의 관계가 재미있었다. 2010년에 연극을 연출했는데 그때의 경험을 묶으면 될 것 같았다. 제작자에게 ‘연출하게 해 달라’고 졸랐다.”


“좀 당황스러운 게…. 그냥 연출하면 되지. 왜 허락을 구하는지 이핼 못 했다. 하하!”

-유해진 조진웅 이서진에 염정아까지 캐스팅이 완벽하다.

“조진웅이 제일 먼저 캐스팅됐다. 무게 추 같은 역할이라 중요했다. 그 다음은 (유)해진 선배, 직후에 이서진이 됐다. 세 배우가 가진 본연의 성향과 영화 속 캐릭터가 전혀 다르다. 그래서 관객이 더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이서진도 자기 이미지처럼 똑똑하고 스마트한 바람둥이였다면 재미없었을 것이다. 단순무식한 바람둥이라서 흥미로워 하더라.”


-이서진과는 ‘다모’ 이후 15년 만의 재회인데, 왜 하필 이런 역할을.

“이서진도 농담처럼 이걸 자기가 잘할 거라고 생각했느냐고 묻긴 했다.(웃음) 그래서 내가 ‘재미있지 않느냐’고 했지.”

영화 ‘완벽한 타인’의 한 장면.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완벽한 타인’의 한 장면.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 “다투기도 하지만, 우린 상호보완의 관계”

‘완벽한 타인’은 한정된 시간, 한정된 공간에 머무는 커플 7명을 비추면서도 누구 하나 빼놓지 않고 각각의 인물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어떤 고민과 비밀을 가진 인물인지를 입체적으로 들춰낸다. 각자의 휴대전화가 한 번씩 울릴 때마다 드러나는 비밀이 결국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이어지지만 이를 심각하게 그리지 않는다. 블랙코미디의 정수를 보이는 영화는 코미디와 공포의 어디쯤에 놓인, 희한한 작품이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텐데.



“위험한 기획이지. ‘대학살의 신’이나 ‘키사라기 미키짱’ 같은 영화도 적은 규모로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마니아적인 영화잖아. 두려웠지만 한국 관객에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설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좀 더 간단히 말하면 싸움구경하고 불구경하는 거 다들 즐기지 않나. 관객은 딱 구경꾼이 되기만 하면 됐다. 모든 걸 그에 맞춰 조율했다.”


-친구에서 감독과 제작자의 입장으로 나뉘고 나서 갈등은 없었나.



“거의 매일 다퉜지. 하하! 대표님은 숲을 본다면, 나는 작고 세심한 것에 강하다. 적은 돈엔 엄청 밝은데 정작 큰 돈은 잘 모른다. 어떤 사안을 대할 때도 대표님은 굉장히 낙천적인 반면 나는 비관적인 현실주의자다. 대표님은 우울증 걸릴 일이 없는 성격이다.”


“왜 자꾸 본인을 낮추고 나를 띄우나. 감독은 스스로 학대하듯, 잠도 안 자고 계속 고민한다. 작은 것도 놓치지 않는 덕에 우리가 먹고 살지.(웃음) 낯간지럽지만 이번 작품이 만족스럽다. 감독의 완벽주의적인 면,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강박으로 가능한 결과다.”

“연출하면서 제작자의 입장까지 돼 보니, 안 좋을 때도 있다. 하나의 시선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두 개의 입장이 된다. 돈 생각하면서 연출 생각한다. 내가 좀 바보 같다.”


-‘바보’ 같다니?

“제작비를 전부 소진한 상태에서 한 장면 더 찍자고 대표를 졸랐다. 1500만 원이 필요했다. 회사에 돈 없는 걸 알면서도 계속 졸랐다. 영화 도입부 아이들이 얼음을 깨는 신이었다. 벽을 깨고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의미를 주고 싶었다. 결국 찍었다. 그렇게 고집 부린 걸 보니, 나도 천생 연출자인 모양이다.”

“절대 안 된다고 하다가 결국 설득당했지 뭐. 집요하게 조르니 이길 수가 없었다.”

-마지막 장면의 문구가 인상적이다(영화는 이런 문구로 끝난다. ‘인간은 누구나 세 가지 인생을 산다, 공적인 하나, 개인적인 하나, 비밀의 하나.’).

“몇 가지 문구로 관객의 생각이나 감상의 폭을 좁히는 게 과연 바람직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좋을 것 같아 고심 끝에 넣었다. 어떤 삶이 좋은가, 생각해볼 수 있지 않나. 다 문제를 안고 있지만 그렇게 사는 게 우리 모두의 삶이니, 죄책감 갖지 말라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물론 준모(이서진)처럼 나쁜 남자는 빼고.”

영화 ‘완벽한 타인’의 이재규 감독(오른쪽)과 제작자 박철수 대표.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영화 ‘완벽한 타인’의 이재규 감독(오른쪽)과 제작자 박철수 대표.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별일 없으면 백반 한 그릇 먹고, 두 시간 걷다 집으로”

두 사람은 인터뷰 내내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우리는 많이 다르다”는 말은 몇 번 꺼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영화를 보는 ‘눈’은 비슷하다.

“감독님과 나의 지향과 비전이 100% 일치하지 않지만 비슷하다. 우리는 상업적인 측면에서 좀 더 과감하게 트렌드를 따르는 도전을 할 거다. 할리우드 스타일의 상업영화도 구상한다. 좀비물, 히어로물, 우주영화들이다. 한쪽으론 더 클래식한 영화도 이어갈 생각이다. 인간, 우정, 사랑, 친구의 이야기를 우리만의 신선한 방식으로 접근할 계획이다.” (박철수)


-결국 다 하겠다는 건데.


“아! 실화나 실존인물 바탕의 이야기는 지양한다. 여러 부담이 따르는 일이니까. 드라마와 영화를 아우르는 콘텐츠를 통해 향후 OTT 시장을 향한 전략도 짜고 있다.”


-아이디어는 어디서 찾나.


“남에겐 보잘것없는 아이템이라도 우리만의 색깔로 소화하려고 한다. 사람의 다면성이나 관계를 다루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마찬가지다. 근본적인 것에 끌린다. 사람이란 무엇이고 관계란 무엇인지. 요즘은 공모전에서 떨어진 한 이야기에 끌리고 있다. 정년퇴직한 58세 가장의 일탈에 관한 이야기다. 꽂혀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게 시시하다고만 한다.(웃음)


-드라마를 떠나 영화에 도전한 것에 만족하고 있나.

“가끔, 술 한잔 할 때 계속 드라마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지금이 좋은 것 같다. 드라마에서 영화로 올 때 사실 지쳐 있었다. 드라마가 나빠서가 아니라 내 문제였지.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지금은 또다시 드라마가 하고 싶다. 그래서 앞서 이야기한 좀비 드라마 연출은 내가 한다. 50대에 좀비물을 한다는 게 좀 그렇지만.”

영화 ‘완벽한 타인’의 이재규 감독(왼쪽)과 제작자 박철수 대표.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영화 ‘완벽한 타인’의 이재규 감독(왼쪽)과 제작자 박철수 대표.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영화를 본 아내들의 반응도 궁금하다.


“아내는 원작부터 같이 봤다. 우리 영화도 3번 봤는데 상당히 재밌어한다. 나는 워낙 다 오픈하기 때문에 아내가 내 휴대폰 보는 것도 아무렇지 않다. 하하!”

“우리 둘 다 아주 가정적인 사람이다. 특별한 일 없으면 둘이 백반 한 그릇씩 먹고 두 시간쯤 걷다 집에 간다. 그게 우리 삶이지.”


“맞다. 대표님은 절반쯤 태수(유해진)고, 나는 절반쯤 석호(조진웅)다.”

영화에서 태수와 석호는 서울대를 나온 변호사 그리고 의사다. 성격은 정반대. 지나치게 가부장적인 태수와 달리 석호는 다정하고 가정적인 남편이다. 이 감독과 박 대표는 영화 주인공에 서로를 대입하더니, 성에 안 찬듯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사실 70% 정도 태수. 되게 고지식하거든.”


“나도 70% 이상 석호! 영화에서 석호가 돈 날릴 위기에 처해서 우울해하지 않나. 그건 내 이야기다. 다 공개할 순 없지만 사연이 좀 있었다. 딸과 대화하는 방식도 비슷하고. 우리 딸이 대학 1학년인데 미술 전공이다. 석호 딸 방에 장식된 소품들도 우리 딸 걸 가져다 썼다. 그러니 개인적으로 석호한테 더 이입이 된다. 하하!”

이재규 감독과 박철수 대표의 행보는 이제부터다. 감독은 좀비 드라마 외에도 루마니아와 태국 등지를 넘나드는 오락 첩보액션 영화 연출도 준비하고 있다. 일일이 밝히지 않았지만 상당한 양의 아이템을 차곡차곡 쌓아둔 이들이 출발선을 막 통과한 지금, 내놓는 바람이 있다. “활발한 기획과 고민을 통해 많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싶다”고 했다. 동시에 “중·저예산 영화를 적극적으로 만들고 싶다”고도 했다. 대작 일변도 한국영화에서 중급영화 혹은 저예산은 더 큰 모험이 필요한 일. 박 대표는 “우리의 도전을 가능케 할 근간은 ‘완벽한 타인’의 흥행에 따라 좌우될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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