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PS 최고 히트맨, 안우진표 ‘마구’의 비밀

입력 2018-11-02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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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히어로즈 안우진이 지난 10월 31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5회 SK 외국인타자 제이미 로맥을 삼진으로 잡은 뒤 힘차게 덕아웃으로 향하고 있다. 올해 가을무대에서 그는 연일 괴력투를 자랑하며 2018 포스트시즌 ‘히트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스포츠동아DB

2018 포스트시즌(PS) 최고의 ‘히트맨’은 고졸 신인 안우진(19·넥센 히어로즈)이다. 시속 150㎞대의 빠른 공과 슬라이더의 환상적인 조합으로 가을잔치를 수놓고 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구위와 안정된 제구력, 타고난 멘탈(정신력)은 넥센 구단이 6억원의 계약금을 안겨준 이유를 증명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10월 31일 SK 와이번스와의 플레이오프(PO·5전3선승제)에서 두 번째 투수로 등판, 4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는 등 올해 PS에서만 5경기에 등판해 3승1홀드, 평균자책점 0.60(15이닝 1자책점)을 기록하고 있다.

고졸 출신으로 입단 첫해인 1992시즌 팀의 PS 6경기에서 4승(2완봉승) 1세이브, 평균자책점 1.47의 괴물 같은 성적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염종석(롯데 자이언츠)을 떠오르게 한다.
안우진은 휘문고 시절 교내 폭력사건에 연루돼 구단 자체징계(50경기 출장정지)를 받았고, 5월 25일에야 1군에 진입했다. 강백호(KT 위즈)와 양창섭(삼성 라이온즈) 등 동기생들보다 1군 데뷔가 다소 늦었다. 정규시즌 성적도 20경기 2승4패, 평균자책점 7.19(41.1이닝 33자책점)로 그리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구위 하나만큼은 소위 ‘역대급’이라는 평가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났지만, 밸런스가 무너지는 모습을 자주 보였고 제구에도 약점을 드러냈다. 선수단과 함께 스프링캠프를 소화하지 못한 여파도 있었다.


● 숨어 있던 빅게임 피처, 발톱을 드러내다

정규시즌 성적이 썩 좋지 않았지만, 넥센 장정석 감독은 안우진의 긍정적인 면을 더 많이 봤다. 실제로 안우진은 빠른 공과 슬라이더의 ‘투 피치’에서 벗어나 커브와 체인지업까지 곁들이며 구종 다양화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장 감독은 “마운드에 오를수록 변화가 느껴진다. 이것저것 많이 시도하려는 모습이 좋았다”고 돌아봤다. 일찌감치 안우진의 PS 엔트리 합류를 결정한 뒤였다.

이 선택은 완벽하게 통했다. 안우진은 10월 20일 한화 이글스와 준플레이오프(준PO) 2차전부터 31일 SK와 PO 4차전까지 무시무시한 투구를 선보였다. 가을야구 데뷔전인 준PO 2차전에선 3.1이닝 무실점의 호투를 펼치며 19세1개월20일의 나이로 준PO 최연소 승리투수 신기록까지 썼다. 이후의 행보는 탄탄대로다. 팬들 사이에선 “안우진은 무실점을 담보하는 ‘치트키’ 같은 존재”라는 말까지 나온다. 굳이 여러 구종을 던질 필요도 없다. 시원시원한 강속구, 타자의 타이밍을 완벽하게 뺏는 슬라이더의 조합만으로도 ‘마운드의 왕자’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넥센 안우진. 스포츠동아DB


● 역회전? 투심? ‘짧은 슬라이더’의 비밀

4이닝 무실점의 호투로 승리를 따낸 PO 4차전에선 그간 자주 보여주지 않았던 구종에 관심이 쏠렸다. 5회 SK 김성현과 제이미 로맥을 상대로 던진 140㎞대 초반의 슬라이더가 그것이다. 종으로 떨어지는 기존의 슬라이더와 궤적 차이가 확연했다. 우타자인 김성현과 로맥의 몸쪽으로 짧게 휘는 궤적은 투심패스트볼(투심) 또는 체인지업을 연상케 했다. 이 경기 중계를 맡았던 이용철 KBSN스포츠 해설위원은 “정말 마음 먹고 저 구종을 던질 수 있다면, 그것은 마구가 아니겠느냐”고 감탄했다. 이때 함께 호흡을 맞춘 포수 주효상도 “처음 공을 받아보고는 직구인 줄 알았다. 그 정도로 구위가 엄청났다”고 혀를 내둘렀다.

구종은 투수 본인이 가장 잘 안다. 유희관(두산 베어스)을 예로 들면, 구종분석표에 체인지업으로 표기되는 공을 본인은 “싱커”라고 말한다. 한현희(넥센)의 슬라이더도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커브가 맞다. 본인도 “슬라이더가 아니라 커브다. 커브 그립을 잡고 구속에 변화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안우진에게 직접 ‘마구’의 비밀을 물었다. 그는 “기존의 슬라이더 그립을 잡고 던졌다”면서도 “힘이 떨어진 것 같아 릴리스 포인트를 조금 뒤에 두고 던졌다. 내 스스로 템포를 잃는 것 같아 여유를 갖고 던졌는데, 짧게 휘더라”고 설명했다. 이용철 위원의 평가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안우진의 슬라이더는 손끝에서 풀리기도 한다. 실투성 슬라이더인데, 그렇게 빠지는 공에도 타자들이 타이밍을 맞추지 못한다. 오히려 실투성 공도 무기로 바뀐다는 뜻이다.”

넥센 안우진. 스포츠동아DB


● 만족을 모르는 성격, 진화는 어디까지일까

안우진의 한마디에는 큰 울림이 있었다. “최고의 투수가 된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을 것 같다.” 만족을 모르는 성격을 보여준 한 단면이다. 정규시즌 막판 구종 다양화에 주력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일각에선 “큰 경기에서 어린 선수에게 너무 큰 짐을 짊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하기도 하지만, 안우진은 “이렇게 좋은 기회가 왔을 때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등판 다음날 조금 힘들긴 해도 정작 마운드에 오르면 문제없다”고 이를 일축했다.

투구 스타일도 바뀌었다. 스스로도 “처음에는 무조건 전력투구를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지금은 완급조절을 하며 상대 타자를 제압한다. 릴리스 포인트를 뒤에 두고 던진 슬라이더도 컨디션에 맞게 경기를 풀어나간 결과로 보면 된다. 정규시즌에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깨달은 바도 크다. “시즌을 치르면서 좋은 투수들을 보니 구속이 잘 나온다고 무조건 안 맞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이용철 위원의 말도 비슷하다. “직구의 완급조절이 가능하다. 시속 140㎞대 후반의 공으로 쉽게 카운드를 잡는데, 초구 스트라이크 비율이 80%가 넘는다. 슬라이더도 시속 140㎞대 초반에 형성되는데, 스스로 힘을 조절해가며 던지니 타자들이 타이밍을 맞추기 어렵다. 게다가 제구까지 잘된다.”

넥센 브랜든 나이트 투수코치는 “안우진은 처음 봤을 때와 비교해 정말 많이 바뀌었다. 슬라이더로 카운트를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엄청나게 향상했다. 공의 회전력이 좋아진 것도 안우진이 달라진 비결 가운데 하나다”며 “이번 PS 무대에선 ‘팬들의 함성을 부담스러워하지 말라. 그저 듣고 즐기라’는 말만 해줬는데, 정말 잘해주고 있다”고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마음가짐의 변화와 타고난 재능이 또 하나의 ‘빅게임 피처’, 안우진을 탄생시킨 셈이다.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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