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대역죄인입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어떤 비판이든 달게 받아야합니다.”
정의윤(32·SK 와이번스)은 이번 가을 유독 마음이 무거웠다. 팀 동료들은 마치 번갈아가듯 스타가 되며 플레이오프(PO)부터 한국시리즈(KS)까지 치르고 있지만 정의윤은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나있었다. 오히려 스스로를 ‘역적’이라고 칭하던 그다. 하지만 정의윤은 3안타 맹활약으로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벗어던졌다.
SK는 10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KS 5차전에서 4-1로 승리했다. 시리즈 전적 3승2패, 이제 남은 2경기에서 1승만 더 챙겨도 2010년 이후 8년만의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이날 결승타는 7회 김강민의 희생플라이었다. 그에 앞서 동점 적시타를 때려낸 김성현의 활약도 빛났다. 박정권이 8회 때린 달아나는 타점도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가장 화려한 별은 아니었지만 정의윤의 활약도 돋보였다. 정의윤은 이날 3타수 3안타로 활약하며 팀 승리에 발판을 놓았다.
정의윤은 2회 첫 타석에서 내야안타로 이날 경기를 시작했다. 타구 속도가 워낙 강했고, 시프트 탓에 2루 쪽으로 치우쳐 있던 유격수 김재호가 잡기 힘든 타구였다. 이어 5회에는 선두타자로 나서 중전 안타를 때려냈다. 강승호의 희생번트로 2루까지 향했지만 후속타 불발로 득점에는 실패했다.
가장 빛났던 장면은 7회다. 정의윤은 다소 힘이 떨어진 두산 선발 세스 후랭코프 상대로 좌전 안타를 때려냈다. 이날 세 번째 안타다. 정의윤은 대주자 김재현과 교체됐다. 김재현은 희생번트 때 2루로 향한 뒤 김성현의 적시타 때 홈을 밟았다. 동점을 만드는 안타를 정의윤이 때려낸 것이다.
정의윤은 넥센 히어로즈와 PO 3차전 2-3으로 뒤진 6회 1사 1·2루, 대타로 나섰지만 병살타를 기록했다. 3차전에서 쐐기를 박지 못한 SK는 5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펼쳐야 했다. 정의윤은 “내가 대역죄인이다. 사형감이다. 어떤 비난에도 드릴 말씀이 없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만회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KS 3차전에서도 좌익수로 나서 아쉬운 홈 송구 및 수비를 보였다. 여러 모로 안 풀리던 가을이었다. 그러나 이날 활약으로 정의윤은 비로소 웃었다. 비록 기대하던 장타는 안 나왔지만, 정의윤의 활약은 SK가 바라던 시나리오다.
인천 |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