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GA의 전성기를 함께한 전설은 앞으로 다가올 50년을 향해 당부를 아끼지 않았다. 14일 경기도 안산시 강욱순골프아카데미에서 만난 강욱순은 “프로는 팬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 후배들이 대중과의 스킨십을 통해 다음 50년을 이끌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안산|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그리고 50주년 기념관을 감격스럽게 바라본 또 하나의 전설이 있었다. KPGA의 전성기로 불리는 2000년대를 전후해 자타공인 1인자로 군림했던 강욱순(52)이었다. KPGA 코리안 투어 12승과 아시안 투어 6승에 빛나는 강욱순을 14일 경기도 안산시 강욱순골프아카데미에서 만났다. 이곳은 수년간의 노력 끝에 강욱순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지난해 3월 문을 연 골프 및 스포츠복합센터다. 이제는 ‘프로’보다 ‘대표’라는 직함이 더 잘 어울리는 강욱순은 KPGA의 반세기 역사를 돌아보며 “다음 50년은 이제 젊은 후배들에게 달려있다. 후배들이 지난 50년을 보며 한 뼘 더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 “잠시 추억여행에 잠겼다”
-최근 KPGA 50주년 기념관에 다녀왔다.
“현역시절 함께했던 선후배들과 기념관을 둘러보면서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오랜만에 추억여행으로 빠져든 시간이었다.”
-KPGA 창립 50년 만에 생긴 기념관이었다.
“사실 늦은 감이 있다. 속으로 ‘50년 만에 겨우 기념관이 생겼다’는 자책이 들기도 했다. 그나마 지금이라도 이렇게 역사를 기념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 다행이다. 그날 행사에는 현역 후배들이 자리하지 못했지만 이들이 꼭 기념관을 둘러봤으면 한다. 다음 50년은 이제 젊은 후배들에게 달려있다. 후배들이 이를 보며 한 뼘 더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지난 12일 경기도 성남시 KPGA 빌딩에서 열린 ‘KPGA 갤러리 개관식’에서 강욱순 프로가 자신의 기증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KPGA
-코리안 투어 데뷔가 1989년이다. 30년 역사를 경험한 산증인이다.
“현역으로 왕성하게 뛰던 1990년대와 2000년대는 KPGA의 전성기였다. 대회도 많고, 팬들 역시 많았다. 덕분에 선수들은 신이 나서 투어를 돌 수 있었다(웃음).”
-현역 시절 이야기를 잠시하면 아시안 투어 데뷔를 전후로 시기가 나뉜다.
“1995년 코리안 투어에서 첫 우승을 한 뒤 1996년 아시안 투어로 떠나면서 주변에서 말들이 참 많았다. 한국에서 더 뛰지 왜 벌써 해외로 나가느냐고. 그런데 사실 숨은 이유가 있었다. 당시 코리안 투어를 뛰면서 마음고생이 컸다. 소위 ‘배경’ 없는 시골(경북) 출신으로 연줄도 없고 인맥도 없었다. 그래서 그저 마음 편하게 골프를 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첫 우승 뒤 후회 없이 아시안 투어로 떠난 이유다.”
-어찌됐든 아시안 투어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물론 나 이전에 아시안 투어에 데뷔한 선수들이 몇 명 있었지만 ‘내가 개척자’라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승운이 따르면서 1996년과 1998년 두 차례 상금왕을 차지할 수 있었다.”
● “다음 50년을 위해선…”
3년간의 아시안 투어 생활을 마친 강욱순은 1999년 한국으로 돌아와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해 대상과 상금왕, 다승왕, 최저타수상(덕춘상)을 모두 휩쓸며 1인자로 등극했다. 이후 3년 연속 대상, 4년 연속 덕춘상 수상이라는 업적을 이뤄낸 강욱순은 2009년 마지막 우승을 끝으로 정상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지금의 코리안 투어는 당시 전성기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몇 년 전부터 코리안 투어가 침체기에 빠졌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스타플레이어의 부재다. 대중을 사로잡을만한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 어느 정도 성장이 됐다 싶으면 모두 해외로 나가버리니까…. 배상문은 미국으로, 김경태와 박상현은 일본으로, 최진호는 유럽으로 나가있다. 상황이 이러니 이렇다할 라이벌 구도도 형성이 안 된다. 여러모로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타개책이 있을까.
“개개인의 실력 향상도 중요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결국 선수들이 팬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팬이 없으면 프로는 존재할 수 없다. 사실 과거에는 팬의 소중함을 몰랐다. 그러나 이제는 이야기가 다르다. 긴밀한 스킨십이 있어야 KPGA의 다음 50년도 존재한다.”
-유망주 발굴도 중요한 문제다.
“요새 골프계 이곳저곳에서 유망주가 없다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출산율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클럽을 잡는 유소년 숫자가 더욱 줄고 있다. 그래서 요새 개인사업을 통해 유소년 확대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 14일 경기도 안산 강욱순골프아카데미에서 남자프로골프 강욱순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안산|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오늘 아카데미를 둘러보니 어린 친구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경기도와 안산시 등과 협력해 지역 초등학생들이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골프를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매학기 600명씩 매년 1200명의 학생들이 아카데미를 찾고 있다. 처음 이 프로그램을 추진할 때는 위험요소가 많다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지금은 학부모들이 더욱 좋아하고 있다. 위험성이 적은 스내그골프(플라스틱 채와 고무공을 활용한 유소년용 골프) 등도 인기가 많다.”
-사업은 힘들지 않은가. 골프를 즐길 시간도 없어 보인다.
“센터 건립을 위해 10년간 준비하면서 어려운 점도 많았다. 그래도 내 분야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내가 속한 종목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워낙 많이 돌아다닌 터라 살이 찔 시간도 없다.(웃음)”
인터뷰를 마친 강욱순은 이내 캐디백을 짊어지고 사무실 밖 연습박스로 향했다. 드라이버를 잡기 전 “현역 때보다는 거리가 덜 나간다”며 겸손해하면서도 이내 220야드 비거리를 뽐냈다. 내년에는 시니어(챔피언스) 투어를 본격적으로 뛸 계획이라는 이야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 생년월일=1966년 6월 2일 ▲ 신체 조건=신장 177㎝·체중 72㎏ ▲ 프로 데뷔=1989년 KPGA 입회 ▲ 입상 경력=KPGA 코리안 투어 12승(역대 6위), 아시안 투어 6승(국내선수 최다승) ▲ 수상 경력=코리안 투어 대상(1999~2001년), 상금왕(1999·2002년), 다승왕(1995·1999·2000·2002년), 덕춘상(1999~2002년), 아시안 투어 상금왕(1996·199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