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골 세리머니도 브랜드 시대 “스토리를 입혀라”

입력 2019-01-24 1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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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대표팀 김진수(왼쪽).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축구의 백미는 골이다. 골과 함께 세리머니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세리머니는 단순한 기쁨의 몸동작이 아니다. 그 속엔 나름의 사연이 있다. 행동에서도 의미를 담아야 감동도 오래간다.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바레인전(16강)에서 연장 헤딩골을 넣은 김진수의 세리머니가 화제다. 그는 골을 넣자마자 벤치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가며 무릎으로 슬라이딩을 했다. A매치 37경기 만에 첫 골을 터트린 ‘기쁨’을 날것 그대로 드러냈다. 결승골이어서 더 짜릿했다. 이어 공을 유니폼 속에 넣고 뽀뽀를 했다. 이 같은 행동은 대개 ‘임신’을 의미한다. 실제로 김진수의 아내는 현재 임신 19주다. 아내를 위한 세리머니였다. 또 동료들과 함께 등번호 16번이 적힌 유니폼을 펼쳐 보이며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이탈한 선배 기성용을 ‘위로’했다.

세리머니는 영어 셀러브레이션(celebration)의 우리 식 표기다. 요즘은 세리머니 하나로도 유명해질 수 있는 시대다. 그냥 흥에 겨운 뒤풀이만 할 게 아니다. 차별화된 스토리를 입혀야한다. 안정환의 반지, 박지성의 산책, 거스 히딩크 감독의 어퍼컷 등은 우리의 기억 속에 뚜렷이 남아 있는 감동적인 세리머니들이다.

안정환은 2002년 한일월드컵 미국전에서 골을 넣은 후 그 해 동계올림픽에서 할리우드 액션을 한 오노(미국)를 비꼬았고, 이탈리아와 16강전에서 골든 골을 넣고는 반지에 입을 맞추며 아내에게 사랑을 전했다. 박지성은 2010년 일본과 평가전에서 관중들을 바라보며 산책 나온 듯한 달리기로 상대의 기를 꺾었다. 히딩크 감독은 골 넣은 선수를 축하하는 듯 주먹을 불끈 쥐고 포효했다.

골 세리머니의 종류는 다양하다. 공중제비돌기나 코너 깃발 옆차기, 구두닦이, 쌍권총, 복싱, 악수, 춤, V자, 하트, 전화기, 젖병, 키스 등 평범함을 거부하는 동작들이 즐비하다. 그 중에서도 베베토가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선보인 요람을 흔드는 모습, 호나우두가 검지 손가락을 세우는 장면, 호날두가 높이 뛰어 올라 착지하며 팔다리를 뻗는 행동, 리오넬 메시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는 동작 등은 트레이드마크가 된 지 오래다.

규제가 없는 건 아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인종차별이나 정치적 의도의 세리머니를 금지하고 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때 박종우의 독도 세리머니가 대표적이다. 골 넣은 직후 유니폼을 벗는 등 과도한 행동도 경고를 받는다. 간혹 상대팀을 자극해 말썽을 빚기도 한다. 광고판을 뛰어 넘는 과격한 행동으로 부상당하는 경우도 있다.

골을 넣었다고 모두가 세리머니를 하는 건 아니다. 큰 점수차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골 따라붙었다고 즐거워하면 그게 더 이상하다. 또 한 때 자신이 몸담았던 팀과의 경기에서 득점했다고 너무 좋아해서도 안 된다. 대부분 예의를 지키기 위해 자제한다.

골 세리머니는 선수 개인의 기분을 극대화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팬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하는 하나의 장치다. 아울러 동료들과 함께 한다는 점에서 팀워크를 다질 수도 있다. 그래서 꼭 필요한 의식이다. 카타르와 아시안컵 8강전이 25일 열린다. 이번에도 태극전사들의 멋진 세리머니를 보고 싶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체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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