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축구대표팀 김진수(왼쪽).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바레인전(16강)에서 연장 헤딩골을 넣은 김진수의 세리머니가 화제다. 그는 골을 넣자마자 벤치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가며 무릎으로 슬라이딩을 했다. A매치 37경기 만에 첫 골을 터트린 ‘기쁨’을 날것 그대로 드러냈다. 결승골이어서 더 짜릿했다. 이어 공을 유니폼 속에 넣고 뽀뽀를 했다. 이 같은 행동은 대개 ‘임신’을 의미한다. 실제로 김진수의 아내는 현재 임신 19주다. 아내를 위한 세리머니였다. 또 동료들과 함께 등번호 16번이 적힌 유니폼을 펼쳐 보이며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이탈한 선배 기성용을 ‘위로’했다.
세리머니는 영어 셀러브레이션(celebration)의 우리 식 표기다. 요즘은 세리머니 하나로도 유명해질 수 있는 시대다. 그냥 흥에 겨운 뒤풀이만 할 게 아니다. 차별화된 스토리를 입혀야한다. 안정환의 반지, 박지성의 산책, 거스 히딩크 감독의 어퍼컷 등은 우리의 기억 속에 뚜렷이 남아 있는 감동적인 세리머니들이다.
안정환은 2002년 한일월드컵 미국전에서 골을 넣은 후 그 해 동계올림픽에서 할리우드 액션을 한 오노(미국)를 비꼬았고, 이탈리아와 16강전에서 골든 골을 넣고는 반지에 입을 맞추며 아내에게 사랑을 전했다. 박지성은 2010년 일본과 평가전에서 관중들을 바라보며 산책 나온 듯한 달리기로 상대의 기를 꺾었다. 히딩크 감독은 골 넣은 선수를 축하하는 듯 주먹을 불끈 쥐고 포효했다.
골 세리머니의 종류는 다양하다. 공중제비돌기나 코너 깃발 옆차기, 구두닦이, 쌍권총, 복싱, 악수, 춤, V자, 하트, 전화기, 젖병, 키스 등 평범함을 거부하는 동작들이 즐비하다. 그 중에서도 베베토가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선보인 요람을 흔드는 모습, 호나우두가 검지 손가락을 세우는 장면, 호날두가 높이 뛰어 올라 착지하며 팔다리를 뻗는 행동, 리오넬 메시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는 동작 등은 트레이드마크가 된 지 오래다.
규제가 없는 건 아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인종차별이나 정치적 의도의 세리머니를 금지하고 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때 박종우의 독도 세리머니가 대표적이다. 골 넣은 직후 유니폼을 벗는 등 과도한 행동도 경고를 받는다. 간혹 상대팀을 자극해 말썽을 빚기도 한다. 광고판을 뛰어 넘는 과격한 행동으로 부상당하는 경우도 있다.
골을 넣었다고 모두가 세리머니를 하는 건 아니다. 큰 점수차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골 따라붙었다고 즐거워하면 그게 더 이상하다. 또 한 때 자신이 몸담았던 팀과의 경기에서 득점했다고 너무 좋아해서도 안 된다. 대부분 예의를 지키기 위해 자제한다.
골 세리머니는 선수 개인의 기분을 극대화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팬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하는 하나의 장치다. 아울러 동료들과 함께 한다는 점에서 팀워크를 다질 수도 있다. 그래서 꼭 필요한 의식이다. 카타르와 아시안컵 8강전이 25일 열린다. 이번에도 태극전사들의 멋진 세리머니를 보고 싶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체육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