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애리조나] 이정후의 다짐, “이젠 아버지가 내 덕에 유명해지도록…”

입력 2019-02-28 05: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아버지 이종범의 전설적인 존재감 때문일까. 이정후가 야구를 시작했다는 것부터 이슈였다. 이정후는 ‘아버지 덕에 야구 편하게 한다’는 시선에 맞서기 위해 독해져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종범 아들이란 꼬리표도 즐기는 이정후다. 사진제공|키움 히어로즈

“이종범 아들이라는 말, 이제는 좋아요.”

이정후(21·키움 히어로즈)는 지난해 한화 이글스와 준플레이오프 도중 왼 어깨 부상을 당했다. 생애 처음 수술대에 올랐고, 올 5~6월 즈음 복귀가 예상됐다. 하지만 성실한 재활은 복귀 시계를 앞당겼다. 미국 애리조나주 투산의 스프링캠프에서 실전경기까지 소화하며 개막 엔트리 합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그를 만나 태극마크에 대한 애착부터 아버지 이종범 LG 트윈스 2군 총괄에 대한 진심을 물었다.


● 베이징 키드, 또 다른 한 세대를 그린다

이정후는 2017년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에서 처음 성인 대표팀에 발탁됐다. 이어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는 대체 선수로 뽑혀 금메달 획득에 앞장섰다. 아버지가 달았던 태극마크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이정후다. 이들 부자에게 태극마크는 마치 가업(家業)이다. 이정후는 태극마크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올해부터 줄줄이 열리는 국제대회에 모두 참가하고 싶다는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대표팀은 무조건 가고 싶다. 올 가을 열리는 프리미어12는 도쿄올림픽 예선이기도 하다. 일본도 최정예 멤버로 나선다고 들었다. 예선이 고척돔에서 열린다. 청소년 대표 때부터 지금까지 국제대회는 늘 원정경기였다. 한국 팬들의 응원을 받고 뛰어보고 싶다.”

2017년 입단한 이정후를 비롯해 지난해 입단한 강백호(KT 위즈), 양창섭(삼성 라이온즈), 한동희(롯데 자이언츠) 등은 이른바 ‘베이징 키즈’로 불린다. 전승 우승의 드라마를 썼던 2008베이징올림픽 당시 야구를 시작한 이들이 많아 붙여진 별명이다.

‘베이징 키드’ 이정후는 이제 또 다른 세대를 꿈꾼다. 자신과 또래 선수들이 활약해 또 한 번의 베이징 신화를 이룩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밝혔다. 그는 “도쿄 키즈를 만들기에는 내가 너무 어리다. 나와 또래들이 20대 후반에 접어드는 2024년쯤을 꿈꿨는데 파리올림픽에서는 야구가 퇴출됐다고 들었다”라며 “상관없다. 그 사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나 프리미어12가 있다. 거기서 우리가 잘한다면 야구 선수의 꿈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키즈가 생기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키움 이정후. 사진제공|키움 히어로즈


● 이제는 아버지에게 후광을 비추다

이정후는 프로야구 선수 가운데 아버지에 대한 질문을 가장 많이 듣는 이일 것이다. 아버지 이종범 총괄이 워낙 전설적인 선수였기 때문에, 그의 아들인 이정후가 야구를 시작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부터 이슈였다. 프로에 입단했을 때부터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던 것도 아버지의 역할이 컸다.

이는 이정후에게 일종의 낙인이었다. 이정후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 때문에 야구 편하게 한다’는 시선이 있었다. 그 때문에 더 독해져야 했다. 세상의 시선이 날 그렇게 만들었다. 독해지지 않으면 안 됐다”라고 털어놨다. 이정후가 아마추어 시절, 이 총괄은 아들의 경기장을 절대 찾지 않았다. 여느 학부모에게 일상인 ‘아들 경기 직관’이 그에게는 사치였다.

이들 부자에게도 한 가지 추억은 있다. 이 총괄이 한화 이글스 코치였던 2014년, 휘문고 1학년 이정후는 포항에서 청룡기 결승전을 치렀다. 낮경기를 마친 이 총괄은 대전에서 포항까지 부랴부랴 내려갔고, 이정후는 아버지 앞에서 멋지게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정후는 이때 추억을 이야기하며 생글생글 미소지었다.

그 낙인은 이정후 스스로 지웠다. 이제 ‘이종범 아들’ 이정후보다 ‘이정후 아빠’ 이종범이 더 익숙하다. 이종범 총괄이 은퇴한지도 어느덧 7년이 지났다. 그 사이 야구를 접한 이들에게 이 총괄은 전설 속 인물이다. 초등학생인 이정후의 사촌동생, 즉 이 총괄의 조카들만 해도 그렇다. 이정후는 “고모부가 야구를 했다는 것만 알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른다”며 “이제는 이종범 아들이라는 말이 좋다. 아버지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이제 아버지가 내 덕에 젊은 사람들에게 유명해졌으면 좋겠다”는 너스레까지 떨었다.

올해 이정후의 목표는 두 개다. ‘안 다치고 야구 잘하는 것’과 ‘아버지에게 고맙다고 말하기’다. 지난해 생애 처음 수술대에 올랐던 그에게 첫 번째 목표는 당연하다. 아직 아버지에게 제대로 된 감사 인사를 전하지 못했던 이정후는 올해만큼은 꼭 그 말을 꺼내겠다고 다짐했다. 세상의 시선에 맞서 독해졌던 소년은 이제 다시 여유를 찾았다.

투산(미 애리조나주)|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오늘의 핫이슈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