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42자, 요즘 인기곡들 ‘긴 제목’ 바람

입력 2019-11-23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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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모로우바이투게더. 스포츠동아DB

‘늦은 밤 너의 집 앞 골목길에서’,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 거야’…

시의 한 구절이 아니다. 요즘 한창 인기 있는 곡들의 제목이다. 입에 ‘착착’ 달라붙고 부르기 쉽게 한 글자 또는 두 글자로 된 단어로 곡의 제목을 짓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긴 제목이 유행하는 추세다. 짧은 게 9자 정도이고, 20자 가까이 된다.

가수들 가운데 긴 제목의 노래를 자주 부르는 것으로 유명한 잔나비가 2014년 발표한 노래 ‘사랑하긴 했었나요 스쳐가는 인연이었나요 짧지 않은 우리 함께 했던 시간들이 자꾸 내 마음을 가둬두네’는 총 42자다. 이들은 이후 ‘주저하는 연인들 위해’,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등을 내놓으며 사랑받았다.

긴 제목을 고집하는 가수들은 심지어 노래를 소개할 때 단어의 첫 글자만 따서 줄여 말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들의 뜻대로 노래를 표현한다. 최근 컴백해 장기간 음원차트에서 인기를 끌었던 악뮤(악동뮤지션)도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한 거지’라는 노래로 자신들의 음악적 색깔을 드러냈다.

평균 19세로 이뤄진 아이돌 그룹인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무조건 줄여서 말하는 젊은 세대에 해당하지만 특이하게도 데뷔 곡부터 최근 발표한 곡의 제목이 모두 10자가 넘는다. ‘어느 날 머리에서 뿔이 자랐다’와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너를 기다려’, ‘그냥 괴물을 살려두면 안되는 걸까’ 등의 제목을 통해 해맑고 순수한 소년미를 강조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데뷔 후 첫 1위를 기록한 남성 보컬그룹 노을 역시 ‘늦은 밤 너의 집 앞 골목길에서’로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냈고, 드라마 OST로 등장했던 장범준의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거야’로 장기간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

마마무. 스포츠동아DB


이뿐만 아니라 마마무의 신곡 ‘우린 결국 다시 만날 운명이었지’를 비롯해 전상근의 ‘사랑이란 멜로는 없어’, 마크툽의 ‘오늘도 빛나는 너에게’, 거미의 ‘기억해줘요 내 모든 날과 그때를’, 임재현의 ‘사랑에 연습이 있었다면’, 박혜원의 ‘차가워진 이 바람엔 우리가 써있어’, 펀치의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첸의 ‘사월이 지나면 우리 헤어져요’와 ‘널 안지 않을 수 있어야지’, 다비치의 ‘너에게 못했던 내 마지막 말은’ 등 긴 제목의 노래를 눈에 띄게 찾아볼 수 있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를 작사, 작곡한 이찬혁은 “사랑이나, 이별이라는 단어로 줄여서 곡의 제목을 정하면 (노래를 통해)전달하려는 느낌을 전해줄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온전한 한 문장의 제목 그 자체로 곡을 완성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을 역시 “대중가요가 거의 사랑이나 이별을 노래하지 않나, 단어가 아닌 문장으로 된 긴 제목이 낭만적으로 곡을 표현할 수 있는 장치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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