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11년 만에 주인 찾은 10번과 김연경 없어도 강했던 흥국생명

입력 2020-06-11 14: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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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박미희 감독(왼쪽)과 김연경. 스포츠동아DB

요즘 전화나 문자를 가장 많이 받고, 상대 감독들로부터도 부러움을 사고 있는 사람이 있다.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56)이다.

특급에이스 김연경(32)이 합류했다. “전생에 나라를 여러 차례 구했을 복을 타고났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물론 ‘역대급’이라는 초호화 멤버를 보유하고도 우승한다는 보장은 없다. 우승은 절로 오지 않는다. 박 감독은 주위의 높은 기대치를 충족시켜야 하는 부담감 속에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김연경의 입단 기자회견을 이틀 앞둔 8일 경기도 용인 흥국생명 훈련장을 찾았다. 가장 궁금한 김연경의 활용법부터 물었다. 박 감독은 “오랫동안 해외리그에서 생활하면서 몸도 마음도 지쳤을 텐데, 충분히 회복하고 힐링할 시간을 주겠다”고 말했다. 객지생활에 지친 딸에게 친정어머니가 건넬 법한 표현이다. 이어 “자기 스스로 알아서 코트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라 걱정하지 않는다. 천천히 준비해서 몸이 완전해졌을 때 합류하면 된다. 방송출연도 원하는 대로 다 하라고 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많은 얘기를 나누다보니 박 감독과 세간의 생각, 목표점을 보는 시선은 너무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김연경을 데리고 몇 경기 더 이긴다고, 우승한다고 해서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통합우승도 해봤고, 김연경 없이도 ‘봄 배구’에 갈 전력을 갖췄다. 김연경과 과거에 쌓아둔 감정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김연경도 좋은 결정을 했고, 우리도 있는 동안 최대한 편하게 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박 감독은 “김연경이 떠난 이후로 우리 팀에서 어느 누구도 10번을 달지 않았다. 이제 11년 만에 그 주인에게 10번을 돌려주려고 한다. 김연경은 한국배구의 큰 자산이니까 이제부터는 후배, 동료들로부터 존경받는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얘기했다. 김연경을 대하는 흥국생명과 박 감독의 진심이 담겨있는 듯했다.

귀에 쏙 들어온 표현은 “우리는 김연경 없이도 ‘봄 배구’에 갈 팀”이었다. 그만큼 지금의 멤버 구성에 자부심이 크고, 기존 선수들을 향한 무한신뢰가 엿보인다. 물론 사람들은 김연경이 가세하면서 생길 선수단 구성의 변화에 대해 더 궁금해 한다. 박 감독은 이 부분도 깔끔하게 정리했다. “만일 정말로 자기 배구인생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해서 이적을 원하면 언제든지 보내주겠다. 그렇지 않다면 모두 함께 하겠다”고 했다. 자신의 발언이 선수욕심으로 비쳐질까봐 내심 걱정하던 박 감독은 “내가 가장 필요했을 때 데려온 선수들이다. 함께 지내면서 많은 좋은 기억을 쌓은 선수들도 있다. 이런 선수들은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부연했다.

흥국생명 김연경. 스포츠동아DB

박 감독은 김연경의 컴백이 결정되자 이미 몇몇 선수들과 면담도 마쳤다. 선수들 각자의 깊은 속내를 들었다. 선수들도 분명 세계적 선수이자 우상인 김연경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고,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김연경 복귀와는 별로도 흥국생명의 비시즌 준비훈련은 치열하면서도 즐겁게 진행됐다. 선수들은 매일 오전 웨이트트레이닝, 달리기 등 체력훈련을 소화한 뒤 오후에는 부분전술을 익혔다. 수요일 오전에는 선수들이 가장 싫어하는 장거리 달리기도 있다. 야간훈련도 한다. 지금 가장 바쁜 선수는 공격수들과 새로운 호흡이 필요한 세터 이다영이다. 지난 시즌까지 팀을 이끌던 조송화와 비교해 공을 쏘아주는 타점과 패스 스피드가 다르기에 서로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이다영은 훈련시간이 끝난 뒤에도 따로 센터들과 자주 손발을 맞춰보고 있다. 박 감독은 “다른 팀에 있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속이 참 깊은 아이다. 사랑스러운 성격이고 동료들과도 잘 지낸다. 그동안 체력훈련을 많이 하지 않았는데 많이 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로 3년차 센터 이주아에 대해서도 “기량이 점점 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 감독은 “국가대표 일정이 없다보니 이재영, 이다영, 이주아가 처음으로 비시즌에 체력훈련을 하고 있다. 이전보다는 준비가 좋다”며 새 시즌을 기대했다. 흥국생명의 6월은 과거와 화해하고 새로운 시대로 발걸음을 내딛는 희망의 시기인 듯하다.

용인 |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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