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이숙경 작가의 ‘유쾌 상쾌한’ 대한민국 교인으로 살아가기

입력 2020-07-02 11: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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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교인으로 살아가기 (이숙경 저|엠오디)

“나의 사랑하고 사랑하는 통큰 하나님께 감사와 더불어 이사 보고 드립니다. 오늘 드디어 소파가 도착하여 이십여 일에 걸친 이사의 대장정이 끝났거든요. 그동안 그렇게 소원하던 이케아 책장이 생겼습니다. 수십 년 동안 쓰던 책장은 지인이 들고 갔습니다. 덕택에 수거비용을 줄였어요. 불빛이 따스한 LED 전구를 매단 스탠드 등도 생겼네요. 이것은 화장대 옆에 세워놓았습니다.”

‘36㎡ 국민 임대아파트에서 2년여를 살다가 51㎡ 국민 임대아파트로 이사하게 되면서 어느 통큰 천사의 통큰 후원으로 각종 입주 가구를 구입할 수 있었다’라고 각주까지 달아놓은 저자의 기쁨과 환희가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저자 이숙경은 2006년 매일신문, 경남신문 신춘문예단편소설 동시 당선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유라의 결혼식’, ‘1994, 테러리스트, 첼로’, 산문집 ‘자폐클럽’,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가로되’, ‘하나님의 트렁크’ 등을 냈다.
하지만 저자 자신은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서울에서 태어났다. 전방 100미터 안에 있는 교회를 수십 년째 줄기차게 다니는 중이다. 이 주님 저 주님 만나면서 고민하고 고생하고 고집부리면서 고통당하다가 어느 날 번쩍 눈이 떠져 ‘예수 따르미’의 즐거움을 누리며 살고 있는 사람”.

책 제목만 봐서는 꽤 딱딱하고 심오한 신앙적, 종교적 담론을 다루고 있을 것 같지만 책장을 여는 순간 긴장이 싸악 사라지고 만다. 새벽마다 어둑한 예배당 구석에 앉아 안 보이는 하나님을 옆자리에 앉혀놓고 울기만 하던 저자는 알 수 없는 꽃향기에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게 되고, ‘영혼 1도 없는’ 시체처럼 걷고 있던 자신이 어느새 미소 짓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나중에서야 자신을 한 순간에 슬픔에서 환희로 바꿔 놓은 꽃무더기가 물푸레나무 과에 속하는 라일락꽃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저자는 “그때 라일락 꽃향기는 하나님의 위로였다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썼다.

이 책에서 저자는 우울, 슬픔, 고통, 운명을 딱 한 번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첫 장 ‘라일락 꽃향기 맡으며’이다. 이후 사실상 마지막 장이자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대한민국에서 교인으로 살아가기’까지 시종 유쾌하고 상쾌하고 통쾌한 이야기로 달려 나간다.

풍족하지 않지만 풍족한 이야기, 슬프지만 어딘지 웃음이 배어나는 이야기, 맑은 소외됨의 이야기, 원망이 슬그머니 소망으로 바뀌어 버린 이야기들이 넉넉하진 않지만(이 책은 174쪽밖에 되지 않는다) 넉넉하게 담겨 있다.

시종일관 가볍고 유쾌하게 읽힌다고 해서 이 책의 무게마저 경량은 아니다. 교회의 변질, 교인의 변질 무엇보다 목회자의 변질에 대한 저자의 시선은 때때로 납덩이처럼 무겁다. ‘교(회)인’이 아니라 ‘기독교인’으로 살고 싶은 열망을 갖고 애증으로 범벅이 된 교회와 교인에 대한 이야기를 저자는 들려준다. 그저 착하기만 하고 순수하기만 하고 순종하며 교회를 다니고 있는 많은 교인들을 향해 저자는 ‘진정한 크리스천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누군가에게는 이 책의 이야기들이 한 기독교인의 ‘정신승리’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슬금슬금 읽으며 공감하며(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잔뜩 등장한다) 웃음을 터뜨리다보면 이 이야기들이 거저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당장 눈치 채게 된다. 걷다 쉬다 뛰다 넘어졌다 일어서서 다시 걸어 인생의 골짜기와 능선을 수도 없이 넘어본 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들은 누군가의 ‘정신승리’ 이야기가 아니라 힘겹게, 하지만 즐겁게 노래하며(찬송) 꿋꿋하게 삶에서 승리해 나아가는 이야기이다.
누군가에게 이 책은 슬픔을 환희로 일순간에 바꾸어줄 수 있는 라일락꽃향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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