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리카르도 핀토. 스포츠동아DB
16일 SK 와이번스의 외국인투수 리카르도 핀토는 ‘창조적인’ 보크 실점으로 KBO리그의 전설을 소환해냈다. 광주 KIA 타이거즈전에 선발등판한 핀토는 0-1로 뒤진 3회 1사 1·3루서 상상치 못한 행동으로 허무하게 추가실점을 했다. 나지완 타석에서 포수 이흥련과 사인을 주고받던 가운데 손에 든 공을 떨어트렸다. 이는 야구규칙 6.02 투수의 반칙행위 (a)보크 규정의 11번째 사례로 ‘투수판에 중심발을 대고 있는 투수가 고의 여부에 관계없이 공을 떨어트렸을 경우’에 해당된다. 나광남 주심이 이를 놓치지 않았고 즉시 보크를 선언해 3루주자 유민상이 홈을 밟았다.
좀처럼 보기 힘든 상황은 29년 전의 전설을 기억나게 했다. 당시 롯데 자이언츠 소속이던 고 박동희다. 1991년 그는 삼성 라이온즈와 준플레이오프(준PO) 3차전에 등판했다. 1승1패로 맞선 가운데 9월 25일 대구시민구장에서 벌어진 경기다.
삼성은 1차전 선발 성준을 3차전에 또 내세웠으나, 1회 김민호에게 2점홈런을 허용하자 즉시 재일동포 김성길을 호출했다. 롯데도 2-1로 앞선 2회 2사 3루서 선발 김태형이 흔들리자 1차전 선발로 패전을 안았던 박동희로 교체했다. 박동희는 강병철 감독의 기대대로 2회를 잘 막았지만 3회 상상도 못할 실점을 했다. 1사 3루서 류중일과 풀카운트 대결에서 6구째를 던졌으나 너무 긴장한 나머지 공을 손끝으로 채지 못했다. 결국 손에서 공은 떨어졌고, 보크가 선언됐다.
황당했지만 그 실점 이후 박동희는 전혀 다른 선수로 돌변했다. 무려 10.2이닝 동안 15개의 삼진을 기록하며 5안타 1실점으로 역투했다. 1989년 해태 타이거즈-빙그레 이글스의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선동열이 기록한 14개를 뛰어넘는 포스트시즌 한 경기 최다 탈삼진 신기록이었다. 연장 13회, 4시간 32분간 펼쳐진 3차전은 박동희의 역투에도 불구하고 3-3으로 비겼다. 상대했던 김성길도 12.1이닝을 8안타 1실점으로 버티며 전설의 투수전을 완성시켰다.
3회 허무한 보크 실점과 이후 타자를 압도했던 무시무시한 피칭은 투수 박동희의 2가지 얼굴을 동시에 보여줬는데, 이후 언론은 그를 ‘슈퍼 베이비’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그 애칭을 만든 이는 고 이종남 야구전문기자였다.
1991년 준PO는 사상 처음 4차전으로 이어졌는데, 이 준PO에서 눈여겨볼 기록을 만든 또 다른 전설도 있다. 류중일이었다. 1차전 6회 승리에 쐐기를 박는 홈런을 때린 데 이어 2차전 9회 2점홈런(상대는 롯데 김종석으로 현재 LG 투수 김대유의 아버지), 3차전 1회 솔로홈런, 4차전 8회 연속타자 홈런 등 포스트시즌 4연속경기 홈런의 대기록을 세웠다. 이는 1981년 7월 17일 고교야구 4강 초청대회 결승전에서 잠실구장 개장 첫 홈런과 더불어 류중일 LG 트윈스 감독이 가장 자랑하는 선수시절의 기록이다. 당시 경북고 류중일은 부산고와 경기에서 6회 홈런을 때렸는데, 그 때도 상대 투수는 김종석이었다. 류 감독이 김대유에게 “아버지가 좋은 투수였다”고 자주 말했는데 그 이유가 정말로 궁금하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