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의 세월, ‘영화하는 여자들’이 걸어온 길

입력 2020-09-07 12: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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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여성영화인모임

“미스 심”과 “미스 채”로 불렸다.

영화 ‘접속’ ‘공동경비구역 JSA’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카트’ 등을 제작한 명필름 심재명 대표와, 영화 ‘쉬리’로 한국영화 홍보마케팅의 새로운 차원을 제시한 홍보마케팅사 채윤희 대표.

1987년 서울극장 기획실에 갓 입사한 스물다섯 살의 심 대표와 양전흥업 기획실장으로 일한 채 대표는 당시 남성들이 장악했던 충무로에서 그저 많은 “미스”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비쳤다.

“여성을 전문 인력으로 존중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던 때였다. 영화계 숱한 남성들뿐 아니라 스스로도 “젠더 감수성이 부족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후 30여년 동안 한국영화계 대표적인 제작자와 홍보마케팅 전문가로 각자의 영역을 구축해왔다.

이들과 함께 많은 여성들이 제작, 연출, 연기, 촬영, 조명, 미술, 사운드, 편집, 홍보마케팅, 영화제 프로그래밍 등 영화계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기까지 적지 않은 좌절과 성차별의 구조적 환경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럼에도 새로운 도전에 나서며 한국영화계 우뚝한 존재감을 쌓아가고 있다.

채윤희 대표와 심재명 대표가 150여명의 여성 영화인과 함께 만든 2000년 ‘여성영화인모임’이 그 전진기지로서 작지 않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최근 ‘여성영화인모임’이 주진숙 한국영상자료원장과 이순진 영화사 연구자를 통해 영화계 여성 영화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집 ‘영화하는 여자들’(사계절)을 내놓았다.

‘영화하는 여자들’은 채윤희·심재명 대표를 비롯해 강혜정(제작), 임순례·윤가은(연출), 전도연·문소리(연기), 박곡지·신민경(편집), 류성희(미술), 최은아(사운드), 남진아(촬영 및 조명), 김일란(다큐멘터리), 김영덕(영화제 프로그래밍) 등 20여 여성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기회는 불평등하고 성적 폭력도 근절되지 않”은 환경이지만 “이제 더 이상 영화 현장에서 여성이 꿈꿀 수 없는 분야는 없”어진 “변화를 가능하게 했던 여성 영화인들”이다.

이들은 1990년대부터 2010년 이후까지 당대 한국영화를 이끈 힘과 그 과정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과 좌절, 성취와 도전을 말했다.

각 시대를 나눈 ‘소외의 벽을 넘어 눈부신 성취로’, ‘더 넓고 더 깊게, 전문가들의 시대’, ‘단단한 자기 중심과 새로운 감수성’이라는 제목은 바로 그것을 그대로 대변한다.

이들은 “연대와 협업의 중요성을 힘주어 이야기”하며 “훌륭한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잘못된 구조와 관행에 도전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고 다짐한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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