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우리카드 하승우, 마침내 벼랑 끝에서 살아남다

입력 2020-12-02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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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카드 하승우. 스포츠동아DB

우리카드 하승우. 스포츠동아DB

10월 17일 대한항공과 홈 개막전 패배 후 우리카드 신영철 감독은 팀 미팅을 소집했다. 그날 우리카드는 대한항공 정지석에게 한 경기 최다블로킹 타이기록(11개)을 내주는 등 무려 25개의 블로킹을 허용했다. 공격이 차단되면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사람은 세터다. 자신이 올려준 공에 문제가 있었다고 자책하기에 충격이 크다.

사실 그날 우리카드 하승우(25)의 연결은 불안했다. 상대에게 자주 읽혔고, 정확성도 떨어졌다. 볼 끝도 밋밋했다. 명 세터 출신으로 누구보다 세터의 심리상태를 잘 아는 신 감독은 “너 어떻게 할래.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부진의 이유가 기술이 아닌 멘탈의 문제라고 판단했기에 신 감독이 듣고 싶었던 얘기가 있었다. 한참 뒤 하승우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라는 정답을 말했다. 신 감독은 세터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간판 공격수 나경복과 알렉스에게도 “1-1 상황을 만들어줬으면 반드시 점수를 내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정신적 충격은 의외로 오래 갔다. 입으로는 자신있다고 외쳤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마음속 깊은 어딘가에 불안감과 실패의 두려움이 남아있었다. 자신감을 담지 못한 세터의 손끝에서 나온 연결은 위력이 떨어졌다. 공격수가 정점의 타점에서 편안하게 때릴 정도로 공 끝이 살아나지 않았다.

평소라면 하지 않을 실수도 나왔다. 긴장이 지나쳐 시야가 좁아진 하승우는 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을 택했다. 비 시즌 동안 주전 세터로 내정해 공격수와 많은 훈련을 소화한 하승우가 흔들리자 우리카드도 비틀거렸다. 신 감독은 시즌 계획을 수정해 이호건을 대안으로 선택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진퇴양난이었다.

고민 끝에 신 감독은 11월 24일 대한항공전을 앞두고 다시 하승우를 불렀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해라. 배구기술을 떠나 마음의 문제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자신이 없으면 그만두고 집에 가라”고 했다. 신 감독은 사실상의 최후통첩을 하면서 “오늘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빼지 않는다. 자신 있게 할래”라고 물었다. 벼랑 끝에 선 하승우는 “자신있다”고 답했다.

그날 3세트 도중 나경복이 부상을 당해 우리카드는 낭패를 겪었다. 어수선한 상황을 극복하지 못한 팀은 결국 패했다. 그나마 위안을 준 것은 하승우였다. 가능성을 보여줬다. “몇 번의 연결을 제외하고는 괜찮았다”고 신 감독은 평가했다. 16번의 속공연결 중 9개가 성공했다. 이제 많은 것이 보인다는 뜻이었다. 27일 현대캐피탈전 때는 속공이 무려 20번이었고, 11개가 성공했다. 중요한 공격옵션 나경복이 빠져 세터가 만들 플레이가 줄었지만, 하승우가 평상심으로 돌아왔다는 신호는 여기저기서 보였다.

12월의 첫날. ‘울지 않던 새’가 마침내 울었다. KB손해보험 레프트의 낮은 높이를 고려해 빠르고 정확한 패스로 라이트 알렉스의 장점을 충분히 살렸다. 그 덕에 우리카드는 손쉽게 주도권을 잡았다. 여유가 생긴 3세트에 하승우가 보여준 배분은 완벽했다. KB손해보험전을 마친 뒤 하승우는 “아직 내 플레이는 50점”이라고 박하게 자평했지만, 알렉스는 “실력이 있는 선수다. 자신을 믿어도 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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