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농부가 된 고집불통 지휘자의 흙냄새 나는 음악 이야기

입력 2020-12-28 08: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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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은 사랑입니다 (홍준철 글 / 이종희 그림 / 예솔)

‘지휘자 홍준철’, 이라고 한다면 ‘성공회대’와 ‘음악이 있는 마을’이란 키워드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만다.

이 책의 저자 홍준철(62)씨는 지휘자, 그중에서도 합창단의 지휘를 해 왔다. 많은 합창단을 지휘했지만 그 중에서도 이 두 곳은 각별하다. 성공회에서는 30년간이나 성가대 지휘를 했고, 합창단 ‘음악이있는마을’은 직접 창단해 은퇴할 때까지 22년 간 함께 한 까닭이다.

포디엄에서 내려온 저자는 2018년, 교수직과 지휘자직을 사임하고 전남 고흥으로 퇴촌해 텃밭을 일구며 글을 쓰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 책 ‘음악은 사랑입니다’의 부제는 그래서 ‘농부가 된 합창지휘자의 그림 에세이’다.

이 책은 총 84편의 짧은 글들을 담고 있다. 저자가 40대부터 환갑을 넘긴 현재에 이르기까지 쓴 글들을 발췌한 조각글들이다. 저자는 “가장 왕성했던 시기에 쓴 음악에 관한 글의 요약본이기도 하고, 나의 음악철학을 이루는 뼈대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그림 에세이’답게 글만큼이나 그림이 다수 수록되어 있는데, 글과 그림이 손깍지처럼 짝짝 들러붙는다. 그림은 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재직 중인 이종희씨의 작품이다. 글과 그림의 두 저자는 한국북소리합창단에서 지휘자와 테너 단원으로 만나면서 인연을 맺었고 급기야 “합창음악에 관한 글을 모으고 그림을 그려 책으로 내자”고 의기투합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책 속의 글과 그림은 때때로 음악처럼 울린다. 글이 지휘하면 그림이 노래로 화답한다. 글이 주제를 연주하고 그림이 화음을 넣는다. 종종 글과 그림이 닮은 듯 다른 주제를 따로 노래하기도 하는데, 그게 또 묘하게 매력적으로 읽힌다.

84편의 글은 음악에 대한 이야기지만 세상과 인생에 대한 지혜로 가득하다. 대부분 훈훈한 온기를 품고 있지만, 종종 뾰족한 얼음조각처럼 서늘하다. 음악 바깥세상 사람들에게는 ‘음악인을 더욱 존중하고 사랑해달라’고 호소하면서도, 정작 음악 동네 사람들에게는 ‘정신 차리라’며 뜨끔한 일격을 가차없이 날린다.

“빈 공간이 음표보다 더 많은 말을 하고 있는 게 음악입니다.”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관객에게 밥 한 그릇 지어 대접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만들어진 음악의 모습은 연주자인 나입니다. 음악이 겉멋 들었으면 내가 뻐기려 한 것이고, 누더기가 되었으면 내가 대충 연습을 한 것이며, 말라비틀어지고 죽어 있다면 내가 사랑을 담지 못한 것입니다.”
“반은 ‘나는 너다’가, 반은 ‘나는 나다’가 존재하는 절묘한 시점에 합창이 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대는 신의 정원입니다.”
“음악가는 음악이 내 몸 안에 들어오고, 다시 생명력을 얻어 몸 밖으로 나가는 과정을 통해, 내 안의 더러움이 묻어 나가지 않을까 두려워해야 합니다.”

음악보다 문학을 더 열심히 연구한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작가의 문장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외국인들이 읽어도 어렵지 않을 쉬운 문장을 사용해 음악의 정수를 꿰뚫는 작가의 솜씨는 그의 지휘를 닮았을 것이다.

PS. 저자에 따르면 이 책의 처음 제목은 ‘음악은 사랑이다’였다고 한다. 이후 상당히 파격적으로 ‘귀신 씻나락 까먹는 합창이야기’가 되었다가 결국 ‘농부가 된 합창지휘자의 그림에세이, 음악은 사랑입니다’라는 순한 제목으로 정해졌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두 번째 제목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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