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9년만의 용기’ KT 주권의 진짜 바람과 KBO 총재의 첫 업무

입력 2021-01-13 1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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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조정 향한 선수들 인식, “해봤자 안 될 텐데”
유명무실하던 제도에 숨결, 공정한 조정위원회 필수
선수들 바람은 승리 아닌 자유로운 권리행사 분위기


9년째 유명무실하던 제도가 모처럼 제 기능을 찾았다. 연봉조정이라는 네 글자 위 잔뜩 쌓인 먼지를 걷어낸 이는 주권(26·KT 위즈)이다. 이제 공은 KBO가 꾸릴 연봉조정위원회로 넘어갔다. 선수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겠다고 밝힌 정지택 KBO 신임 총재의 취임 첫 업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주권은 11일 KBO에 연봉조정을 신청했다. KT는 지난해 1억5000만 원이었던 주권의 연봉을 2억2000만 원(인상률 46.4%)으로 책정했다. 하지만 주권이 원하던 금액과 차이가 뚜렷했다. 주권은 연봉조정을 신청하며 희망금액으로 2억5000만 원을 적어냈다. 양측은 18일까지 각자 원하는 연봉 산출 근거자료를 제출해야 하며, KBO 총재가 구성하는 조정위원회는 25일까지 결론을 내야 한다.

마지막 조정위원회는 2011년 1월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때 열렸는데 KBO 내부인사와 구단 프런트 출신이 2명씩 포함됐다. 당시에도 구단에 유리한 인사들을 중심으로 꾸려졌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정량적 지표보다 정성적 지표를 중심으로 판단했다는 평가도 남아있다.

선수를 평가하는 지표는 연봉조정위원회가 열리지 않았던 10년간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우리 팀이 올해 힘들다. 이번만 봐줘라” 등 감정에 호소하는 전략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KT와 주권 양측 모두 각자가 판단한 세밀한 지표를 통해 연봉 산정 근거를 설명할 참이다. 선수 입장에서도 에이전트 제도의 도입으로 조정을 준비하기 한결 수월해졌다. 주권 측에선 유주자 시 등판, 1~5번 상위타선 상대 횟수 등 다양한 지표를 근거로 내세울 예정이다.

양측의 세밀한 주장을 판단할 조정위원회의 중요성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KBO리그에 비해 연봉조정이 빈번한 미국 메이저리그의 경우 해당 선수와 선수노조, 구단이 모두 동의한 변호사 3명이 조정위원회를 꾸린다.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적어도 선수가 주장하는 바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인사가 주축이 돼야 한다.

KBO도 달라진 시류를 인지하고 있다. 아직 조정위원회 구성 윤곽이 드러나진 않았지만 선수와 구단 양측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인사들로 꾸릴 생각이다. KBO 관계자는 “객관적 시각으로 양측 입장을 판단할 수 있도록 조정위원회 구성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권이 원하는 것은 3000만 원이 아니다. 본인을 계기로 연봉조정을 바라보는 분위기가 달라지길 원하고 있다. 역대 조정위원회가 열린 20번 중 선수가 승리한 사례는 단 한 번뿐이다. 3년 전 연봉조정을 고민하다 포기한 수도권 A팀 선수는 “과거 사례를 보면 선수 측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어차피 패할 거면 몇 천만 원 때문에 구단과 척을 지고 싶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답이 정해진 회의는 시간과 감정만 낭비하게 된다. 적어도 연봉협상의 한축인 선수들이 느끼는 제도는 이랬다. 선수협은 13일 공식입장을 내 중립적 조정위원회 구성을 촉구했다.



정지택 KBO 신임 총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KBO를 이끌어가는 하나의 축인 선수들의 의견은 최대한 경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선수들이 진짜 바라는 것은 연봉조정을 통한 승리가 아닌, 규약이 정의한 선수의 권리를 눈치 보지 않고 행사할 수 있는 분위기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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