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김다솔 김하경 동기생 보조세터 인생의 게임 앞에 서다

입력 2021-03-23 10: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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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김다솔(왼쪽), IBK기업은행 김하경. 스포츠동아DB

흥국생명 김다솔(왼쪽), IBK기업은행 김하경. 스포츠동아DB

어떻게 하다 보니 흥국생명-IBK기업은행의 2020~2021시즌 플레이오프(PO)는 두 팀 보조세터 김다솔과 김하경의 맞대결이 돼버렸다. 보조세터는 고달픈 자리다. 주전세터와 똑 같이 훈련하지만 경기 때 출발은 항상 웜업존이다. 다른 포지션은 코트를 밟을 기회라도 자주 있지만 세터는 특수포지션이라 어지간해서는 바뀌지 않는다. 간혹 그런 일이 생겨도 경기가 풀리지 않을 위기상황에서만 이뤄진다. 그래서 기다림이 숙명이 보조세터는 더 어렵다.

김다솔은 2014~2015시즌 수련선수로 입단했다. 이재영이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었던 때다. 모기업이 운영하는 사학재단인 세화여고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해 뽑은 선수였다. 3년 선배 조송화를 돕는 역할로 6년을 보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조송화가 떠나자 이다영이 자유계약(FA)선수로 왔다. 모든 보조세터의 꿈인 주전으로 뛸 기회가 영원히 사라질 뻔했지만 인생은 참으로 변화무쌍했다. 팀 내부의 이런저런 사정과 학교폭력으로 이다영이 갑자기 빠지면서 주전세터가 됐다.

웜업존에서는 잘 몰랐지만 주전세터는 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많은 동료들의 요구를 일일이 받아줘야 했다. 실수 없이 공을 잘 올려줘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5라운드부터 흥국생명의 경기가 롤러코스터를 탄 이유였다. 박미희 감독은 “지금은 무엇을 주문해도 머리에 하중만 줄 뿐이다. 스스로 많은 부담을 이겨내야 한다”고 했다.

흥국생명 김다솔. 스포츠동아DB

흥국생명 김다솔. 스포츠동아DB


PO 시리즈의 분위기를 가름하는 1차전에서 김다솔은 승리세터가 됐다. 침착했다. 상대 블로킹을 따돌리는 엄청난 기술을 보여준 것은 아니지만 줘야할 때 제대로 주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동료들이 리시브에서 잘 버텨줬다. 공격수들이 득점을 내주면서 자신감도 생겼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다”고 했다. 물론 2차전에서 그 예상은 빗나갔다. 세터는 실수를 자양분삼아서 경험치를 쌓아가는 포지션이다. 이제 그에게는 3차전이 남아 있다.

김하경도 김다솔과 같은 해 신인드래프트로 IBK기업은행의 유니폼을 입었다. 2라운드 2순위였다. 김사니가 주전으로 뛰는 IBK기업은행에서 그의 자리도 웜업존이었다. 3시즌 동안 176번 공격수에게 공을 올려준 것이 전부였다.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고 유니폼을 벗었다. 실업배구팀에서 지내던 그를 일신여중 시절 은사 김우재 감독이 불렀다. 아쉬움이 많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다시 돌아왔다. 물론 여전히 팀에서는 3번째 위치인 보조세터였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FA선수로 자유계약선수로 조송화가 왔다. 2번째 세터로 서열이 올랐다. 훈련 때 B코트에서 경기를 준비하던 그를 시즌 막판 김우재 감독이 호출했다. 6라운드 흥국생명과의 경기였다. 2세트부터 조송화를 대신해 투입했다. 3-0 완승을 이끌어냈다. 첫 수훈선수 인터뷰도 했던 그는 라자레바의 공격력을 극대화하는 연결을 보여줬다.

IBK기업은행 김하경. 스포츠동아DB

IBK기업은행 김하경. 스포츠동아DB


이 날의 활약을 잊지 않았던 김우재 감독은 22일 흥국생명과의 PO2차전에서 결단을 내렸다. “점심 뒤에 감독님이 주전이라고 알려줬다”는 김하경의 말처럼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감독은 그동안 김하경의 준비과정과 최근 조송화의 몸 상태, 라자레바와의 호흡을 고려해서 결단을 내렸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고 봤기에 선택한 모험이었다.

그에 앞서 라자레바도 감독을 찾았다. 자신을 김연경과 맞붙여달라고 부탁했다.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의 에이스를 반드시 넘어야한다고 봤고 그 또한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경기에서 역량을 확인하고 싶었을 지도 모르겠다. 이런 라자레바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가면서 김하경은 승리세터가 됐다. “어택라인에서 한 걸음 앞 쪽에 공을 정점에서 세워달라”는 라자레바의 요구대로 했다. 속공은 단 3개밖에 없었다. 양쪽 사이드로 또박또박 올려주는 역할이었지만 그 공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김하경은 “여기까지 힘들게 온 만큼 마지막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팀에게도 그에게도 어렵사리 돌고 돌아서 온 기회이기에 24일 운명의 3차전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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