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김9단은 1958년 프로 입단했으며 1962년 도일해 기타니 미노루 9단 문하에서 유학했다. 1963년 귀국해 국수 6연패, 왕위 7연패, 패왕 7연패 등 통산 30회 우승, 22회 준우승의 성적을 거뒀으며 1983년 9단으로 승단했다. 63년간의 프로기사 활동을 통해 통산 1568전 860승 5무 703패를 기록했다.
1968년 달성한 40연승은 아직까지도 한국바둑 최다연승 부동의 1위 기록으로 남아 있다. 1966년 제10기 국수전 도전기에서 조남철 9단을 3-1로 꺾고 국수 타이틀을 쟁취해 당대의 일인자 조남철의 아성을 무너뜨린 일은 당시 바둑계의 최대 이슈였다.
1966년 10기 국수전에서 젊은 도전자 김인(왼쪽)과 대국하는 조남철 9단. 조 9단을 꺾기 위해 일본 유학을 통해 기력을 연마한 김 9단의 거센 도전으로 인해 조 9단은 `국수전 9연속 우승`으로 대장정을 마무리지었다.
김인은 실력뿐만 아니라 중후한 기풍과 인품을 지녀 후배 프로기사와 팬들의 존경을 받았다. 상금과 대국료로 가난한 동료,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베푼 미담도 많다. 평생 바둑의 이치와 도를 고수했으며 승부의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했다. 카메라 앞에서 짧은 시간 내에 두어야 하는 TV대국이 바둑의 본질에 어긋난다고 여겨 평생 참가하지 않았다. 후배들은 늘 한결같고 변치 않은 김인 9단을 ‘청산(靑山)’이라 부르며 존경했다.
대회 스폰서들도 김9단을 아끼고 존중했다. 김9단이 타이틀을 잃자 후원자가 대회 자체를 없앤 사례(백남배)가 있을 정도였다. 2007년에는 김9단의 고향인 강진에서 ‘김인 국수배’라는 아마추어 대회가 창설되기도 했다. 이 대회는 2008년부터 국제시니어대회로 업그레이드돼 개최되어 오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열리지 못했다. 매년 격이 없이 아마추어들과 만나는 것을 즐겼던 김9단은 지난해 대회가 열리지 못한 것을 크게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김9단의 유족으로는 부인 임옥규 씨와 1남이 있으며 장례는 한국기원장으로 치른다. 한국기원이 한국기원장을 치르는 것은 2006년 조남철 9단 이후 처음이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