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펠리페의 슬기로운 취업활동?

입력 2021-04-05 15: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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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021시즌 V리그 남자부의 ‘봄 배구’는 펠리페(33·OK금융그룹)의 슬기로운 취업활동 시리즈?

공교롭게도 대한항공을 제외하고 시즌 막판 치열한 순위싸움을 벌였던 팀들과 펠리페는 모두 관련이 있다. 같은 승점을 기록하고도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우리카드에 2세트를 따내지 못해 5위(18승18패·승점 55)로 준플레이오프(준PO)행 열차를 놓친 한국전력은 2017~2018시즌 펠리페가 뛰었던 팀이다. 당시 김철수 감독은 4순위 구슬을 잡아 그를 지명했다. “압도적이진 않지만 성실하고, 부상 없이 시즌을 소화해주는 믿음직한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 시즌으로 끝날 뻔했던 펠리페와 V리그의 인연은 끈질겼다. 생존능력이 놀라웠다. 한국전력과 재계약하지 못한 펠리페는 부상을 당한 알렉스의 뒤를 이어 KB손해보험의 대체 외국인선수로 V리그를 다시 찾았다. 이후 우리카드 아가메즈~OK금융그룹 필립을 대신해 3시즌 연속 대체 외국인선수로 V리그에서 4시즌째 뛰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번 시즌 펠리페는 득점 4위(851점), 백어택 3위(56.38%), 서브 6위(0.338개), 공격종합 8위(51.23%)의 성적을 거뒀다. 나이는 좀 먹었지만 부상이 없고, 자기관리는 누가 뭐래도 최고다. OK금융그룹 석진욱 감독 역시 “겉에서 보기보다 안에서 보면 더 좋은 선수”라고 인정했다.

KB손해보험-OK금융그룹의 준PO는 왜 펠리페가 위기에서 감독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보험용 선수’인지를 보여줬다. 2세트까지 KB손해보험 케이타의 활약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지만, 펠리페는 결국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3세트부터 중요한 순간마다 클러치 득점으로 동료들의 분전을 이끌어냈다. 22득점, 공격성공률 56%의 펠리페는 기록지에 남는 단순한 숫자 이상의 임팩트를 코트에서 보여줬다.

송명근, 심경섭이 5라운드 막판 학교폭력 스캔들로 OK금융그룹을 이탈했을 때도 그랬다. 팀이 흔들리자 펠리페는 알아서 공격점유율을 높였다. 팀의 리더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고, 코트에서 큰 동작과 고함으로 동료들이 경기에 몰입하도록 이끌었다. 상대팀과 신경전이 벌어지면 동료들보다 먼저 싸움에 앞장섰다. 그 모습을 본 상대팀 관계자는 “시즌 막판 재계약을 앞두고 펠리페가 ‘나는 이런 일도 할 수 있다’는 충성심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 정말 영리한 선수다”고 평가했다.



정규리그 최종전이었던 1일 대한항공전은 상징적이었다. 반드시 승점 3이 필요한 상황에서 OK금융그룹의 젊은 선수들은 긴장이 지나친 나머지 먼저 2세트를 내줬다. 선수들이 경기를 포기하려던 순간, 펠리페가 그들을 다그쳤다. 2세트까지 7득점에 그쳤던 펠리페는 3세트 8득점을 몰아치며 팀이 한 세트를 만회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팀이 정말로 필요로 할 때는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펠리페는 6일부터 지난 시즌 친정팀인 우리카드와 PO(3전2승제)를 벌인다. 시즌이 조기에 종료되는 바람에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하고도 봄 배구를 경험하지 못했던 옛 동료들을 상대로 또 어떤 현명한 취업활동을 펼칠지 궁금하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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