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못한 2루주자, 그 후 20년①] 2000년 4월 18일의 슬픔이 바꾼 것들

입력 2021-04-16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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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4월 18일 경기 도중 심장마비로 쓰러져 별세한 故임수혁은 KBO리그가 선수들의 안전 문제와 인프라 구축에 더 신경을 쓰는 계기가 됐다. 야구장 환경이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바꿔나가야 할 부분이 존재한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스포츠동아DB

돌아오지 못한 2루 주자. 故임수혁(향년 40세)이 베이스 위에서 멈춰선지 20년이 지났다. 프로야구는 물론 한국프로스포츠 역사상 가장 아픈 비극으로 꼽히는 사건은 무엇을 바꿨을까. 스포츠동아는 故임수혁을 추억하는 이들의 기억을 되짚으며 KBO리그 안전의 현주소를 짚고, 나아가야 할 지점을 꼽아봤다.

외양간은 어떻게 고쳤나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네요.”

故임수혁과 한솥밥을 먹었던 후배인 주형광 양정초 감독은 여전히 그날을 잊을 수 없다. 2000년 4월 18일 잠실 롯데 자이언츠-LG 트윈스전 2회초, 임수혁은 상대 실책으로 출루한 뒤 후속 타자의 안타로 2루를 밟았다. 타석에 조성환이 들어섰을 때, 2루에 있던 임수혁이 쓰러졌다. 오랜 지병인 부정맥으로 인한 심장마비 때문이었다.

지금이라면 곧바로 구급차가 그라운드에 들어왔을 상황이지만 당시 스태프는 들것으로 그를 옮겼다. 구급차에 탑승해 강남시립병원에 도착하기까지 수십 분이 소요됐다. 호흡은 살려냈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임수혁은 2010년 2월 7일 눈을 감았다.

외양간은 고쳤다. KBO 경기장 안전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홈팀은 경기 전 훈련 시작 시간부터 경기 종료시까지 의료진을 구성해 대기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 현행법상 간호자격을 취득한 간호사 1명, 의사 또는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 시행하는 1급 응급구조사 자격을 취득한 인원 1명, 현행법상 인정되는 특수구급차 1대 및 운전자 등 최소 3인이 경기장에 대기한다. 구급차의 경우 1대는 의무이며 2대 배치를 권장한다. 또한 관중들이 돌발 상황에 의해 쓰러질 경우를 대비해 경기장에 자동제세동기를 최소 4대씩 설치해야 한다. 조성환 한화 이글스 수비코치는 “지금은 1군뿐 아니라 2군 경기에도 구급차와 의료진이 대기한다. 야구장에서 그분들을 보면 한결 마음이 놓인다”고 밝혔다.

구단의 인식도 달라졌다. 임수혁 비극의 원인으로는 지체된 앰뷸런스만큼이나 초동 응급조치의 실패가 꼽힌다. 당시를 함께한 이들에겐 심폐소생술만 제대로 이뤄졌어도 뇌사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후회가 여전하다. 고인의 고려대 동기동창인 박계원 부산고 감독은 “당시만 해도 1군에 선수의 컨디셔닝을 담당하는 인원이 2명 정도에 불과했다. 지금처럼 ‘트레이닝 파트’라고 부를 수조차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심각성을 몰랐다”고 아쉬워했다. 지금은 평균적으로 1군에 평균 5~6명씩의 트레이닝 코치 혹은 트레이너가 동행하며 응급상황에 즉각 대응한다.

故임수혁의 현역 시절 모습. 그와 배터리 호흡을 자주 맞췄던 주형광 현 양정초 감독은 "포수로서도, 타자로서도 든든한 선배였다"고 회상했다. 스포츠동아DB


“열 번의 헛걸음보다 의미 있는 것”

변화는 단지 야구장 안에 그치지 않는다. 이상훈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임)수혁이 형의 비극 이후 경기장 안에서 선수들이 훨씬 더 안전하게 운동에 집중할 환경이 만들어졌다. 축구에도 비슷한 사례가 한 명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이 언급한 이는 신영록이다. 2011년 5월 8일, 프로축구 제주 유나이티드 소속이던 신영록은 대구FC와 경기 도중 부정맥에 의한 심장마비로 의식을 잃었다. 임수혁 때와 같은 증세였다. 이때 선수들이 재빨리 기도를 확보해 의료진을 불렀고, 앰뷸런스는 7분 만에 신영록을 제주한라병원으로 옮겼다. 발 빠른 대처가 뇌손상을 최대한 줄였다. 골든타임을 지킨 것이다. 이후 종목을 망라하고 여러 선수가 돌발적인 이유로 그라운드에 쓰러졌지만, 비극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2002년부터 미국 메이저리그 3시즌을 경험한 봉중근 KBSN스포츠 해설위원은 조금 더 빠른 조치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봉 위원은 “보통 앰뷸런스가 그라운드에 들어오는 상황은 1분1초가 시급한 상황이다. 미국에선 경기를 지켜보던 구급요원들이 위급한 상황이 벌어지면 바로 앰뷸런스를 타고 들어온다. 하지만 우리는 심판이나 구단 트레이닝 파트가 신호를 줘야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라운드 진입을 위해 문을 여는 등 잠깐의 시간도 충분히 줄일 수 있다. 설령 생각보다 가벼운 상황이라 앰뷸런스가 다시 돌아가더라도, 열 번의 헛걸음으로 한 번의 위급상황을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면 그게 더 가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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