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1(1부) 수원 삼성의 5월은 뜨거웠다. 7경기에서 4승3무를 기록했다. 절대 강자로 군림하던 전북 현대를 상대로 3년6개월 만에 승리했고, 15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전에서는 후반에만 3골을 몰아치며 역전승을 거뒀다. FC서울과 ‘슈퍼매치’에서는 3-0 완승을 거뒀다. 한 달간 승점 15를 챙긴 수원은 2위로 뛰어 올랐다. FA컵 16강전서 FC안양을 승부차기로 이긴 것을 포함하면 5월에 이룰 건 다 이뤘다. 덕분에 수원 박건하 감독(50)은 ‘5월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박 감독의 지도력이 주목 받고 있다. 지난해 9월 하위권에서 맴돌던 수원의 지휘봉을 잡은 박 감독은 팀을 재빨리 추슬렀다. 선수 개개인의 특성을 살려주는 한편으로 신예와 베테랑의 조화를 통해 ‘원 팀’을 완성해가고 있다. 박 감독은 스포츠동아와 통화에서 “아직 시즌이 많이 남았다”며 겸손해했다.
-이 정도 성적을 예상했나.
“솔직히 이렇게 잘될 줄은 생각 못했다. 작년 9월 감독이 된 후 흐름은 나쁘지 않았다. 리그에서도 그렇고, ACL(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좋은 경기력이 나왔다. 동계훈련을 통해 준비를 많이 했고, 선수 변화가 많지 않아 흐름을 이어가는 게 목표였는데, 결과는 기대 이상으로 좋게 나오고 있다.”
-원동력은 무엇인가.
“선수들의 자신감이다. 그동안 약간의 패배의식이 있었는데, 지난 ACL을 통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선수들은 하나로 뭉쳤다. 그게 리그에서 이어졌다.”
-수원 선수들의 활동량이 눈에 띄게 늘었다.
“정말 열심히 뛴다. 우리의 팀 색깔이 바뀌었다. 공격에서는 공간을 찾아 들어가고, 수비에서도 적극적이다. 그런 모습을 통해 경기에서 지지 않았다. 또 질 경기를 뒤집었다.”
슈퍼매치에서 1골·1도움을 올린 공격수 김건희는 “‘도망가지 말고 수원에서 성공해라’ ‘골 욕심을 내라’는 말씀을 감독님이 많이 해주셨다”면서 “감독님이 신뢰해주시니 더 잘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밝혔다. 지난 시즌까지 그저 그런 선수였던 김건희를 살린 건 박 감독의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그는 올 시즌 6골·1도움으로 팀 내 최다 득점이다. 박 감독은 “자기관리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고 전했다.
-선수들과 신뢰가 많이 쌓은 것 같은데.
“신뢰는 일방적인 관계에서 생기는 건 아니다. 특히 감독이 선수에게 믿음만 준다고 될 일이 아니다. 피드백을 받고, 경기에서도 좋은 결과가 나와야한다. 그래야 신뢰가 쌓인다. 감독을 하면서 공부 많이 하고 있다.”
이번 시즌 수원의 ‘매탄소년단’은 히트상품이다. 정상빈, 강현묵, 김태환 등 매탄고 출신 유망주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개인적인 활약과 함께 팀이 상승세를 타면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
-신예들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수원이 강해지는 데 있어 어린 선수들이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그들은 이제 경쟁력을 갖췄다. 누가 나가도 기존 멤버 이상을 해줄 수 있다. 하지만 기존 멤버들의 희생을 빼놓을 수 없다. 김민우, 민상기, 최성근, 한석종, 장호익 등 베테랑들이 후배들을 받쳐주지 않았다면 우리의 상승세는 없었을 것이다. 선배와 후배 간의 소통이 잘 이뤄졌다. 그게 우리의 힘이다.”
-이기제는 나이 서른에 처음 국가대표팀에 발탁됐다.
“이기제는 장점을 많이 가진 선수다. 밖에서 볼 때와 안에서 지도할 때 확실히 달랐다. 지난해 ACL을 통해 장점을 봤다. 투박할 것 같지만 실제는 기술적으로 굉장히 좋다. 체력도 강하다. 스피드도 있다. 특히 프리킥이 좋은데, ACL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했다. 기회를 주자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한 케이스다.”
-정상빈은 어떤 선수인가.
“가장 큰 장점은 스피드인데, 파워도 갖췄다. 그런 유형은 국내에 거의 없다. 슈팅 능력도 뛰어나다. 득점 감각은 감독이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타고나야하는데, 정상빈이 그렇다. 또 항상 웃는 얼굴이지만 근성도 가졌다. 그게 마음에 든다. 한 가지 더 얘기한다면, 그동안 연령별 대표를 하면서 풀타임을 뛴 경기가 거의 없었다. 동계훈련동안 많이 뛰게 했더니 체력적으로 많이 올라왔고, 그걸 바탕으로 진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시즌 가장 의미 있는 경기는.
“울산이나 전북, 포항 등 강팀을 이긴 것도 좋지만, 상승세의 포인트가 된 제주전 3-2 역전승이다. 이전까지 강팀을 이기면 그 다음 경기가 느슨해지고 좋지 않았다. 선수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제주전도 그렇게 될 뻔했지만 후반에 3골을 넣고 뒤집으면서 힘이 생겼다.”
-당시 하프타임 때 선수들을 질책했나.
“원래 하프타임 때 큰 소리 안하는데, 전반에 2골 먹고는 조금 화가 났다. 기본자세를 강조했다. 수비할 때나 공격할 때 적극적이지 못한 점을 지적했다. 또 팬을 위해 수원다운 모습을 보이라고 강조했다.”
수원이 후반기를 기대하는 이유는 권창훈 때문이다. 그는 유럽생활을 마무리하고 4년4개월 만에 친정팀에 복귀했다. 수원 입장에선 천군만마를 얻었다. 매탄고 감독 시절 권창훈을 지도했던 박 감독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후반기 선두권 다툼을 앞두고 기대가 클 것 같다.
“권창훈을 잘 안다. 그도 나를 잘 알고. 어쨌든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유럽에서 경기를 많이 뛰지 못해 컨디션이 좋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능력을 가진 선수다. 미드필드와 공격 모두 능력을 가졌다. 그런 장점을 살려주는 게 중요하다.”
-선두권 다툼을 하는 울산과 전북을 평가한다면.
“울산은 젊은 선수와 기존 선수가 잘 맞고 있다. 후반기에 좋은 선수가 들어오면 더 강해질 것이다. 전북은 지금 어렵다고는 하지만 한번 치고 올라가면 무섭다. 후반기에는 달라질 것이다.”
수원은 7월 중순까지 경기가 없다. 대신 6월말부터 10여 일간 남해로 전지훈련을 떠나 후반기를 준비한다. 박 감독은 “2위로 올라선 게 좋기도 하지만 부담도 된다. 무엇보다 흐름을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 위기가 오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해 후반기에 더 좋은 모습 보여 주겠다”고 다짐했다.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