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만에 첫 단독주연 조우진 “50만원 들고 상경한 내겐 기적 같은 일”

입력 2021-06-18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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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발신제한’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맞닥뜨린 조우진. 극도의 절박함을 드러내는 표정 연기로 탁월함을 과시해 흥행 기대감을 더하고 있다. 사진제공|CJ ENM

영화 ‘발신제한’ 조우진

죽음 위기에 놓인 은행센터장 역할
극도의 절박함·공포 “일냈다” 호평
긴 세월 무명으로 쌓은 연기 내공
“버티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미소
그야말로 극찬에 가까운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제대로 해냈다” 또는 “일냈다”는 표현이 가장 명징하다. 많은 언론매체가 이어가는 호평과 찬사는, 16년이라는 긴 세월을 무명으로 무대에 나서온 세월에 대한 보답일까.

“1999년 50만원을 들고 상경한 저로서는 기적이다!”

자신의 팬들을 향해 감격스런 상황을 전한 동시에 수많은 언론매체의 카메라 플래시 앞에서 그렇게 말했다. 16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 상영관 무대 위에 선, 영화 ‘발신제한’의 주연 조우진(42). 상기된 표정은 그가 걸어온 지난 시간을 말해주고 있었다.

꿈을 꿨다
1999년부터 2021년, 22년의 세월이었다. 그 속에서 16년의 또 긴 시간 동안 자신의 이름을 알리지 못한 채 무대를 지켰다. 결코 녹록하지 않았을 터이다. 그래도 무대만이 스스로를 견뎌내게 해주었다. “버티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말은 괜한 공치사가 아니었다.

1999년 그는 “50만원”을 손에 쥔 채 서울로 향했다. 고향인 대구에서 상경하려는 그를 가족들은 만류했다. 연기를 하고 싶다는 그의 꿈은 어쩌면 거기서 멈췄을지 모른다. 하지만 꿈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아서 결국 서울은 그가 새로운 인생을 꿈꾸는 무대가 됐다.

그 2년 전, 조우진은 대학생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입학금을 마련하지 못했다. 조금씩 기울어가던 가세, IMF 외환위기의 거센 풍랑에 휘말린 탓이었다. 이듬해에도 대학은 언감생심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보자 싶었다. (중략) 내 꿈은 뭔가 싶었지. ‘나’를 찾자, ‘나’라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런 고민이었다. 답은 단순하지 않았다. 쉽게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는 일, 남의 시선으로 내가 평가받는 일을 찾았다. 어떤 개똥철학 같은 거였는데(웃음), 그런 고민 끝에 연기라는 결론을 얻었다.”(스포츠동아 2018년 12월7일자 ‘여기자들의 수다’ 인터뷰 중에서)

연기였다. 진짜 무대였다. 기어이 연극과 입학을 목표 삼았다. 하지만 낙방. 아직 준비가 온전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상경을 결심했다. 곧장 극단에 입단했다. 극단 워크숍에서 연기를 배우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리고 결국 2000년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했다.

한 세기를 마감하거나, 한 세기가 시작되거나,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대학 입학과 함께 연극 ‘마지막 포옹’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꿈을 실현하기 위해 나섰다.

배우 조우진. 사진제공|CJ ENM


스크린 주역으로 뚜벅뚜벅

고교시절 방송반 활동을 하며 비교적 정확한 발음과 발성을 위해 공부했다. 사투리 억양을 고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까지 힘을 더해주며 무대 위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에게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다양한 연극과 영화, 드라마를 오가며 묵묵히 연기자로서 살았다. 무려 16년이었다.

그런 끝에 2015년 영화 ‘내부자들’을 만났다. 연출자 우민호 감독은 오디션에 나타난 그에게 ‘꽂혔다’. 평범해 보이는 얼굴로 전형적인 직장인처럼 보이고 싶었던 캐릭터에 그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말끔한 정장에 지적인 이미지를 드러내는 안경까지 썼지만, 재벌그룹 회장의 ‘행동대장’처럼 잔혹한 폭력을 서슴지 않는 모습. 관객은 그에게서 서늘하게 잔인한 면모를 확인하며 강렬한 인상을 안은 채 호기심을 지우지 못했다. 조우진이 확연하게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이후 발 앞에 깔린 길을 뚜벅뚜벅 흔들림 없이 걸어왔다. 그리고 23일 개봉하는 영화 ‘발신제한’(제작 TPS컴퍼니·감독 김창주)을 자신의 오뚝한 새 무대로 선보인다. 22년 만에 처음으로 단독 주연으로서 관객을 초대하는 무대이다.

아이들과 함께 출발한 평범한 출근길에서 받은 한 통의 ‘발신번호 표시제한’ 전화. 이윽고 자신의 차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음을 알게 된, 죽음의 위기에 놓인 은행센터장이 그의 역할이다. 아이들을 살리고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탈출하고픈 극도의 절박함을 조우진은 뛰어난 연기로 표현해냈다. 숱한 호평은 거기로 향하고 있다.

조우진은 16년의 무명생활 끝에 호평을 얻은 사이 11년 동안 사랑을 쌓은 지금의 아내와 2018년 결혼해 다섯 살배기 딸의 아빠가 됐다. “딸 바보 멍청이다”며 웃는 그는 “나를 버티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 자신의 딸이라고 말했다.

“딸이 없었다면 표현하지 못하고, 버티지도 못했을 거다.”

버팀의 의미란 그런 것이리라. 누군가 함께할 무엇이 있고, 또 그것을 바라보며 한결 같은 걸음을 내디딜 때 버팀은 결국 결실을 가져다준다고 조우진의 연기인생은 말해주는 듯하다. “버티다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말은, 또 한번, 괜한 공치사가 아니었다.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연기를 업으로 살고 싶었다. 한 번도 뒤돌아본 적 없다.”

앞으로도 그렇게 걸어갈, 또 한 명의 스크린 주역이 등장했다.

조우진 베스트 캐릭터 3

● 조 상무(영화 ‘내부자들’·2015년) : 건조하지만 서늘한 잔혹함.

● 재정국 차관(영화 ‘국가부도의 날’·2018년) : 국가 위기를 기회로.

● 미 공사관 역관 임관수(드라마 ‘미스터 션샤인’·2018년) 지혜와 민첩함. 자리 굳히기.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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