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사커] 논란의 침대축구 “넌 누구니?”

입력 2021-09-07 11: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크게보기

축구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파울루 벤투 감독은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에서 ‘침대축구’의 실체를 확인했다. 6월 열린 레바논과 홈경기에서 해도 너무한 시간끌기에 신경질적으로 물병을 걷어차며 폭발했다. 이후 우리의 최종예선 상대가 모두 중동 국가로 결정되자 기자회견 때마다 침대축구에 대한 질문이 빠짐없이 나오며 이슈로 떠올랐다.

최종예선 1차전 상대인 이라크대표팀의 딕 아드보카트 감독과 손흥민(토트넘)이 벌인 설전의 핵심도 침대축구다. 양 팀이 득점 없이 비긴 가운데 손흥민이 이라크가 시간끌기에 치중했다고 꼬집자 아드보카트 감독은 동의할 수 없다며 반박했고, 손흥민이 물러서지 않고 재반박하며 논란이 이어졌다. 여기에 황의조(보르도)는 손흥민과 같은 생각이라며 동조했다.

그렇다면 침대축구의 실체는 무엇일까.

침대축구는 공식 용어는 아니고 우리가 만들어낸 단어다. Grassrolling 또는 Timewasting 정도가 침대축구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영어사전 어반 딕셔너리(Urban Dictionary)에 따르면, Grassrolling은 시간을 끌기 위해 그라운드 위에 뒹구는 행위로 정의된다. 또 심판에게 상대의 반칙이나 자신의 부상을 믿게 하려는 의도된 동작이라는 설명과 함께 아랍국가에서 흔하다고 덧붙였다.

침대축구라는 괴물의 등장은 선제골에 달렸다. 대개의 중동 국가들은 먼저 골을 넣으면 패턴이 달라진다. 약간의 접촉만으로도 주저앉거나 작정하고 드러눕는다. 또 발목을 잡거나, 배를 움켜쥔 채 그라운드를 뒹군다.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고 주심에게 어필한다. 또 하나의 특징은 집단행동이라는 점이다. 한명이 쓰러져 주심의 시선을 끄는 사이 또 다른 선수가 저 멀리서 아무 이유 없이 쓰러진다. 그러다가 의료진을 요구한다. 다만, 들것에 실려 나가면 곧바로 일어나 들어온다.

일단 시간끌기 작전이 시작되면 경기 내용에는 관심이 없다. 관중의 야유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주심이 종료 휘슬을 불 때까지 계속된다. 상대가 조급해질수록 위력은 더해진다. 상대가 악에 받쳐 거친 플레이를 하면 영락없이 작전에 말려든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급반전할 때가 있다. 바로 동점골이나 역전골을 허용할 때다. 눈을 씻고 봐도 드러눕는 선수는 없다. 웬만한 부상에도 벌떡 일어난다. 너무 속 보이는 행동이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중동과 경기를 앞둔 우리의 구호는 “모래바람을 넘어라”였다. 사막 기후나 잔디, 음식 등 외부 환경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침대축구를 경계하라”로 바뀌었다. 중동국가들의 시간끌기가 인정사정 볼 것 없는 수준으로 만연했기 때문이다. 2010년 9월 홈에서 열린 이란과 평가전에서 0-1로 패한 한국대표팀 조광래 감독은 “말로만 듣던 중동의 침대축구는 과연 대단하다”며 혀를 내두른 적이 있다. 친선전이라고 해도 그들은 스타일을 바꾸지 않는다.

유독 중동 국가에서 침대축구가 만연한 이유에 대해 ‘폐쇄된 축구문화’를 꼽는 중동 전문가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등 대부분 중동 국가가 자국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가로막아 세상과 동떨어진 축구를 고집한다는 것이다. 또 남 눈치를 보지 않는 중동 특유의 문화를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물론 중동만의 문제는 아니다. 중남미 국가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8강전 상대인 온두라스는 최악의 침대축구로 빈축을 샀다. 온두라스의 시간끌기에 당한 뒤 손흥민은 눈물을 펑펑 쏟기도 했다.

이런 비신사적인 행동은 축구를 좀먹는다. 현대 축구는 빠른 경기 흐름을 추구한다. 국제축구연맹(FIFA)이나 각국 프로리그에서도 실제경기시간(APT·Actual Playing Time)을 늘리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쓴다. 이런 추세를 이어가야 축구는 살아남는다. 반면 침대축구는 정반대다. 축구의 재미를 떨어뜨린다. 강력한 징계 규정으로 이런 비 매너를 막아야한다. 할리우드 액션을 막겠다며 시뮬레이션 반칙을 도입했던 FIFA가 침대축구를 근절할 대책을 내놓아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오늘의 핫이슈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