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타 박혜나·김찬호 부부, 조금은 긴 인터뷰 [양형모의 일일공프로젝트 6]

입력 2023-02-19 14: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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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프덴’ 박혜나, ‘웨사스’ 김찬호 … 막공 앞둔 소감
- 박혜나 “사람은 안 변해? 김찬호는 변하던데요”
- 김찬호 “늘 공부하는 박혜나에 나도 노래공부 시작”
박혜나, 김찬호 부부를 인터뷰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왔을 때, 거짓말 안 하고 0.5초 만에 “당연히 하겠다”고 답을 했습니다.

박혜나, 김찬호 커플은 뮤지컬계에서 ‘김소현, 손준호 커플(두 분도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과 함께 가장 유명한 배우 커플로 꼽히죠. 하지만 박혜나, 김찬호 두 배우를 한 자리에서 인터뷰할 기회는 쉽지 않습니다. 저 역시 박혜나 배우와 김찬호 배우를 따로 인터뷰한 적이 있지만, 이렇게 ‘부부’로서 인터뷰를 하는 것은 처음이니까요(확인 결과 두 사람 역시 결혼 후 부부로서 인터뷰를 하는 일은 좀처럼 없어, 이번이 두 번째라고 합니다).

두 배우는 국내 뮤지컬계의 대표적인 다작배우들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두 배우를 찾는 작품, 제작사가 많다는 얘기지요. 현재 박혜나 배우는 국내 초연작인 뮤지컬 ‘이프덴’에서 주인공 엘리자베스를, 김찬호 배우는 클래식 뮤지컬의 명작 ‘웨스트사이드스토리’에서 샤크파의 리더인 베르나르도를 맡고 있습니다.

두 작품은 이제 곧 막공을 앞두고 있는데요. 공연이 막을 내리기 전, 이들 부부를 만나 작품과 함께 사는 얘기도 조금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인터뷰 장소는 웨스트사이드스토리가 공연 중인 충무아트센터 인근의 스타** 커피점. 김찬호 배우는 낮공을 마치고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스타**에 들어서니 박혜나, 김찬호 배우가 먼저 와 있었습니다. 반가우면서도 괜히 민망해지네요. 사실 저도 15분이나 일찍 도착한 것이었습니다만.

잠시 환담 후 스마트폰의 ‘음성녹음’을 켭니다.
“그럼 슬슬 인터뷰를 시작해 볼까요?”
두 사람이 웃습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뿐만 아니라 저도 몰랐습니다.
이 인터뷰가 예상보다 꽤 긴 인터뷰가 될 것이라는 걸 말이죠.



●박혜나의 이프덴과 김찬호의 웨사스, 막공날도 같아

기자: 두 분은 제가 인터뷰를 했었지만 이렇게 부부로 함께 하는 것은 처음이네요. 기자로서도 쉬운 경험은 아닙니다. 영광입니다.

혜나: 저희가 영광이죠. 감사해요.

기자: 김찬호 배우는 최근에 제가 인터뷰를 했죠? ‘스타7330’ 시리즈. 스타들이 근황과 좋아하는 운동, 스포츠를 소개하는 코너였는데요. 김찬호 배우는 축구였습니다.

찬호: 흐흐 그랬죠. 팀 복까지 입고 나가 운동장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드렸죠.

혜나: 저도 그 사진을 봤는데요. 실컷 뛰고 난 뒤라 얼굴이 완전 빨개져서는. 제가 “이 사진 진짜 보내도 돼?”라고 했죠.

찬호: 공 차러 갈 때는 보통 잘 안 씻고 가니까.

혜나: 나중에 기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건 뮤지컬배우가 축구를 하는 게 아니라, 마치 축구동호인이 뮤지컬을 한다는 것 같다는.

기자: 하하! 그 정도였나요. 그나저나 두 분은 같이 인터뷰를 하신 적이 있으시죠?

찬호: 한 번. 예전에 했었어요. 월간지 ‘더 뮤지컬’이었을 거예요.

혜나: 맞아요. 당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같이 했었는데, 아마 이 작품 홍보를 위해 했던 것 같아요. 결혼하고 나서는 처음으로 같은 작품을 했었죠.

(뮤지컬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2017년 10월부터 2018년 1월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됐다. 박혜나는 주인공 카와지리 마츠코 역을 아이비와 더블로 맡았고, 김찬호는 카와지리 쇼를 연기했다)

기자: 결혼 전에는 역시 ‘헤이, 자나!’였겠죠? 두 분의 인연을 맺어준 작품으로 알고 있습니다.

찬호: 맞아요. 코엑스(코엑스아티움현대아트홀)에서 했었죠.

기자: ‘이프덴’과 ‘웨사스(웨스트사이드스토리)’가 드디어 막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제작사가 같습니다. 경쟁작이라고 하기에도 좀 애매하네요.

혜나: 경쟁작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저희는 같은 팀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사실 이프덴과 웨사스를 경쟁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긴 한 모양인데, ‘이래서 우리나라가 발전하는구나’ 싶더라고요(웃음). 사실 웨사스는 제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제가 대학원 때 학교에서 했던 작품이 웨사스였고, 제가 ‘마리아’를 했거든요.

기자: 비상업 공연이지만 이미 웨사스를 하신 경험이 있으셨군요.

혜나: 네. 웨사스는 이론적인 부분이 많아 공부를 해야 하거든요. ‘너무 보고 싶다’ ‘너무 그립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또 올라온다고 해서 좋아했어요. 그런데 이 작품을 가족이 … (웃음)

(박혜나 배우는 인터뷰에서 김찬호 배우를 주로 ‘가족’이라고 호칭했다. 호칭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나오게 된다)

혜나: 가족이 해주니까 더 기분이 좋았죠.

기자: 심지어 이프덴과 웨사스는 막공(2월 26일) 날짜까지 같더라고요.

혜나: 그러게요. 이프덴 막공날이 다가오니까 ‘위키드’ 생각이 나요. 위키드라는 작품은 제게 좋은 기회를 준 작품이었거든요. 더 많은 작품을 할 수 있게 해줬고. 이에 비해 이프덴은 저를 배우로서 ‘무대에서 산다’라는 걸 경험하게 해준 작품이에요. 그만큼 드라마나 넘버, 이런 것들이 무대 안에서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저를 잘 이끌어줬어요.


기자: 다른 작품 때와는 막공을 맞는 느낌이 좀 다르시겠는데요.

혜나: 이제 떠나보낼 때가 됐는데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지금까지 좀처럼 (캐릭터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고요. 막공이 조금 남았지만 벌써부터 생각만 하면 울컥하고, 씁쓸하고 그러네요.

기자: 김찬호 배우는 좀 어떠십니까.

찬호: 웨사스는 와이프가, 혜나씨가 ‘당신이 했으면 좋겠다’고 권유를 했어요. 사실 저도 그 전에 공연을 많이 한 터라 약간 심신이 지쳐있었거든요. 휴식이 좀 필요한 시기였는데 혜나씨가 ‘이건 무조건 해야 된다’고 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죠.

기자: 웨사스는 안무가 굉장히 힘든 작품이죠?

찬호: 그렇죠. 굉장히, 열렬하게 춤을 춥니다. 그런데 춤을 추다보니 좀 쉬려고 했던 마음에 다시 불이 지펴지는 것 같더라고요.

기자: 힘든 작품을 하면서 연기에 대한 열정에 다시 불이 붙은 경우로군요.

혜나: 자신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면서.

기자: 그러고 보면 마치 극기훈련 같군요. 웨사스를 한다는 것은.

혜나: 하루에 10시간이 넘게 매일 춤을 추더라고요.

기자: 이제 며칠 뒤면. 막공. 학생으로 치면 시험기간이 끝나는 기분일 것도 같은데요. 데이트라든지, 여행이라든지 ‘우리 이번 공연 끝나면 이걸 하자’ 같은 약속은 안 하셨는지.

찬호: 원래 생각이 있었죠.

혜나: 사실 저도 이프덴을 끝으로 잠시 휴식기를 가질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또 새로운 작품(식스 더 뮤지컬)을 하게 되었네요. ‘하데스타운’ 때 만났던 분께서 “이 작품(식스 더 뮤지컬)은 하고 쉬어라. 12명의 여자가 응원을 해주겠다”고 해서(웃음). 춤이 굉장히 중요한 작품이기도 해요. 전 아직까지 춤을 제대로 춰본 적이 없거든요.

기자: 그러고 보니 박혜나 배우가 무대에서 춤을 제대로 추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는 것 같습니다.

혜나: 그렇죠. 뮤지컬은 춤, 노래, 연기 모든 것이 다 버무려진 종합예술장르인데 저도 이런 작품을 만난 김에 한번 도전해보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 작품 이후에 휴식기를 가지려고 해요. 여행도 생각하고 있고요.



●응급실에서 웨사스 안무를 췄던 사연

기자: 웨사스 안무 얘기를 좀 더 해 볼까요.

찬호: 연습기간이 좀 길었어요. 아침이면 매번 발레 클래스를 했죠.

기자: 웨사스의 안무는 발레가 베이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무를 만든 사람이 당시 뉴욕시립발레단의 예술감독인 제롬 로빈스였으니 말 다했죠.

찬호: 그렇습니다. 모든 배우들이 나와서 발레 클래스를 하고, 연습 때도 굉장히 하드 트레이닝을 하다 보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막상 공연이 올라가고 나니까 그렇게 많이 힘들지는 않았어요(웃음).

기자: 연습이 실전보다 더 힘들었군요.

찬호: 네네. 인간의 힘은 정말 위대하다고 느꼈습니다. 정말 정말 그렇게 힘든 트레이닝을 하고 나니까 오히려 무대에서 즐길 수 있게 되더라고요.

기자: 뜻밖이네요. “매회 공연이 너무 힘들었다”는 대답을 기대했는데요.

혜나: 연습 때 인터뷰를 했다면 달랐을 거예요.

찬호: 정말 힘들었죠. 매일 끙끙 앓는 소리 내면서 출근했어요.

혜나: (내가 하라고 해서) 좀 미안하기도 하고. 심지어 굉장히 위험했던 사고도 있었어요.

박혜나 배우와 김찬호 배우가 들려준 사고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연습을 마친 김찬호가 킥보드를 타고 귀가하던 중의 일이다. 너무 지친 나머지(이날도 10시간 동안 춤을 추었다) 집중력이 떨어져 큰 돌이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킥보드가 돌에 걸리면서 크게 넘어지고 말았다. 박혜나는 “보통 때의 찬호씨라면 공중을 한 바퀴 돌고 착지할 사람인데 너무 힘이 풀려 있어서…”라고 했다.

피가 철철 날 정도로 큰 상처를 입었다. 김찬호는 킥보드를 끌고 20여 분을 걸어 집으로 갔다. 김찬호는 “놀라지 말라”고 아내를 우선 진정 시키고는 그제서야 상처를 보았다. 마스크가 피로 다 젖어있었다.

급히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갈 데라고는 응급실뿐이었다.
응급실에서는 “상처를 꿰매야 하는데 지금 성형외과 의사가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결국 아침에 다시 와서 꿰매기로 했다. 드레싱을 하고 약을 타서 나오는데 … 박혜나는 그만 황당한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혜나: 약을 타서 나오는데 병원 복도에서 웨사스 춤을 추고 있더라고요.

찬호: 그게 … 전 제 턱이 날아간 줄 알았어요. 열다섯 바늘을 꿰맬 정도였으니까요. 당장 든 생각이 ‘웨사스를 내가 할 수 있을까’이다보니 저도 모르게 오프닝 동작을 해보게 되더라고요.

혜나: 그때 찬호 씨 표정은 ‘내가 할 수 있을까’라기 보다는 ‘이게 되네?’ 이런 느낌?

기자: 지금이야 이렇게 편히 얘기할 수 있지만 정말 아찔한 사고였습니다.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김찬호 배우가 웨사스에서 연기한 배역이 베르나르도였죠. 샤크파의 리더이자 마리아의 오빠. 함께 베르나르도를 맡은 임정모 배우는 엄청 몸을 벌크업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찬호: 원래 크잖아요. 저는 좀 날렵하고 탄탄한 느낌으로 가고 싶었어요. 운동을 열심히 했죠. 발레도 열심히 하고.

혜나: 참 신기한 게, 배우한테 작품은 운명처럼 다가오는 것 같아요. 찬호 씨가 원래 굉장히 피부가 하얗거든요. 종이처럼 하얘요. 그런데 좀 쉬기로 하면서 ‘그동안 안 해 본 걸 해보자’며 태닝을 했거든요.

찬호: 저희 집 마당에서 태닝을 했습니다. 웃옷 벗고 마당에서 잡초도 뽑고(웃음).

혜나: 그렇게 집 마당에서 태닝을 하고 있는데 웨사스가 들어온 거예요. 그래서 오디션을 본 거죠. 그렇게 하¤던 사람이 진짜 푸에르토리코 사람(베르나르도와 샤크파는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청년갱단이다)처럼 돼 있었는데.



●불가능을 가능하게 해주는 첫공의 힘

기자: 이프덴은 국내 초연이죠. 박혜나 배우께서는 이 작품을 어떻게 하게 되신 걸까요.

혜나: 회사에서 먼저 제의가 오긴 했어요. 제가 이디나 멘젤과 역할이 좀 겹치는 부분이 있거든요. 위키드가 대표적이고, 이프덴도 해외에서는 이디나 멘젤이 엘리자베스를 했어요. 그 분이 이 역할을 하신 것이 아무래도 영향이 있었겠죠. 그런데 사실 이 작품이 저한테 이렇게까지 큰 감동과 흔적을 남길 줄은 처음엔 몰랐어요.

기자: 공연을 할수록 작품에 대한 애정이 깊어진 것이로군요. 엘리자베스의 경우 박혜나 배우 외에도 정선아, 유리아 배우가 함께 하고 있죠? 다른 작품의 캐릭터도 그렇겠지만 엘리자베스는 특히 배우들마다 해석이 다를 것 같습니다만.

혜나: 네, 그렇죠. 뮤지컬은 ‘약속’이 많잖아요. 조명, 등·퇴장부터 시작해서 소품 같은 것까지. 세 시간 안에 짜임새 있게 맞춰 줘야 뮤지컬이 만들어지니까요. 그러다가 공연이 무대에 올라가고, 그 틀 안에서 놀다 보면 저와 작품이 어우러지면서 (각자 다른 해석이 드러나는 거죠). 특히 이 작품은 연출님이 (배우들이 해석하는 데에 있어서) 많이 열어주셨어요. 이프덴은 매번 할 때마다 매번 새로운 걸 느껴요. 신기하죠. 그래서 더 (막공이) 아쉬운 것 같아요.

기자: 공연이 장기화 되다 보면 아무리 작품에 애정이 있다고 해도 좀 지겹다든가 …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지는 않나요.

혜나: 공연이라는 게 매일 매일 올라가다보니까 그럴 수도 있죠. 공연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그렇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걸 하려고 노력하죠. 이프덴은 놀랍게도 매번 공연을 할 때마다 찾아지는 것이 달라요.

기자: 이왕이면 공연 후반에 보신 분들이 더 좋으셨겠는데요.

혜나: 그럴까요? 그런데 저는 첫공의 느낌이 잊혀지지 않아요. 이프덴이라는 작품이 무대에 올라가기까지 난관이 적지 않았거든요. 솔직히 표현하면 기적이었죠.

(옆에 배석한 공연 관계자가 “체인지도 너무 많고…”라고 했다)

혜나: 맞아요. 보신 분들도 그러시더라고요. 베스와 리즈가 무대에서 수시로 체인지되다 보니까 (흐름을) 잘 따라오시는 분이 계시는가 하면 못 따라오시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공연 내내 스태프 분들도 움직이지 못하실 정도예요. 이 체인지가 어두운 데서도 막 일어나니까 너무 어려운 거죠.

기자: 스태프들에게도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는 말씀.

혜나: 배우들뿐만 아니라 스태프들도 하나의 장면을 만들기 위해 시간이 좀 필요했던 것 같아요. “어떡하지, 어떡하지” 했던 부분들이 많았어요.

기자: 그야말로 첫공이 기적이었군요.

혜나: 그런데 첫공의 힘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해주는 게 있거든요. 전 그래서 첫공을 좋아해요. 게다가 이프덴은 초연인데도 관객 분들이 너무 좋아해 주셔서 다행이었죠.

기자: 이프덴은 확실히 독특한 작품이었습니다. 관객으로 하여금 작품에 몰입하게 하면서도 어느 한 편으로는 계속해서 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거든요. 그 ‘뭔가’는 사람마다 다를 테죠. 저 역시 이 ‘뭔가’에 푹 빠져서 보았습니다.

혜나: 처음에 저는 이 작품에 대해 “A냐 B냐” 하는 예전의 예능 프로그램을 생각했단 말이죠. 그저 재밌게 즐길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물이 될 것 같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제대로 한 대 맞은 거예요. 제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라서. ‘아, 이건 선택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지 않구나’ ‘이건 삶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구나’ ….

기자: 그렇죠. 삶에 대한 얘기.

혜나: 이건 또 어쩌면 우주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예를 들어 평행우주.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선택으로 인해 가지 않은 길을 후회하는 것이 얼마나 불필요한 것인지. 삶은 유일한 거니까요. 제게 많은 깨달음과 감동을 준 작품이 이프덴입니다.

기자: 저도 그랬습니다. 관객들은 이프덴을 보고나서 저마다 다른 것을 가져갔겠죠. 제가 가져온 것은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지금의 삶이나 ‘재벌집 막내아들’로 태어나나 내가 나인 이상 삶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누구에게도 1막짜리 인생은 없다는 것.

혜나: 그러셨군요. 아마 관객 분들은 다들 다르실 것 같아요. 저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찬호: 정답은 없다.



●김찬호의 연기를 보며 눈물을 흘린 박혜나

혜나: 전 요즘 두려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요. 그게 또 고맙기도 하고요.

기자: 두려움이 고맙다고요?

혜나: 두려움이란 감정이 있기에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두려움은 존재하지만 두려움에 지면 안 돼요. 두려움에 빠져 있으면 안 되죠. 두렵기 때문에, 그것과 맞서 싸워야 할 때. 그 두려움이 참 고마워지거든요. 그래서 더 열심히 연습하고, 생각하고, 더 집중하게 되죠.

기자: 두려워하지만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지는 않는다. 놀랍군요. 저는 늘 도망치는 인생인지라.

혜나: 에이, 거짓말이시죠. 글로 다 쓰시잖아요. 이렇게.

기자: 글을 쓰는 것은 쉬우니까요. 종이 뒤에 숨을 수 있으니까.

혜나: 얼마나 어려운 데요. 말도 안 돼요. 저는 글 쓰시는 분들이 정말 대단하게 보여요. 저도 글을 쓰고 싶거든요.

기자: 박혜나 배우의 가창력이야 세상이 다 아는 것이고, 사실 김찬호 배우의 노래실력도 엄청나지 않습니까. 원래는 연기 전공이죠?

찬호: 네, 연기를 전공했죠(서울예술대 연극과). 사실 전 혜나씨가 워낙 노래를 잘 하다 보니까 뒤늦게 노래 공부를 하기 시작한 케이스거든요.

기자: 결혼 전에도 잘 했던 것 같은데요.

찬호: 아니에요. 그때는 솔직히 잘 못했어요. 너무 부끄러워요. 예전에 노래 부른 거 지금 들어보면 너무 부끄럽고. 그저 노래방에서 노래하기 좋아하는 아이였거든요.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고, 발성이라든지 좀 더 드라마적으로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게 된 건 몇 년 안 됐습니다.

기자: 박혜나 배우가 처음 김찬호 배우 노래하는 걸 봤을 때는 어땠나요.

혜나: 제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처음 봤을 때는 항상 불안해서(웃음). ‘오늘은 (음정이) 플랫되지 않을까’ 하는 게 늘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고음도 저음도 다 잘 되고. 찬호 씨는 원래 가진 게 있었는데 연기 쪽으로만 하다 보니까 음악 쪽에 비중을 두지 않았던 거죠. 뮤지컬을 하면서 노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니까, 이제 자신이 가진 걸 좀 잘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기자: 김찬호 배우 노래할 때 보면 특히 고음의 경우 다른 소리들을 막 찢고 올라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혜나: 그렇죠. 신기해요. 굉장히 습득력이 빠르고, 적응도 잘 해요.

찬호: 제 얘기가 나오니 좀 쑥스럽기도 하지만. 제가 운동을 좋아하니까 거기에 빗대어 얘기를 하자면 이런 것 같아요. 자기가 좋아하는 걸 심도 있게 파면 이게 점점 자라게 되거든요. 저도 노래를 좋아하고 있었는데, 이걸 좀 집중적으로 심도있게,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보니 조금씩 되어가더라고요.

기자: ‘가족’이니까. 가족이 공연을 하는 작품은 서로 보러 가시나요.

혜나 : 그럼요. 웨사스는 두 번 봤어요.

찬호: 저도 다 보러 갑니다.

기자: 공연을 보고난 뒤 서로 상대의 연기나 노래에 대해 지적질 아니, 조언을 하는 편인가요.

찬호: 혜나씨는 공연 초반에 제가 공연을 보고 모니터를 해주기를 원해요. 그래서 이런 저런 모니터링을 해주는 편이죠. 저도 혜나씨가 보러 오면 힘이 돼요. 그런데 솔직히 예전에는 혜나씨가 공연을 보러 오면 이상하게 떨려서 그날 잘 못하게 되더라고요(웃음).

기자: 저도 같은 남편으로서 이해가 됩니다(웃음).

혜나: 그래서 전 제가 ‘가야 하나’ 고민도 했어요. 실제로 실수를 하기도 하니까.

찬호: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게 또 극복이 되더라고요.

혜나: 서로 공연을 봐도 ‘작품이 좋다’ 이런 얘기를 해요. ‘이런 것들은 잘못했어’ 같은 얘기는 안 하죠. 연기에 대해서도 본인이 계속해서 질문을 하지 않는 이상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찬호: 상대가 하는 연기라든지 노래를 존중하는 편이죠. ‘맞았다’ ‘틀렸다’보다는 ‘지금 잘 하고 있는 이 부분을 이렇게 하면 좀 더 좋을 것 같다’ 정도. 이런 식으로 모니터링을 합니다.

기자: 지혜롭고 현명한 것 같습니다(웃음). 그런데 ‘가족’이 공연하는 모습을 객석에서 보고 있다고 해도 다른 관객들처럼 마냥 편안하게 볼 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마치 내가 무대에 올라가 있는 것처럼 조마조마할 것도 같고.

찬호: 그럼요. 혜나씨가 위키드할 때 (1막 끝에) 엘파바가 (빗자루를 타고) 높이 올라가잖아요. 객석에서 엄청 걱정이 되더라고요. 떨어지지는 않을까.

(김찬호는 자신의 경험담도 들려줬다. 군대를 다녀와서 ‘오디션’이란 뮤지컬 작품에 출연했을 때다. 이 작품은 무명밴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김찬호는 태어나 기타를 한 번도 잡아보지 않은 상태였다. 오디션에 출연하면서 김찬호는 눈만 뜨면 기타를 붙잡고 있을 정도로 독하게 기타 연습을 했다고 한다)

찬호: 그리고 벌벌 떨면서 무대에 섰는데 혜나씨가 딱 보러 온 거예요. 제가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니까, 그때 혜나씨가 울었다고.

혜나: 맞아요. 기억이 나요. 뭐랄까 … 그걸 해냈다는 게 정말. 대견하다고 해야 될까요(웃음).



●“누나에서 여보로” 내겐 부족함이 없는 와이프

기자: 두 분이 결혼하신 지가 10년은 안 되셨죠?

찬호: 2015년에 했으니까 햇수로 8년차가 됐네요.

기자: 오늘 보니 호칭이 여러가지네요. ‘○○씨’, ‘가족’, ‘와이프’. 집에서는 어떻게 부르시죠?

찬호: 집에서는 ‘여보’죠.

기자: 박혜나 배우가 나이도, 데뷔도 1년 선배로 알고 있습니다만.

찬호: 네. 맞아요. 처음에는 ‘누나’라고 했죠(웃음).

혜나: 처음 봤을 때 존댓말을 너무 깍듯하게 하고, 인사도 90도로 숙여서 했어요. 외모도 그렇고, 저는 아이돌 연습생인가 싶었죠.

기자: 그렇게 오해하실 수 있겠네요.

혜나: 저보다 대여섯 살은 어릴 거라고 봤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한 살밖에 안 어리더라고요(웃음). 그런데도 그렇게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니, 그래서 ‘좋은 사람이구나’ 생각했던 것 같아요.

기자: 가족이나 배우자가 아닌 ‘배우’로서 서로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은데요. ‘저건 정말 내가 부러울 정도로 잘 한다’ 같은 것.

찬호: 저는 혜나씨가 뮤지컬 배우로서 굉장히 남다른 음색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창력은 뭐 너무나 많은 분들이 인정해 주시는 거고.

기자: 구체적으로 어떤 음색일까요.

찬호: 뭔가 소울이 있어요. 노래를 할 때 그런 부분들이 흉내 내기 힘든 본인만의 색깔을 내게 해주죠. 그런데 이런 부분은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것이고, 사실 혜나씨의 가장 큰 장점은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한다는 겁니다. 결혼하고 나서 제가 노래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도 혜나씨의 영향이 커요. 매일 매일 뭔가 공부를 합니다. 저는 굉장히 본받을 만한 점이라고 생각해요.

기자: 도대체 어떤 공부를 하시는 겁니까. 연기? 노래? 작품?

혜나: 그게 … 궁금한 게 많아서요. 요즘은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어요.

찬호: 뭔가를 늘 하고 있어요. 언제는 한번 보니까 수학문제를 풀고 있더라고요. 저는 이런 것들이 쌓여 박혜나라는 배우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혜나: 찬호 씨는 순발력이 뛰어나요.

찬호: 제가 좀 직관적인 스타일이거든요.

혜나: 전 생각이 많아서 판단을 내리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려요. 문제는 생각이 많으면 오히려 좋은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거죠. 생각에 이끌려 좋은 것을 놓치거나, 생각들이 정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들이 연결돼 나쁜 판단을 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직관력이 필요한데, 찬호 씨는 이게 참 좋거든요.

기자: 무대에서는 어떤가요.

혜나: 무대라는 곳이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부딪치는 장소잖아요. 그래서 서로 즐거워야 하고, 에너지가 있어야 하고, 믿음이 가야 하는데 찬호 씨가 무대에 서면 일단 (배우들은) 믿음이 가는 거죠. ‘내가 뭘 어떻게 해도 배우가 살려줄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해도 잘 받아줄 것이다’ ‘저 배우는 자기의 몫을 잘 해낼 것이다’하는 믿음.

기자: 확실히 그건 배우로서 대단한 장점인 것 같습니다.

혜나: 연습실에 가면 ‘저 배우가 있으니까 너무 재미있겠다’ ‘저 배우가 있으니까 너무 즐겁고 공연이 기대된다’. 찬호 씨는 이런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사람 같아요. 해피 바이러스 전파자죠. 그래서 …

기자: 그래서 … 요?

혜나: 따르는 동생들이 많아요. 늘 전화가 오고, 늘 택배가 집으로 오죠. ‘형님, 보냈습니다’ 하고. 와서 밥 먹고 가는 친구들도 굉장히 많고요. 제가 보기에 찬호 씨는 감성적인 공감 능력이 뛰어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사람들도 좋아하는 거겠죠? 그 공감능력이 배우로서 캐릭터를 표현할 때에는 더욱 진정성 있게 무대에서 전달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찬호: 제가 사람을 좀 좋아합니다(웃음).

기자: 혹시 집에서 대사 같은 것을 연습할 때 서로 파트너를 해주기도 하나요.

혜나: 그럼요. 그런데 집에서는 연습을 잘 안 해요.

찬호: 집에서는 쉬어야죠.

기자: 배우로서의 서로에 대한 생각은 잘 들었습니다. 이제 ‘가족’으로서, 남편과 아내로서의 생각도 궁금해지는데요.

혜나: 일단 가정적인 남자죠. 그런데 찬호 씨의 제일 좋은 점은 사람이 변한다는 거예요. 사람은 원래 안 변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찬호 씨는 다르더라고요.

기자: 물론 ‘좋은 쪽으로’ 변한다는 거겠죠.

혜나: 그럼요. 솔직히 서로 30년 다른 삶을 살아왔는데, 같이 살았을 때 문제가 왜 없었겠어요. 그런데 변한다는 거예요. 집안일을 한 번도 안 해 본 찬호씨가 지금은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청소를 해요. 아직까지 못 하는 건 물건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 정도?(웃음)

찬호: 제일 컸던 변화는 알람소리에 깬다는 거였죠. 저는 알람소리를 못 들어요. 굉장히 깊게 잠이 들거든요. 진짜 꿀잠 자는 스타일이죠. 평소 에너지를 많이 쓰고, 운동량도 많다보니. 엄마도 ‘넌 자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겠다’고 하셨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외출에서 돌아온 박혜나가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안에서 반응이 없는 것이었다. 겨우 어떻게 해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보니 김찬호는 방에서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혜나: 이건 좀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얘기를 했어요.

“여보는 우리 집 가장이야. 근데 우리 집에 도둑이 들었어. 만약 우리한테 아이가 있고, 내가 있고. 우리가 큰일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자기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잠을 자고 있으면 어떡해.”

(그 다음부터 김찬호는 알람소리가 나면 벌떡 벌떡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박혜나는 ‘신기할 정도’라고 했다)

혜나: 찬호씨는 예민함이 있는데, 그 예민함을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 뭔가 좀 조화롭게 표현력으로 쓰는 사람 같아요.


기자: 이번엔 김찬호 배우의 생각을 들어볼까요. 아내로서 박혜나는?

혜나: 어디 한번 들어볼까요(웃음).

기자: 박혜나 배우가 요리를 잘 하나요?

찬호: 엄청 늘었어요. 점점 늘고 있고요.

기자: 처음에는 아니었던 모양이죠?

찬호: 처음보다 훨씬 더 잘 하고 있죠. 요리도 자주 해주고. 사실 신혼 때는 제가 요리를 더 잘 했거든요.

혜나: 제가 망친 찌개를 살려줬어요.

찬호: 어머니가 음식을 잘 하세요. 그걸 먹던 맛을 아니까. 그래서 망한 요리도 살려주고, 요리도 해주고 했는데 지금은 혜나씨가 저보다 훨씬 더 잘 하죠. 요리도 요리지만, 혜나씨는 뭔가를 바라보는 시각이 저보다 더 넓고 깊어요. 제가 멘탈 쪽으로 많이 배우죠. 사실 혜나씨는 제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기자: 옆에 계시다고 너무 그러시는 것 아닙니까.

혜나: 다행이네요. 따로 따로 인터뷰를 안 해서.

기자: 자, 이제 슬슬 인터뷰를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클로징 멘트 부탁드리겠습니다.

찬호: 전 와이프 추천으로 웨사스를 시작하게 됐지만, 하면서 점점 더 고전의 힘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 며칠 안 남았는데 아직까지 못 보신 분들은 꼭 한 번쯤 보셨으면 좋을 것 같아요. 뮤지컬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이 봐도 너무 좋을 겁니다. 그리고 사실 부상이 많아요. 춤이 격렬하고, 액션신도 많고. 아프고 부상당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더 이상 다치지 않고 웨사스가 잘 마무리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혜나: 우선 양형모 기자님의 일일공프로젝트 인터뷰를 하게 되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기자 주: 정말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처럼의 공연 얘기도 좋았고요. 제 직업이 배우라는 것이 너무 감사한데 이프덴이라는 작품을 만나게 돼 더욱 감사해요. 저를 한 단계 더 성장시켜준 작품이었으니까요. 관객 여러분께서도 감동과 느낌을 저희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저로서는 소명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었어요.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혹시 갈까 말까 선택의 기로에 서 계시는 분들께서는 꼭 오셔서 이프덴을 보시고 감동을 한번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힘을 드릴 수 있는 배우가 되도록 열심히 노력해 보겠습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 | 쇼노트

※ 일일공프로젝트는 ‘일주일에 한편은 공연을 보자’는 대국민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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