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보를 지킨 외국인들” 반크, 호머 헐버트·어니스트 베델 알리기 캠페인 추진한다

입력 2023-11-06 10: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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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가 일본인에 의해 약탈당했던 대한민국 국보 ‘경천사지 십층석탑’ 반환을 위해 노력한 외국인 독립운동가 호머 헐버트와 어니스트 베델을 예우하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약탈 문화유산의 반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캠페인을 추진한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1층 로비에 들어서면 높이 솟아있는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을 만날 수 있다. 국보 제86호 경천사지 십층석탑은 1348년 고려시대 때 제작된 탑으로 당시 고려시대 사람들의 세계관을 확인할 수 있다. 기존 고려 전통 불탑 양식과 원나라에서 유래된 외래요소가 혼재되어 대리석으로 제작되는 등 현존하는 한국의 석탑과는 다른 독특한 석탑이며 높은 가치를 지닌 탑이다.

경천사지 십층석탑은 일본에 의한 약탈과 반환의 과정 등 수난을 겪어야 했다. 1907년 일본 궁내부대신 다나카 미스야키는 황태자 순종의 결혼식(가례)을 축하하는 일본 특사로 조선을 방문했다. 경천사지 십층석탑의 가치를 알고 있던 다나카는 고종 황제를 알현하는 자리에서 석탑을 선물로 달라고 요청했다. 고종 황제는 이러한 요구에 대해 역사적 유물은 백성의 재산이기에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없다며 다나카의 요청을 거절했다.

고종 황제가 자신의 청을 거부하자, 다나카는 총으로 무장한 많은 수의 일본인을 경천사에 보내 주민들과 군수를 위협하고 석탑을 해체하여 일본으로 무단 반출했다. 이후 석탑 약탈 소문이 퍼진 이후에도 다나카는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며, 혹은 고종 황제의 선물이라 거짓말로 변명했다.

이렇게 밀반출된 경천사지 십층석탑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과정엔 호머 헐버트와 어니스트 베델, 두 명의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의 역할이 매우 컸다.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영국 언론인 어니스트 베델은 1907년 3월 <대한매일신보>와 영문판 <코리아 데일리 뉴스>에서 다나카의 석탑 약탈 사실을 처음으로 폭로했다. 이후 10여 차례 기사와 논설을 계속해서 실으며 독자들에게 일본의 석탑 밀반출 만행을 고발해나갔다.

이러한 언론 행보에, 일본 정부의 대변지인 <재팬메일>이 해당 신문들의 기사가 터무니없다며 석탑 약탈 사실을 부인했다. 이에 분노한 또 다른 외국인 독립운동가 호머 헐버트는 직접 약탈 현장을 확인하며 주민들의 증언과 약탈 현장 사진 증거를 확보했다.

그는 일본 고베에서 발행되던 <재팬크로니클>지에 자신이 모은 약탈 자료들과 ‘한국에서의 만행’이라는 제목의 고발 글을 보냈다.

그는 다나카의 약탈 행위가 영국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세워진 넬슨 제독의 동상을 훔쳐 가는 것과 같은 만행이라고 비난하며, 일본 정부에 하루빨리 귀중한 한국 유물을 되돌려놓기를 강제하라고 요구했다.

일본 언론인 <재팬크로니클>지조차 다나카의 약탈 행위를 비판하고, 일본 정부의 반환 조치를 요구했다. 이는 일본 언론에서 일본인의 석탑 약탈을 최초로 공식화한 것으로, 일본 정부가 모른 체 할 수 없는 상황을 형성했다.

재팬크로니클의 보도에도 다나카가 석탑을 돌려주지 않자, 호머 헐버트는 국제 여론에도 이 사실을 보도했다. 네덜란드 헤이그 특사로 참여해 경천사지 십층석탑 약탈 사건 등 일본의 부당함을 폭로한 것. 그의 연설은 <만국평화회의보>와 뉴질랜드 지역 신문, <뉴욕포스트>, <뉴욕타임스> 등으로 보도되었고, 석탑 약탈에 대한 국제적 비난 여론이 형성됐다.

당시 이런 여론에 당황한 몇몇 일본 외교관들이 일본 정부에 반환을 건의할 정도로, 국제 사회 여론을 가장 신경 쓰고 있던 일본은 더 이상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다. 결국 일본은 1907년 다나카가 약탈한 우리 국보를 1918년이 되어서야 본국으로 반환했다.

어니스트 베델의 지속적인 석탑 약탈 문제 보도가 없었더라면, 호머 헐버트의 현장 심층 취재와 국제 사회에서의 문제 보도가 없었더라면,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은 본국에 돌아오지 못한 채, 타국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잠들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난사와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천사지 십층석탑 안내문엔 문화유산의 의미, 수난사와 복원 과정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긴 하지만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으며, 헐버트와 베델에 관해선 이들의 이름만 언급되는 정도이다.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속 경천사지 십층석탑 설명란에서는 수난사와 함께 헐버트와 베델의 노력을 그나마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관람객들의 추가 조사 과정이 필요하기에 관람객들은 안내문 속 설명, 특히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을 쉽게 잊을 수 있는 상황이다.

경천사지 십층석탑의 수난사와 해당 문화유산을 지켜낸 사람들의 노력은 당시 한국 사회를 담고 있고, 문화유산을 지키면서 빼앗긴 국가까지 지키고자 한 외국인 독립운동가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며, 여태 돌아오지 못한 약탈 문화유산의 반환 필요성까지 보여주고 있다.

반크는 경천사지 십층석탑을 지킨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을 예우하고 약탈 문화유산의 반환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대한민국 국보를 지킨 호머 헐버트와 어니스트 베델의 노력을 사회에 알리는 캠페인을 추진한다.

반크는 국민들에게 경천사지 십층석탑 반환을 위해 노력한 호머 헐버트와 어니스트 베델의 홍보 필요성을 담고 있는 포스터를 제작해 SNS에 배포하고, 대국민 정책 사이트인 울림에 관련 청원을 게시했다.
반크가 제작한 포스터에는 경천사지 십층석탑, 호머 헐버트, 어니스트 베델의 사진과 함께 “대한민국 국보를 지킨 호머 헐버트와 어니스트 베델을 기억해주세요!”라는 문구가 작성되어 있다.

또한 포스터엔 약탈 문화유산이었던 경천사지 십층석탑을 되찾을 수 있도록 기여한 호머 헐버트와 어니스트 베델을 예우하는 것과 함께, 약탈 문화유산을 적극적으로 되찾아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반크는 이번 캠페인을 통해 경천사지 십층석탑 반환에 기여한 호머 헐버트와 어니스트 베델의 노력이 널리 알려지고, 아직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약탈 문화유산 반환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길 기대하고 있다.

한편, 반크는 호머 헐버트와 어니스트 베델 등 한국을 위해 헌신한 외국인 독립운동가 글로벌 홍보 캠페인과 영국의 베델 동상, 캐나다의 스코필트 동상에 이어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헐버트 동상을 미국에 세우는 글로벌 캠페인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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