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얼로지]무더위 속 감각 깨우기…서울서 만나는 특별한 청각 여행지

지난해 5월 문을 연 오디오 테마 박물관 오디움의 지하2층 라운지. 오디움이 보유한 10만 여장의 바이닐 음반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입체적인 음향을 위해 패브릭을 소재로 꽃을 형상화해 공간 연출을 했다 사진제공｜서울관광재단

여행의 즐거움을 가장 먼저 느끼는 감각은 시각이다. 여행길에 마주한 화려한 풍광이나 탁 트인 전경, 짙은 녹음과 자연과 건물의 다양한 색이 주는 감동은 특별하다. 미각도 못지않다. 나들이 즐거움의 최우선 덕목인 식도락은 미각으로 느끼는 행복이다. 피부를 스치는 서늘한 바람을 느끼는 촉각이나 피톤치트 가득한 숲의 내음을 느끼는 후각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면 청각은 어떨까. 시원한 파도소리나 숲을 스치는 바람소리, 산새소리 등도 있지만 시각이나 미각만큼 여행의 재미를 한껏 고양시키지는 않는다.

서울 도심서 고즈넉하고 여유로운 산사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진관사 입구 사진제공｜서울관광재단

그런데 여행의 감각에서 우선 순위가 조금은 뒤로 밀리는 이 청각으로 느끼는 즐거움과 감동을 극대화하는 여행지들이 있다. 서울관광재단은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도심에서 일상에 지친 청각을 깨우고, 소리에 집중해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색다른 청각 여행지를 추천했다.

●빈티지 오디오 컬렉션 압권, 오디움
5월, 한국 박물관 최초로 유네스코가 시상하는 ‘2025 베르사유 건축상’ 박물관 부문을 수상한 곳이다. 2024년 5월 개관한 오디움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오디오의 역사를 담고 있는 박물관이다. 건물 외관부터 전시물까지 많은 볼거리가 있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알루미늄 파이프와 나무를 주제로 자연의 빛, 바람, 향기, 소리를 구현한 오디움 외관. 일본의 세게적인 건축가 쿠마 켄코 작품이다 사진제공｜서울관광재단

도쿄올림픽 주 경기장을 만든 일본 건축가 쿠마 켄고가 설계했다. 알루미늄 파이프와 나무를 주제로 자연의 빛, 바람, 향기, 소리를 건물 설계에 구현했다. 외관은 최장 40m에 이르는 2만여 개의 파이프가 수직으로 감싸 마치 빛과 그림자가 숲에 스며드는 느낌을 준다. 
실내는 스피커의 음향을 충분히 소화하도록 층고를 9m로 높게 만들었다. 목재를 사용한 인테리어는 따스한 인상과 함께 오디오 감상에 중요한 흡음재, 음향판 등의 역할을 담당한다. 1500여 대의 카메라가 있는 특별전시실과 엑시트 갤러리를 따라 내려오며 관람하고 10만여 장의 바이닐(LP 레코드)를 갖춘 지하 2층의 라운지에서 음악을 들으며 관람을 마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전체 관람투어 시간 100분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오디오 테마 박물관 오디움의 외관. 최장 40m에 이르는 2만여 개의 파이프가 수직으로 감싸 마치 빛과 그림자가 숲에 스며드는 느낌을 준다 사진제공｜서울관광재단

오디움의 자랑은 방대한 빈티지 오디오 컬렉션이다. 19세기에 만들어진 축음기와 뮤직박스, 1920년대부터 1960년대에 생산된 스피커와 앰프 등 100여 년에 걸친 오디오 발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매킨토시, 마란츠, JBL, 알텍랜싱 등 일반 애호가들에게도 친숙한 앰프와 스피커를 만나게 된다. 빈티지 오디오 마니아들이 열광하는 웨스턴 일렉트릭, 클랑필름 등의 브랜드도 있다. 오디오를 잘 모르는 사람도 즐거운 경험이다. 전시 후반에는 다양한 과거 뮤직박스, 오르골, 자동연주 피아노 등을 볼 수 있다. 지하 2층의 라운지는 입체적인 음향을 위해 패브릭을 소재로 꽃을 형상화한 공간 연출이 돋보인다. 

오디움에서 전시하고 있는 19세기 축음기들. 오디움은 100여년의 오디오 발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방대한 빈티지 오디오 컬렉션을 자랑한다 사진제공｜서울관광재단

지난해 개관에 맞춰 시작한 개관특별전 ‘정음(正音)-소리의 여정’은 ‘좋은 소리’를 향한 인류의 여정을 주제로 주 3일 진행한다. 100% 예약제여서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특히 하루 125명만 관람할 수 있어 2주에 한 번 화요일 오후 2시 홈페이지를 통해 1인 1매 예약해야 한다. 오디오 애호가, 건축 애호가들부터 일반에 이르기까지 입소문이 나 있어 예약 경쟁이 매우 치열한 편이다. (서울 서초구 헌릉로 8길 6 /교통 : 신분당선 청계산 입구역 1번출구 도보 20분)

●공감각적 감동, 국립중앙박물관 ‘공간_사이’
국립중앙박물관은 요즘 한국은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이고 젋은 세대에게도 꼭 가봐야할 ‘힙찬’ 명소로 인기가 높다.

국립중앙박물관 외관.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 젊은 세대에게도 인기 높은 명소로 프랑스 파리 오르셰 미술관보다 많은 관람객을 기록하며 아시아 박물관 1위에 올라 있다 사진제공｜서울관광재단

실제로 얼마전 영국의 미술아트 매체 ‘아트 뉴스페이퍼’는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의 2024년 관람객이 378만9000여 명으로 전 세계 8위라고 소개했다. 이는 프랑스 파리의 대표 명소 오르셰 미술관보다 많은 숫자다. 해외 여행객에게 인기가 높아 아시아 박물관 중 방문객 1위를 자랑한다.
상설전시장은 3개 층에 걸쳐 약 1만여 점의 유물이 전시하고 있다. 규모 면에서도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한다. 이곳에 최근 새로 등장한 소리 테마의 전시공간 ‘공간_사이’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최근 조성한 소리 테마의 전시공간 ‘공간_사이’. 한국의 범종 소리를 주제로 시각, 청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으로 즐길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다 사진제공｜서울관광재단

‘공간_사이’는 상설전시관 조각공예관 3층 청자실과 금속공예실 사이에 위치하는데, 금속공예실의 주요 전시품인 한국의 범종 소리를 주제로 시각, 청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으로 즐길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다. 세대, 국적, 박물관 경험 정도의 차이 등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관람객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최근 조성한 소리 테마의 전시공간 ‘공간_사이’. 한국의 범종 소리를 주제로 시각, 청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으로 즐길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다 사진제공｜서울관광재단

원래는 시각장애인도 함께 즐기는 전시 학습 공간 ‘공간 오감’의 연장선에서 기획했다. 이곳에서는 한국 범종을 대표하는 국보 성덕대왕신종 소리의 특징인 맥놀이(소리의 강약이 반복되며 길고 은은하게 이어지는 현상)를 시각, 청각, 촉각으로 경험한다. 동시에 범종음의 청각 체험을 위해 저주파수대 소리를 효과적으로 재현할 수 있게 스피커를 배치했다.
입구 양쪽에 놓인 의자와 LED 뒤편 청음 의자에는 셰이커(Shaker, 소리의 압력을 전달하는 진동기의 일종)를 부착해 소리와 진동을 함께 느낄 수 있다. 화면의 양 옆으로 성덕대왕신종의 실제 재질 축소 모형과, 범종의 재료인 구리, 주석, 타종하는 당목의 재료인 느티나무 등에 대한 촉각 체험도 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어린이박물관 입구. 도자기 퍼즐을 맞추거나 커다란 디지털 미디어 룸에서 유물을 찾는 등 기술과 놀이를 접목하여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전통과 역사를 느끼도록 해 준다 사진제공｜서울관광재단

국립중앙박물관은 전통 유물 전시뿐 아니라, 감각적 몰입과 세대별 맞춤 체험이 가능한 공간도 함께 갖추고 있다.
‘사유의 방’은 소리나 다른 감각을 차단하고 오롯이 두 반가사유상만을 마주하는 공간이다. 전시품이 빽빽한 기존 전시 공간과 달리 넓은 공간에 단 두 점만 전시해 관람객들이 공간을 이루는 모든 요소를 자연스럽게 느끼며 고요속에서 생각에 잠길 수 있도록 했다.
아이들에게는 박물관이 어려울 수 있다는 편견을 깨주는 어린이 박물관도 방학기간 찾기 좋다. 인기가 많아 예약이 어렵지만, 아이들이 뛰어놀며 유물에 대해 익히고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도자기 퍼즐을 맞추거나 커다란 디지털 미디어 룸에서 유물을 찾는 등 기술과 놀이를 접목하여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전통과 역사를 느끼도록 해 준다.(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교통 : 4호선 이촌역 2번 출구, 경의중앙선 서빙고역 1번 출구)

●도심서 느끼는 산사의 감흥, 진관사
진관사는 깊은 역사와 자연 속 정갈한 분위기, 그리고 전통문화를 모두 품은 서울의 대표 산사다. 지저귀는 산새소리를 들으며 숲길을 걷고, 범종의 울림 속에 머무르며 감각을 되살릴 수 있다. 소리의 여백, 혹은 자연의 소리로 힐링의 시간을 선사한다.

여름의 짙은 녹음이 인상적인 진관사 계곡. 진관사는 깊은 역사와 자연 속 정갈한 분위기, 그리고 전통문화를 모두 품은 서울의 대표 산사다 사진제공｜서울관광재단

일주문을 지나 만나는 계곡과 극락교는 서울에서 보기 드문 분위기를 선사한다. 극락교는 부처님이 계신 극락을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다리라 이름 붙여졌는데, 절에 들어서기 전에 만나는 전통찻집 연지원에서 그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

진관사 입구에 있는 전통찻집 연지원. 진관사의 명물인 극락교 경치를 감상하기 가장 좋은 위치다 사진제공｜서울관광재단

사찰의 중심 전각인 대웅전, 석조관음보살좌상과 아미타후불 홍탱을 봉안한 나가원, 최근 3.1 운동 때 태극기가 발견된 칠성각 등이 있다. 동정각에는 높이 160cm, 구경 91cm의 대형 범종이 있다. 새벽에 28번, 저녁에 33번을 타종한다. 오후 6시30분이면 그 맑고 깊은 울림을 경험할 수 있다. 함월당에서 템플스테이를 한다면 새벽 종소리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진관사 칠성각. 얼마전 많은 관심을 모은 3.1 운동 당시 태극기가 발견된 곳이다 사진제공｜서울관광재단

진관사 내부에는 1700년간 이어진 사찰의 음식문화를 계승하고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는 향적당과 산사음식연구소가 있다. 진관사를 찾는 국내외의 여러 손님이 산사 음식을 직접 배우고 맛보게 해 한국의 불교 정신을 알리는 장소다.(서울시 은평구 진관길 73 /교통 : 연신내역 3번 출구 셔틀버스 이용 (08:30, 09:00, 09:30)

●암흑 속 소리를 통한 소통, 어둠속의 대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지만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존재한다’는 슬로건이 인상적인 색다른 체험 공간이다. ‘어둠’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시각을 차단한 채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진정한 소통의 발견을 할 수 있는 전시다.

서울 북촌에 있는 ‘어둠속의 대화’ 전시장. 시각을 차단한 채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진정한 소통의 발견을 할 수 있는 전시다 사진제공｜서울관광재단

전시장에 입장하면 어떤 전자기기도 소지할 수 없으며, 맹인 로드 마스터(안내자)의 인도에 따라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을 이용해 체험하는 시간을 갖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100분이라는 시간 동안 색다른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예약제로 운영되며 15분 간격으로 1회당 최대 8명의 단위로 운영한다.

‘어둠속의 대화’를 시작하는 입구. 맹인 로드 마스터(안내자)의 인도에 따라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을 이용해 100분간 체험하는 시간을 갖는다 사진제공｜서울관광재단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어둠 속을 걷기 시작하면 처음엔 낯설고 어색하지만, 점차 발걸음의 박자,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 동반자의 음성 등 평소 인식하지 않았던 다양한 소리들이 감정과 기억을 자극한다.
음료를 마실 때도 맛보다는 컵을 내려놓는 소리와 따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전시는 ‘회상기억 그리고 추억의 전람’을 주제로, 소리와 감각을 매개로 한 개인의 기억을 이끌어내도록 구성되어 있다.

‘어둠속의 대화’ 굿즈. 전시는 ‘회상기억 그리고 추억의 전람’을 주제로, 소리와 감각을 매개로 한 개인의 기억을 이끌어내도록 구성되어 있다 사진제공｜서울관광재단

눈을 감으니 도리어 더 많은 것이 보인다고 느끼게 할 정도로 데이트 코스로도, 친구나 가족과 함께해도 서로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71/교통 :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 약 700m)


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