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물여덟이나 아홉쯤, 아내와 제주도 여행을 했다.
차를 렌트하지 않고 버스와 택시로 제주도를 다녔고, 드디어 서울로 돌아오기 전날. 우리는 제주공항에서 가까운 협재에서 제주의 마지막 일정을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현금이 바닥이 나버린 것이다. 협재는 생각보다 시골스러웠고 카드는 언감생심, 수표도 받지 않았다. 방값을 내고 저녁 밥값을 빼고 나니 그럭저럭 2000원쯤 남았던 것 같다.
우리는 이 돈으로 소주 한 병과 새우깡을 사서는 바다로 나갔다.

협재의 바다는 참 예뼜다. 여행을 많이 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더 예쁘게 보였을 테지만, 이런 곳에 둘이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던 것 같다.
아내는 술을 한 잔도 못 했던 터라 소주는 나 혼자 병째 들고 마셨다. 아내는 바나나 우유 같은 것을 마셨을 것이다.

밀물 때가 되어 우리가 앉은 바위가 섬이 되어 버린 것을 알아챘을 때는 퇴로가 바다에 푹 잠긴 후였다. 꽤 고생을 해서, 당연히 푹 젖은 생쥐 꼴이 되어 숙소로 돌아온 기억이 난다. 뭐가 좋았는지 우린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한참을 웃었다. 나는 조금 취해 있었다.

#2.

그 후로 나는 해변에서 종종 새우깡에 소주를 마시곤 했다.
병째 목구멍으로 뜨거운 소주를 넘기고, 짠 새우깡을 씹다 보면 어느새 눈앞에 눈이 아프도록 파란 그날의 협재 바다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덕적도. 오랜만에 소주에 새우깡이다.
더 좋은 술에 더 좋은 안주를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서는 여전히 이 조합이 내겐 족하다.

50대의 나는 20대에서 별로 성장한 게 없구나 싶어 서운하기도 하지만, 아직도 난 용케 변하지 않고 살아왔구나 싶어 대견해지기도 한다.

20년 후의 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서 소주와 새우깡을 먹을 수 있을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참 기쁠 것 같다. 임플란트 세 개쯤 해 넣은 이를 드러내곤, 아내를 보며 씨익 웃을지도 모르겠다. 아내도 웃어줄지는 모르겠지만.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