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금고’의 문이 열렸다. 북한 정권의 심장부, 김정은 개인 비자금의 실체를 추적한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의 신간 ‘김정은의 숨겨진 비밀금고(동아일보사 출간)’가 출간됐다.

이 책은 김정은의 사적 자금 흐름과 그 배후 조직을 실명과 구조도로 해부한 최초의 기록물이다. 저자는 김씨 일가의 ‘생활 자금’을 관리하는 국무위원회 36국(옛 본부서기실 36과)을 중심으로, 북한 권력의 숨은 회계 체계를 드러낸다. 공식 예산선 밖에서 작동하는 36국은 생활·의전·물자 조달을 모두 관장하며, 노동당 39호실이 ‘공적 비자금’을 다룬다면 36국은 ‘사적 비자금’을 관리한다. 모든 결정은 결국 김정은에게 집중된다. 이 때문에 어느 기관도 감사를 할 수 없고, 36국은 ‘절대 성역’으로 존재한다.

책은 36국의 기능을 ‘조달–집행–보위’의 삼중 구조로 설명한다. 본부서기실이 단순한 일정 관리 기구가 아니라 수령 개인의 비서실이자 그림자 재무부로 작동한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36국과 39호실의 계정이 교차 운용되는 구조, 해외 대사관 통제선 밖에서 움직이는 파견 인력, 전 세계 공급망과 직접 연결된 사치품 조달 경로까지, 실제 회계 메커니즘이 상세히 제시된다.

저자는 핵·미사일 개발 재원의 원천을 비자금 추적과 함께 엮는다. ‘핵은 어떤 주머니에서 자금을 받는가’라는 질문 아래, 다층적 비공식 경제와 우회 거래망을 추적하며 권력과 돈의 밀착 구조를 해부한다. 또한 장성택 숙청 이후 벌어진 ‘비판서 캠페인’과 대숙청의 참상,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체제 내부의 공포 통치 양상도 구체적으로 기록한다.

저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책은 북한의 핵과 자금, 권력의 삼각편대를 해독하려는 이들에게 필수적인 열쇠가 될 것이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