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을 잃은 이가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어떤 풍경을 마주하게 될까. 연극 ‘라스트 호프(Last Hope)’가 시각의 한계를 넘어 감각의 지도를 펼쳐 보인다.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사장 방귀희)은 해외초청작 ‘라스트 호프’를 11월 14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충정로 모두예술극장에서 선보인다. 이번 공연은 칠레 공연창작단체 ‘콜렉티보 쿠에르포 수르(Colectivo Cuerpo Sur)’가 제작한 작품으로, 1%의 시력만 남은 배우 힐다 스닙페(Hilda Snippe)와 퍼포머 에바나 가린(Ébana Garín)이 무대에 선다.

‘라스트 호프’는 시각 중심의 세계에 질문을 던지며 감각의 다층적 세계를 탐구한다. 눈으로 보는 대신, 촉각·청각·기억으로 세상을 그려내는 방식이다. 이미지가 지배하는 무대 위에서 ‘보는 행위’가 희미해질 때, 무대는 느끼는 공간으로 변모한다. 두 배우의 섬세한 움직임과 속삭임은 관객에게 ‘보지 않고도 보는 경험’을 제안한다.

주연 배우 힐다 스닙페는 유전성 안질환으로 시력을 잃었지만, 지난 30년간 접근성과 포용을 위한 사회활동가로 활발히 활동해왔다. 그는 현재 네덜란드 ‘레이우아르던 시청 접근성 실무그룹’ 의장을 맡고 있으며, UN 장애인권리협약 이행 과정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는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이번 작품은 힐다 스닙페가 오랫동안 꿈꿔온 ‘안데스산 설원 여행’을 감각적으로 재현하며, 그가 기억과 상상 속에서 어떻게 세상을 ‘본다’는 의미를 풀어낸다. 초연 당시 칠레 현지에서 관객과 평단의 뜨거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연출을 맡은 ‘콜렉티보 쿠에르포 수르’는 2019년 창단된 칠레의 공연 창작 단체다. 기억·정체성·영토 등 사회적 주제를 예술적으로 탐구하며, 이번 ‘라스트 호프’를 통해 감각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한다.

한편, 공연이 열리는 모두예술극장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운영하는 국내 최초의 장애예술 표준공연장이다. 2023년 10월 개관 이후 ▲장애예술인 창작 활동 촉진 ▲배리어프리 공연 확대 ▲장애예술인·단체 우선 대관 제도 등을 통해 장애예술의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라스트 호프’의 티켓은 전석 3만 원이며, 모두예술극장 홈페이지와 NOL티켓에서 예매 가능하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