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성·박찬욱 감독,  사진제공|CJ ENM

강윤성·박찬욱 감독, 사진제공|CJ ENM


영화계가 AI(인공지능) 기술의 거친 파고 앞에 섰다.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제작 방식의 혁신과 창작의 본질조차 고민하는 ‘중간계’적 상황에 놓였다. AI를 구원 투수로 환영하며 제작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움직임과, 인간의 자리를 위협하는 경쟁자이자 시대적 혼돈의 상징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공존한다.

O제작비·제작기간 절감을 위한 돌파구

영화 ‘범죄도시’, 디즈니+ 시리즈 ‘카지노’ 등을 연출한 강윤성 감독은 15일 개봉한 ‘중간계’를 통해 AI가 상업영화 제작에 가져올 혁신을 증명하며, AI 영화의 ‘퍼스트 펭귄’(선구자)을 자처했다. 이승과 저승 사이 ‘중간계’에 갇힌 사람들과 그들을 소멸시키려는 존재들의 추격을 그린 이 작품은, 생성형 AI를 본격적으로 활용한 국내 첫 장편 영화이다.

강 감독에 따르면 ‘중간계’는 기존 CG나 VFX로 구현하던 액션 및 판타지 장면을 생성형 AI로 완성해 작업 시간과 예산을 혁신적으로 단축했다. 차량 충돌과 폭발 장면은 기존 대비 획기적으로 줄어든 1~2시간 만에 완성됐고 수백억 원대 예산이 투입되는 판타지 액션 장르임에도 총 제작비로 6억 원이 소요됐다.

강 감독은 영화 제작비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황에서 ‘AI는 새 돌파구’라며 “좋은 기술이 산업을 바꾸는 건 숙명이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건 시대에 대한 저항”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 역시 최근 열린 남도영화제 GV(관객과의 대화)에서 이런 강 감독의 시도를 높게 평가하며 ‘AI가 한국 영화의 생존을 위한 길이 될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놨다.

사진제공|CJ CGV

사진제공|CJ CGV

O‘예술적 창의성’ 논쟁

AI를 마냥 환영하는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거장 박찬욱 감독은 새 영화 ‘어쩔수가없다’에 원작 소설에는 없는 새로운 엔딩 장면을 추가해 AI 발전으로 인한 실존적 불안과 그 우려를 담아 눈길을 끌었다. 극단적 방법을 써가면서까지 재취업에 성공한 주인공이 AI 시스템을 통해 자동화된 현장에서 홀로 일하고 있는 장면은, 어렵게 얻은 새 직장도 AI로 인해 오래가지 못할 것을 암시한다.

이에 대해 박 감독은 “AI 발전 속도를 가늠하기 힘들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혼돈의 상태’를 엔딩 장면에 담아내려 했다고 밝혔다. 앞서 박 감독은 CNN과 인터뷰를 통해 AI의 ‘예술적 창의성’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드러내며 “AI가 작가나 프로듀서를 대체해선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할리우드 역시 AI 활용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택시 드라이버’버‘ ‘성난 황소’ 등을 쓴 유명 각본가이자 ‘퍼스트 리폼드’를 연출한 폴 슈레이더 감독은 AI의 영화계 도입을 적극 환영한 반면 ‘판의 미로’, ‘셰이프 오브 워터’, ‘프랑켄슈타인’ 등을 연출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내 영화에 AI를 쓰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적대적 입장을 드러냈다.


이승미 기자 s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