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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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방송과 연극 70년 역사의 산증인이자 대배우 이순재가 25일 세상을 떠났다. 대중의 삶을 위로해온 거목의 낙조에 연예계와 시청자는 깊은 슬픔에 잠겼으며, 그가 지난해 KBS 연기대상에서 대중에게 전한 마지막 인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순재는 지난해 말부터 건강 이상설에 휩싸이며 활동을 중단했다. 그러나 활동을 멈추기 전까지도 연극 무대와 방송을 오가며 누구보다 활발하게 연기 활동을 이어왔다. 특히 지난해 KBS 드라마 ‘개소리’로 데뷔 70년 만에 생애 첫 연기대상을 품에 안았다.

수상 무대에 오른 그는 “오래 살다 보니까 이런 날도 있다”며 감격한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어 “미국 배우 캐서린 햅번은 60대 이후에도 세 번이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공로상이 아닌 연기상이었다. 연기를 잘하면 나이가 60을 먹어도 상을 주는 거다. 연기를 연기로 평가해야지 인기나 다른 조건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고 소신을 밝혔다.

가천대학교 석좌교수로서 13년간 학생들을 가르쳐온 그는 제자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특히, 마지막으로 그는 시청자를 향해 “시청자 여러분, 평생 여러분께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다. 감사하다”며 울먹이는 진심을 전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남겼다.

한편 이순재는 건강 회복을 위해 지난해 말부터 연극 활동과 외부 스케줄을 모두 내려놓고 휴식에 들어간 이후 1년여 만인 25일 새벽 별세했다. 빈소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이순재는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한 뒤 1960년 KBS 공채 1기 탤런트, 1965년 TBC 전속 배우로 활동하며 한국 TV 드라마 시대와 함께 성장했다. 그는 브라운관, 연극, 영화를 넘나들며 분단·산업화·민주화 등 현대사의 격동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을 진한 체온과 삶의 무게로 묘사해왔다.

출연작만 140편이 넘는다.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허준’, ‘이산’ 등에서 묵직하고 섬세한 연기로 ‘국민 아버지’, ‘국민 할아버지’라는 호칭을 얻었고, tvN ‘꽃보다 할배’ 등 예능에서도 남다른 존재감을 보였다. 연극 ‘리어왕’, ‘갈매기’, ‘앙리할아버지와 나’ 등 대사량과 감정 소모가 큰 작품을 80대 후반까지 완주하며 ‘노장의 상징’, ‘무대 위의 교과서’라는 찬사도 받았다.


이승미 기자 s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