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와이프, 여친 눈치 보는 EPL, ‘패밀리 케어’ 프로그램 투자까지 정성

맨체스터 시티의 엘링 홀란(왼쪽)과 여자친구 이사벨 요한센이 이탈리아 로마의 한 명품 브랜드 행사에 참석한 모습. 요즘 EPL 클럽들은 선수들의 만족도 못지않게 가족들의 향수병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사진출처｜엘링 홀란 인스타그램

영국은 화창한 날씨가 드물다. 을씨년스럽고 비도 잦다. 영하로 떨어지는 날은 많지 않은데 항상 서늘하고 춥다. 연중 내내 온화하고 따스한 지역에서 거주하던 사람들은 영국 생활이 더 버거울 수 밖에 없다.

프리미어리그(EPL) 클럽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아무리 많은 돈을 보장하더라도 맑은 날씨를 줄 순 없는 법이다. 그나마 선수들은 괜찮다. 가족들은 다르다. 영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향수병을 호소하다 떠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당연히 이혼도 이별도 잦다. 장기적으론 선수들의 경기력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 많은 EPL 클럽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선수들이 가족의 고충을 받아들여 혹여나 이적을 택하지 않을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래서 선수와 가족이 새 환경에 익숙해지고 매끄럽게 정착하도록 ‘플레이어 케어’ 그룹을 운영한다. 선수들이 오직 경기와 훈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2020년 ‘선수 케어’ 프로그램을 도입한 전문가 휴고 셰크너는 최근 영국 대중지 ‘데일리 미러’를 통해 “EPL에서는 선수 파트너가 직업을 가진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서 파트너들을 행복하게 만들도록 많은 팀들이 패밀리 프로그램에 점차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면서 “선수는 정말 행복하더라도 파트너와 가족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새로운 나라에 정착하는 건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실제 많은 선수 배우자들과 여자친구들이 영국 생활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심지어 혐오감을 내비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14년 여름부터 이듬해 8월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던 아르헨티나 스타 앙헬 디마리아의 아내 요르겔리나 카르도소는 2022년 무렵, 자신의 남편이 영국에서 뛴 시절을 떠올려달라는 아르헨티나 매체 ‘LAM’의 물음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영국인들은 정말 이상했다. 여자들은 차가웠고, 음식도 역겨웠다. 남편과 난 스페인 마드리드(레알 마드리드)에서 최고의 시간을 보냈다. 세계 최고의 클럽인데다 완벽한 음식과 완벽한 날씨가 있었다. 그 후 맨유의 제안이 왔다. 난 진지하게 ‘말도 안 된다’고 거부했는데 남편은 ‘재정적 이유’로 영국행을 고집했다. 그의 선택을 비난하지 않겠지만 정말 끔찍했다.”

결국 디마리아는 아내의 성화에 못이겨 프랑스(파리 생제르맹)로 향했고 비로소 안정적인 생활을 되찾을 수 있었다.

맨유의 연고 라이벌인 맨체스터 시티에서 뛰었고 지금은 튀르키예 명문 갈라타사라이로 향한 독일 국가대표 출신 슈퍼스타 일카이 귄도안도 아내가 영국 생활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그의 아내 아르파우이는 현지에서 가장 좋아했던 레스토랑을 꼽아달라고 하자 “미안하다. 솔직히 말해 슬프게도 아무 것도 없었다. 좋은 레스토랑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여기저기 끔찍한 음식들만 있었다. 진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나 멋진 스시, 신선한 음식이 없었다. 대부분 냉동식품이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스포츠 과학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다. 그러나 아무리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도입해도 정작 선수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면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마음이 편한 선수가 피치에서도 더 강렬한 퍼포먼스를 내는 법이다. 셰크너는 “선수들이 일상 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아야 좋은 경기력을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