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 눈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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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세상이 지옥이라고 배웠지, 나는 세상이 꽃과 열매라고 배웠어.”

극 중 태풍의 대사처럼 ‘태풍상사’는 IMF 외환위기란 시대의 질곡 속에서도 사람들 사이 온기에서 기어코 꽃과 열매의 향긋함을 발견해 내는 작품이다. 드라마는 단순히 90년대 복고적 낭만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불안과 결핍의 정서를 충실히 복원하며 세대 간 소통의 매개로도 큰 호응을 얻었다.

‘태풍상사’가 최고시청률 12.1%를 기록할 만큼 대중의 공감을 끌어낸 데에는 90년대 청춘의 초상을 섬세하게 표현한 주인공 이준호와 김민하의 역할이 적지 않다. 압구정 오렌지족에서 하루아침에 초보사장 된 강태풍 역의 이준호와 그를 조력하는 경리 오미선 역의 김민하는 단단히 무게 중심을 잡으며 서사에 대한 몰입을 이끌었다.

김민하가 연기한 ‘태풍상사’의 오미선은 IMF 위기 속 가장으로 일어선 ‘케이(K) 장녀’이자 직장 내 구시대적 성역할이 잔존했던 때에도 ‘(여성)상사’로 커리어를 개척하는 굳센 인물이다. 김민하는 자신을 세상에 알린 ‘파친코’ 시리즈에 이어 ‘태풍상사’로 또 한번 시대극에 도전했다. 그는 ‘살아보지 않은 시대를 한 인물을 통해 치열하게 살아볼 수 있다’는 점을 시대극의 매력으로 꼽았다. “더 많이 공부하게 되고 더 많은 상상력이 틈입할 여지가 있어요. 저로서는 더 많은 걸 품게 하고, 동시에 뿜어내게 하죠.”

사진제공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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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게 현실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죠”

미선은 강한 생존력을 지닌 케이 장녀지만 시대의 격랑에 상처받고 위로받는 여느 청춘과 다르지 않다. 김민하는 극 중 고마진(이창훈) 과장이 여성이란 이유로 업무에서 배제할 때 실제로 눈물을 참기 힘들었을 정도로 미선에 ‘동화’되기도 했다. 그렇듯 미선에 흠뻑 젖어든 건 그가 한 캐릭터에 집요하리만치 파고드는 연기자이기 때문이다.

“지독하게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싶었어요. 어딘가에 ‘실제로 살고 있을 이 인물’이 제가 펼쳐낸 캐릭터를 봤을 때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했어요. 곁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는 사회초년생인 미선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자신이 20대이던 쓴 일기를 찾아보기도 했다. “표현이 아주 거칠더라”며 나름의 감상평을 남긴 그는 그럼에도 그 안에서 무언가를 순수하게 열망하는 마음, 작은 일에도 일희일비하며 안타깝고 분한 마음들을 들춰봤다고 했다.

“일기는 지금도 매일 써요. 내용이요? 비밀이에요.(웃음) 죽기 전엔 꼭 다 태워버려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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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코킹’ 이준호와 키스신 “걱정 많이 했어요”

김민하는 태풍 역의 이준호와 일명 ‘풍선커플’로 불리며 드라마에 소소한 재미를 더하며 흥행을 견인하기도 했다. 자타공인 ‘로코킹’ 이준호이지만 정작 그와의 키스 장면에선 덜컥 걱정이 앞섰다고 했다. ‘동료’로서 친해진 후 촬영이 잡혀 ‘혹여 낯간지럽지는 않을지’ 하는 우려였다.

“하지만 막상 카메라가 돌아가니 너무 편안하게 이어졌죠. 동료로서 워낙 우애가 깊었고, 우리가 각자 맡은 미선과 태풍을 너무 사랑한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차기작 촬영을 마치고 잠시 쉬고 있다는 그는 ‘태풍상사’에서 잠시 벗어나 최근 가장 큰 감흥을 준 작품으로 영화 ‘국보’를 언급하기도 했다. ‘국보’는 ‘파친코 2’를 함께한 이상일 감독의 신작으로 역대 일본 실사 영화 가운데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영화를 보고 한동안 먹먹해졌다는 그는 이상일 감독에게 “언젠가 꼭 다시 작품을 함께 하고 싶다”는 문자를 보냈다. 

“한 사람의 인생과 예술혼을 진하게 압축해 놓은 그 밀도에 충격받았죠. 언젠간 저 역시 한 인물의 밑바닥까지 긁어내는 그런 역할을 꼭 해보고 싶어요.”


장은지 기자 eun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