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마시는와인]장레옹파고메를로

입력 2008-04-03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스페인에佛씨뿌려‘꿈의맛’낳다
과외 장소인 와인 바. 김은정이 ‘장 레옹 파고 메를로(JEAN LEON PAGO Merlot)’를 주문한다. 붉은 액체가 와인 잔으로 옮겨진다. 한 모금을 입 안으로 넘겼다. 입 안을 가득 채우는 묵직함이 느껴진다. 뭐랄까. 연유를 마시는 느낌이랄까. 김은정이 묻는다. “와인의 색과 맛에 대해 느낀대로 말해볼래?” 색이라고? 붉은 색인데 무슨 얘기람. “블루베리 맛이 나는 것 같아. 입에 담기는 느낌이 묵직하고. 색이야 뭐 붉은 색인 것 같은데.” “레드 와인을 보고 색이 뭔지 말하라고 하니 이상했지. 그런데 불빛에 잔을 대고 한번 자세히 봐. 붉은 색은 붉은 색인데 체리 빛깔이 나지 않아. 레드 와인이 다 똑같은 색깔로 보이는 것 같지만 와인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어. 그럼 이제 맛을 볼까. 난 토스트, 코코넛 향이 먼저 코끝을 자극하고, 블랙베리와 체리의 스파이시하면서 달콤한 맛이 느껴지는데.” 그렇게 여러 가지 맛을 느끼지 못했는데 ‘역시 차이가 있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김은정이 재미있는 얘기를 꺼낸다. 이 와인을 만든 장 레옹에 대한 이야기다. “장 레옹은 스페인 사람인데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할리우드의 레스토랑 ‘빌라 카프리’에서 웨이터로 일했어. 이곳에는 나탈리 우드, 그레이스 켈리, 제임스 딘 등 배우 지망생이 많이 찾았는데 특히 제임스 딘과 친해져 함께 레스토랑을 차리기로 했지. 그런데 제임스 딘이 사고로 죽고 장 레옹 혼자 베벌리힐스 중심가에 레스토랑을 차리는데 이게 바로 너무나도 유명한 ‘라 스칼라’야.” “아! 할리우드 스타들의 단골 레스토랑이라는 거기?” “맞아. 할리우드 스타는 물론이고 닉슨, 케네디, 포드, 레이건 등 미국 대통령도 애용했지. 장사는 나날이 잘 됐지만 레옹은 한가지 아쉬운 마음이 있었어. 바로 음식과 어울리는 완벽한 와인이었지. 그래서 직접 와인을 만들기로 결심해.” “이거 대단한 열정인걸.” “여기서부터가 재미있는 부분인데 스페인 페네데스 중심부에 포도밭을 산 레옹은 꿈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스페인 접경국인 프랑스에 가서 ‘샤또 라피트 로칠드’ ‘샤또 라 라귄’ ‘꼬르똥 샤를르마뉴’에서 레드 품종인 까베르네 소비뇽과 화이트 품종인 샤르도네 포도나무 접수를 구해 반씩 나누고 자신은 스페인 서쪽 국경선으로, 수석양조학자 하우메 로비라는 동쪽 국경선으로 밀수를 감행해. 둘 중 한 명이 국경선에서 잡히더라도 한 명은 통과하도록 만반의 조치를 취한거지. 이렇게 어렵게 갖고 온 접수를 심어 탄생한 와인이 바로 장 레옹이야.” 이건 목화씨를 원에서 고려로 가져온 문익점 스토리와 견줄만한 얘기 아닌가. 이제 겨우 두 번째 과외지만 벌써 와인에 재미가 붙는 것 같다. 다음엔 뭐가 등장할까. 이길상 기자 juna109@donga.com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KISA 정회원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