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Black&White]군인은바둑리그못나와!

입력 2008-04-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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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첫 우주인이 온 국민의 희망과 꿈을 실은 채 러시아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향해 떠나던 날, 반상에서는 세계 최대의 기전이라는 한국바둑리그의 개막식이 열렸습니다. 기전 총 규모 35억원, 상금만 16억원에 달하는 매머드 기전으로 8개 팀, 48명의 선수들이 출전하는 KB국민은행 2008한국바둑리그는 프로기사라면 누구나 염원해 마지않는 꿈의 무대지요. 리그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랭킹 28위 안에 들거나 ‘지옥’으로 표현될 만큼 치열한 선발전을 거쳐야 합니다. 일단 한국바둑리그의 선수로 뛰게 되면‘한 해 농사 끝’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선수들은 수입과 명예를 양 손에 쥘 수 있게 됩니다. 선발전은 지난 3월19일부터 21일까지 한국기원 대회장에서 열렸습니다. 상위 28위에 들지 못한 기사들이 12장의 리그 진출티켓을 놓고 그야말로 불꽃이 난무하는 승부의 혈전을 펼쳤지요. 그런데 여기서 대회 진행자들을 당혹케 하는 ‘사건’ 하나가 터졌습니다. 현역 군인 신분인 박승현(사진)이 승승장구 3연승을 거두며 덜컥 선발이 되어버린 겁니다. 한국기원은 박승현 상병의 리그 출전 허용 여부를 놓고 대의원회의, 프로기사 임원회의를 여는‘장고’끝에 출전불가로 결론짓고 랭킹 29위 배준희에게 대신 기회를 주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박승현은 “소속 부대에서 한국리그 출전을 허용했다”며 부대에서 써 준 확인증을 들고 이의를 제기했지만 결국 처진 어깨를 한 채 부대로 복귀해야 했습니다. 박승현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한국기원으로서도 고육지책이었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가뜩이나 연예인 등 일부 스타들의 ‘부실 군복무’가 문제되는 요즘 현역군인이 전 경기가 TV를 통해 생중계되는 한국바둑리그에 출전한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면 왜 애초에 선발전에 출전시켰느냐?”는 지적에는 한국기원도 할 말이 없겠지만요. 사실 그 동안 군인기사의 기전출전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1994년에는 군복을 입은 김승준이 국기전 도전자가 돼 이창호와 5번 승부를 벌였던 일도 있지요. 조훈현 9단이 공군 복무 시절, 고참들이 “지면 위병소부터 포복으로 기어서 들어와라”라고 엄포를 놨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호랑이가 K2 소총 들고 훈련받던 시절의 얘기입니다. 양형모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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