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지기부터‘미술관꽃’이된큐레이터

입력 2008-04-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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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노 후지히코의 인기 만화 ‘갤러리 페이크(Gallery Fake)’의 주인공 후지타 레이지는 큐레이터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큐레이터로 일하다가 일본으로 돌아와 복제 전문 갤러리에서 일하는 전천후(?) 인물이다. 때로는 전시기획자로 때로는 보존처리사로, 어떤 때는 작품감정사이자 복원기술자로서 미술 판을 종횡무진 활약한다. 이 만화를 계속 읽다보면 과연 큐레이터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대한 혼란은 무엇보다 그 호칭에서 잘 드러난다. 필자의 명함에 찍혀 있는 공식 직업명은 큐레이터, 즉 ‘학예연구사’이다. 큐레이터의 주 업무는 전시 기획 및 소장품 관리를 담당하는 것인데, 필자를 부르는 호칭은 실로 다양했다. 가장 무난하고 보편적인 호칭은 ‘큐레이터’와 ‘OO씨’이다. 이보다 살짝 무거운 느낌의 ‘큐레이터 선생님’과 ‘학예연구사님’을 거쳐 아주 가끔 ‘아가씨’와 ‘미스O’로도 불렸다. 한 때 갤러리에서 커피만 타도 큐레이터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때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호칭으로 불리는 것이 전혀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가장 인상에 깊이 남아 있는 호칭은 ‘관리 아가씨’였는데, 이 호칭이야말로 큐레이터의 기원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18세기 말에 탄생한 유럽의 공공 미술관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큐레이터란 각 지역에서 발굴한 진귀한 유물이나 작품들을 창고에 모아 그것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창고지기, 즉 창고 관리자를 일컫는 말이었다.(그리고 그 창고는 오늘날 수장고로 불린다) 물론 나를 ‘관리 아가씨’라고 부른 그 분이 이런 역사까지 알고 그렇게 부르신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창고지기에서 출발한 큐레이터가 1980년대 일부 대규모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에 도입된 이후, 아직까지 그 개념이 대중들에게 정확히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큐레이터가 박물관·미술관에서 문화재나 미술 작품에 대해 연구를 하는 전문 인력이라는 것은 정설이다. 그러나 소장품 없이도 전시가 이루어지는 오늘날 온라인 미술관이나 기차역·공원 등에서 열리는 공공미술을 전문으로 하는 큐레이터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만화 갤러리 페이크에서 전시기획자, 작품감정사, 그리고 복원기술자로서 활약하는 후지타를 한데 묶어 큐레이터라 칭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결국 큐레이터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에 대해선 답이 여러 개일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큐레이터 본래 의미가 유난히 왜곡됐다는 지적도 절반은 진실이다. 중요한 것은 오늘날 미술 작품이나 전시 개념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는 만큼 큐레이터에 대한 개념과 조건들도 같이 변한다는 사실이다. 그 누가 알았겠는가. 몇 세기 전 창고지기가 오늘날 미술관의 꽃이 되었을 줄이야. 박 대 정 모란갤러리 큐레이터로 유쾌, 상쾌, 통쾌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는 미술 전시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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