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용·왕영은의행복한아침편지]묻지마가족나들이

입력 2008-04-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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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얼마 전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이 다함께 온천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사실 가족이 다같이 나들이를 한다는 것이 아이들 어릴 적에나 가능하지 애들이 중학교만 넘어서도 절대 따라갈 생각도 안합니다. 어느덧 아이들도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니까 다같이 모여서 밥 한 번 먹는 것도 어쩜 그렇게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보니 가족이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은 더 어려워졌고 미루다 보면 제가 원하는 가족여행은 거의 포기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여행 얘기가 나와서 그럼 주말 하루코스로 온천이라도 다녀오자고 했습니다. 웬일로 그날은 모두가 시간이 된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오랜만의 나들이라 기분이 너무나 설레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궁리했습니다. 문득 친구들 가족도 함께 갔으면 하는 생각에 전화를 걸어 목적지 부근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습니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애들이 또 다른 가족들이랑 같이 간다고 하면 절대 안 간다고 할 게 뻔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온천가는 날짜가 되었고 아이들을 깨워 새벽 일찍 출발을 했습니다. 저는 다른 집 가족들 만날 생각에 음식점 핑계를 대며 좀 씻고 가라고 했더니 이 녀석들은 어차피 하루 종일 온천에 가서 씻고 할 텐데 왜 씻느냐며 옷만 대충 갈아입고는 차에 탔습니다. 저는 속으로 걱정이 됐지만 일단 가고 보자는 생각으로 온천으로 출발했습니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왔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친구들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 일단은 주변에 있는 음식점에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일은 그 때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바로 음식점에서 주문한지 얼마 안 돼서 제 휴대전화는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얼른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고는 제가 있는 음식점으로 모두들 오라고 말을 해두었습니다. 그리고는 무슨 전화냐고 묻는 애들 앞에서 시치미를 딱 떼고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 둘 친구네 가족들이 도착해 음식점으로 들어와서 마치 우연히 만난 것처럼 아는 척을 했습니다. 그러자 우리 집 애들의 표정이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기어코 제 딸이 “엄마 뭐야? 왜 우리한테는 아무 말도 안하고 엄마 마음대로 정해버려? 엄마 친구들도 같이 오는 거였으면 안 왔어. 우리도 성인인데 이게 뭐예요? 당장 집에 가요, 가요 어서!”하면서 제게 화를 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꼼짝 못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래도 씻지도 않고 그냥 대충 옷만 챙겨 입고 나왔는데 갑자기 다른 집 가족들과 만나게 되니까 당황해서 더 화가 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별 수 있나요, 여기까지 왔는데 … 그래서 애들을 달래고 달래서 다같이 온천을 했습니다. 그래도 밤에 다같이 술 한 잔 하면서 맘을 풀어주긴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묻지 않고 결정한 일들이 내심 맘에 걸렸습니다. 우리 애들도 결혼하고 아이 낳고 나면, 얼마나 가족 여행을 하고 싶었으면 엄마가 그랬을까 제 마음 이해해 줄 날도 오겠죠? 어렵겠지만 앞으로도 가족이 함께하는 기회를 자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경기도 부천 | 이송단 행복한 아침, 정한용 왕영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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