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강한 자’들이 모래알처럼 많다. 저마다 ‘내가 세다’고 말하지만 개인적으로 제일 실속 있는 강자는‘소리 없이 강한 자’가 아닐까 싶다. 살금살금 까치발을 하고 다니지만, 기척이 없는 가운데 챙길 것은 다 챙기는 족속들이다. 오늘 백을 들고 바둑을 두는 이, 윤찬희가 소리 없이 강한 사람, 즉 ‘무성강자(無聲强者)’에 속한다.
“이창호랑 비슷해요. 입이 무거운 것도 닮았죠.”
윤찬희에 대한 세평은 짧으면서도 명료하다. ‘이창호를 닮았다’.
그 이상의 평가가 무에 필요할까. 한국바둑리그 신성건설팀에서 이 어린 신예를 2년 연속 지명선수로 데려갔다. 이 이상 무슨 증거가 또 필요할까.
바둑은 현재 백이 좋은 흐름이라 했다.
흑이 <실전> 1로 붙인 뒤 3으로 뛰었다. ‘원래 그렇게 두는 건가 보군’하겠지만 실은 아니다. 평범하게 둔다면 <해설1> 흑1로 하변을 지켜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백은 2로 흑 한 점을 눌러 제압한다.
문제는 불리한 마당에 이렇게 ‘진부하게’ 두고 앉아 있을 여유가 없다는 것. 그래서 흑이 비틀었다. 심하게 두었다. 승부수라 보아도 무방하다.
흑이 평범을 거부한 이상 백도 순순히 보고만 있을 리 없다. 흑이 손을 뺐으니 당연히 백4로 하변을 건드리고 본다. 백이 10으로 붙였을 때 흑이 얌전히 11로 늘어주는 게 답이다.
이게 행마의 요령이다.
<해설2> 흑1로 젖히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백2에 흑3으로 지켜야 하는데 4로 끊기게 된다. 이럴 땐 한 번 꾹 참는 게 ‘족보’에 있는 행마법이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해설=김영삼 7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