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우아한엄마’되도록노력할게

입력 2008-06-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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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초등학생인 우리 아들 일기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일부러 찾아본 건 아닙니다. 아들 방 청소하려고 들어갔더니, 책상에 보란 듯 펼쳐져 있어서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요즘 우리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고민이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읽다보니 나름대로 재미가 있어서 한 장 두 장 넘겨가며 일기를 보고 있었습니다. 문득 어떤 대목 하나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엄마는 큰소리로 말하는 대마왕이다!” 순간 저는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들은 일기장에 다른 엄마들은 우아하고 조용조용히 말하는데, 엄마는 마치 이중인격자처럼 다른 사람이 있으면 조용조용 말하고, 자기랑 동생이 있으면 큰 소리로 말한다고 적어놓았습니다. 저는 혹시나 선생님이 보셨을까봐 얼른 날짜를 확인해봤는데, 이미 날짜 옆에 아주 큼지막한 담임선생님 도장이 찍혀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날 어떻게 보셨을까, 정말 너무 창피했습니다. 사실 아가씨 때만 해도 저는 목소리도 나긋나긋하고, 조용하고, 또 누가 뭘 물어보면 얼굴을 붉히면서 수줍음을 타곤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과 동시에 연년생으로 아들만 둘을 낳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목소리가 저절로 커졌습니다. ‘대마왕’처럼 굴 때도 많이 있었습니다. 사실 조금만 변명을 하면, 아이들은 엄마에게 조금만 약점이 보이면 금방 파고들기 때문에 매번 강하게 보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엄하게 굴어야 할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어쨌든 그 일기를 보고 멍∼ 하게 앉아있는데, 마침 동네에 아는 언니가 커피 한잔 마시러 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잘 됐다 하는 마음으로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그 언니는 저랑 똑같이 아들 둘을 키우고 있었고, 저보다 아이들이 컸기 때문에, 저는 아주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그 일기장 얘기를 해봤습니다. 그런데 언니가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습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마∼. 난 더 심했어. 우리 큰 애 4학년 때, 난 담임선생님께서 부르셔서 학교까지 다녀왔다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왜 그랬냐고 물어봤더니 아들이 일기장에 “아무래도 나는 우리 집 아들이 아닌 것 같다. 나를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하는데, 그게 아무래도 진짜인 것 같다. 엄마는 유독 동생만 예뻐하고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다”라고 써 놓았다는 겁니다. 언니의 두 아이들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 두 녀석이 싸우면 나이가 더 어린 막내 편을 들어주게 된 탓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큰 아이에게 원인을 돌리게 되곤 했었나 봅니다. 언니는 당연히 큰 아이가 엄마 마음을 이해해 줄 거라 믿고, 그렇게 행동했다고 합니다. 큰 아이는 어른들이 농담으로 하는 얘기까지 마음에 담아 놓을 정도로 상처를 키우고 있었던 겁니다. 그 후 언니는 선생님에게 사정 얘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큰아들을 앞에 앉혀놓고 한참을 대화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저보고도 고민만 하지 말고, 아이들하고 진지하게 얘기를 해보라고 충고를 했습니다. 전 그 길로 문방구에 가서 두껍고 큰 종이를 몇 장 사왔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일찍 오라고 연락을 했습니다. 그렇게 온 가족이 모였을 때, 저는 언니네 벽에 붙어 있었던 ‘실천벽보’를 설명하면서 저희 집에도 한번 만들어 보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실천벽보’는 가족들이 고쳐야 할 점을 벽보에 적고, 개선을 잘 하고 있는 사람에게 스티커를 주는 겁니다. 스티커가 가장 많이 붙은 사람에게 한 달 후에 과자파티를 열어주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제 단점에 대해 듣는데, 예상대로 목소리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저는 가족이 원하는 대로 앞으로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고, 좀더 나긋나긋하게 우아를 떨어볼까 합니다. 아이들에게 화가 날 때도 속으로 열까지 세고 말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남편과 아이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며, 앞으로 우아한 엄마가 되려고 노력 많이 하겠습니다. 경기 성남|정혜영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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