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일곱살아들의생애첫데이트

입력 2008-06-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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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일곱 살 된 아들이 있습니다. 최근에 부쩍 이성에 관심이 많아지는 것 같더니 얼마 전엔 뜬금없이 “엄마! 난 아무래도 결혼은 못 할 것 같아”라고 엄살을 떨었습니다. 제가 “어머∼ 우리 아들이 왜 결혼을 못 해∼ 엄마보다 더 키 크고, 더 예쁜 여자랑 결혼 할 수 있어∼” 하고 말했더니, 시무룩한 목소리로 “정말?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이러는 겁니다. ‘아니, 얘가 갑자기 왜 이럴까?’ 하면서 “당연하지∼ 우리 아들처럼 잘생긴 남자를 여자들이 그냥 두겠어?” 하고 너스레를 떨어봤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들이 금방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그럼 뭐해! 난 여자친구도 하나 없는데!” 이러고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문득 그 전부터 아들이 얘기하던, 아들의 제일 친한 친구 얘기가 생각났습니다. 그 친구 애는 여섯 살 때까지만 해도 우리 아들하고 같이 잘 지냈는데, 일곱 살이 된 후부터 여자친구가 생겨서 같이 잘 놀아주지 않는다고 저희 아들이 많이 서운해 했습니다. 그 친구 애는 매일 여자친구랑 손잡고 놀러 다니고, 놀이터 가서 맛있는 과자도 사 먹습니다. 매일 매일 같이 다닌다고 제 아들이 많이 부러워했습니다. 사실 제 아들은 성격이 좀 까칠하고 내성적이라서 이성친구 뿐만 아니라 동성친구도 많이 없습니다. 요즘은 자기에게 여자친구가 없다는 게 스트레스가 됐는지, 유치원 잘 갔다 와서는 늘 집에 있는 동생한테 화풀이를 해대고 했습니다. 그리고 문득 제게 “엄마, 난 왜 여자친구가 없을까? 나도 여자친구가 있으면 좋을 텐데…” 하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요즘 애들 빠르다 빠르다 했지만, 겨우 유치원 다니는 녀석이 여자친구가 없다고 의기소침해 있다니! 참 기가 막혔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유치원에 갔다 오자마자 유치원 가방도 현관 앞에 그냥 벗어 던지면서 “엄마∼ 빨리 간식 줘∼ 나 간식 먹고 나가야 돼∼”라며 소리쳤습니다. 어딜 가냐고 했더니 “나 놀이터에서 누구 만나기로 했어∼ 아∼ 빨리∼ 급하단 말이야∼” 이러면서 막 서두르는 겁니다. 제가 누구냐고 물어봐도, “아, 있어∼ 이름 물어보지 마. 비밀이야!” 이러면서 제가 간식으로 주는 빵과 우유를 입에 막 우걱우걱 집어넣었습니다. 화장실에 가서 머리에 물칠을 하고, 세수할 때 외에는 바르지도 않던 로션까지 덕지덕지 바르더니 또 급하게 신발을 신고 나가려고 하는 겁니다. 전 너무 궁금해서 누구냐고 다시 물어봤는데, “이따가∼ 만나고 나서 얘기해 줄 게∼” 이러면서 끝까지 얘기해 주지 않고 아들은 그대로 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전 속으로 ‘뒤따라 가 볼까?’ 했지만 그저 아파트 창문에 서서 아들이 어딜 가나 조마조마하게 바라만 봤습니다. 그 때! 분홍색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은 여자아이가 놀이터 쪽에서 나타나는 게 보였습니다. 그 아이를 보자마자 제 아들이 손을 흔들면서 막 뛰어가는데, 왜 그렇게 제 가슴이 콩닥콩닥 뛰던지… 둘이서 다정하게 놀이터로 가는데, 괜히 배신감 같은 게 느껴졌습니다. 둘은 슈퍼에 가서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사 먹고, 같이 그네도 타고, 산책도 하면서 제법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했습니다. 비가 오기 시작해서 얼른 창밖으로 내다봤는데, 이 두 아이가 어디로 갔는지 도통 모습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잠시 후 인터폰이 울렸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아들이 여자친구가 우산 쓰고 데려다 줬는지 비도 한 방을 안 맞고 멀쩡하게 들어오는 겁니다. 제가 뭐 하고 왔냐고 물어보니까 여자친구네 집에 가서 강아지하고 놀다 왔다고 합니다. 계속 강아지 얘기만 늘어놓았습니다. “너 슈퍼에서 뭐 사먹었지? 너 돈이라면 끔찍해서 엄마 과자하나도 안 사주면서 여자친구한테는 그런 거 막 사주는 거야? 돈도 가지고 나갔어?” 했더니 아들놈 대답이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럼! 데이트 할 때는 돈을 가지고 나가는 게 기본이지!” 그 대답을 하는데, 왠지 허탈하고 배신감이 느껴졌습니다. 제 속마음은 ‘넌 엄마보다 여자친구가 더 좋아?’하고 묻고 싶었지만, 저한테 유치하다고 그럴까봐 꾹 참았습니다. 에고… 벌써부터 이런데 나중에 결혼해서 자기 색시 생기면 오죽할까요?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경기 안양|손정숙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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