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돈은돈대로…욕은욕대로…

입력 2008-06-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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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고향은 서울에서 찾아가려면 상당히 멀어서, 자주는 못 찾아갑니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더 들어가야만 하는 곳인데, 인구는 약 2000여 명 정도 됩니다. 그곳엔 예닐곱 군데의 비교적 넓은 해수욕장이 있습니다. 섬 이름은 ‘사랑 자’, ‘은혜 은’을 써서 ‘자은도’ 아주 작은 섬마을입니다. 어쨌든 얼마 전 아이 개교기념일과 주말이 이어지면서 3일 동안의 휴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이와 아내를 앞세워 고향으로 갔습니다. 고향에 도착하기 전, 마트에 들려 장을 좀 보게 되었습니다. 그 마트는 생긴 지 얼마 안 된 곳이었고, 물건들이 호화롭게 진열돼 있었습니다. 제 눈에 제일 먼저 띈 것은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상주 곶감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보이는 것은 시원한 수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제 마음을 끈 것은 하와이 산(産) 열대과일 아보카도(avocado)였습니다. 아무래도 특이한 과일이니까 저희 부모님도, 동네 친척 분들도 아직 맛보지 않으셨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주변에 모두 선물하려고 10만 원 어치를 샀습니다. 아내의 눈치도 있었지만, 밀어붙이는 제 성격이 발동해 우격다짐으로 선물을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선물 포장해서, 버스 타고, 배타고 고향에 도착하니, 저녁 6시경이 되었습니다. 부모님께 인사하고, 가족들을 오토바이에 태워 동네 다른 친척집을 돌며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준비한 아보카도를 선물로 드렸습니다. 웬 낯선 과일을 이렇게 선물로 주는가 하시며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 의기양양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과 저녁을 먹었습니다. 드디어 아보카도를 디저트로 맛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희 부모님도 처음 드셔보는 과일이었지만, 저도 처음 먹어 보는 거라 어떻게 먹어야할지 잘 몰랐습니다. 그냥 참외처럼 깎아서 생으로 먹어봤는데, 맛이 영 이상했습니다. 어머니도 입맛에 안 맞으셨는지, “나는 밥을 많이 묵어서 당최 생각이 없다야. 느그들 서울 올라간 다음에나 묵을란다. 쩌그 냉장고에 넣어놔라” 고 하셨습니다. 맛없는 과일이라 밀어내시는 것 같아 무척 죄송스러웠습니다. 다음날 아침, 부모님과 함께 일을 하고 있는데, 제 선물을 받은 동네 분들이 오셨습니다. 아보카도 선물에 대한 공치사와 함께 제 딸의 손에 용돈도 쥐어주셨습니다. 하지만 아보카도의 맛에 대해 “니가 준 그것 묵기는 묵었다만 어째 쫌 거시기 하더라”라고 하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나도 선물이라고 해서 맛을 봤는디 호박 날로 먹는 것 같더라” 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보카도를 받은 분들의 말씀을 요약해 보면, 선물은 고마운데 맛은 그저 그렇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휴일을 보내고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는데, 어머니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어머니는 “너 다음에 올 때는 그런 거 사오지 말고, 그냥 빈손으로 와라잉∼. 동네사람들 창피수러워서 내가 당최 얼굴을 못 들고 살것다. 사람들이 도저히 맛없어서 못 먹겄는디, 그랴도 선물이라 버릴 수는 없고, 누가 피부에 바르면 좋다는 소리를 해서 지금 죄다 안 묵고 바르고만 있다. 다음부터는 이런 거 사오지 말고, 기냥 수박 사와라잉∼” 하셨습니다. 어머니와의 통화를 마치고, 한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아보카도’ 란 단어를 입력했는데, 순식간에 자료 화면들이 떴습니다. 아보카도 먹는 법을 보니, 샐러드를 만들어 먹거나, 김밥에 넣어 먹거나 소스로 활용해 먹으면 좋다는 얘기들이었습니다. 낯선 과일이라 저도 어떻게 먹는지 잘 몰랐는데… 어쨌든 생으로 그냥 먹는 건 보통 사람들 입맛에 잘 안 맞는다는 얘기였습니다. 돈은 돈대로 쓰고, 욕은 욕대로 먹고 다음엔 절대 이런 식으로 선물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서울 은평|최홍길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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