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바둑관전기] 91수만의단명국

입력 2008-07-07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제4기한국물가정보배프로기전C조본선리그
이 바둑은 채 100수가 되기도 전에 끝났다. 정확히는 91수만이다. ‘과연 이게 프로의 바둑이란 말인가?’싶겠지만 프로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 순간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면 91수가 아니라 30여 수 만에도 링에서 내려와야 하는 것이 프로의 승부다. 하수들의 세계에서야 초반의 실수 정도는 종반·후반에서 얼마든지 뒤집을 기회가 오지만 프로 바닥에서는 언감생심. ‘이건 도저히 바둑이 아니다’싶으면 언제 어디서든 깨끗이 던지는 게 예의다. 프로의 바둑은 관객이 있는 바둑이다. ‘아닌 바둑’을 보여주는 것은 관객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이 바둑은 우변과 우상 방면에서 딱 한 차례 접전이 있었고, 여기서 승부가 났다. 박영훈의 ‘일격필살’에 그만 김기용이 붕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박영훈이 잘 쳐서가 아니라 김기용이 오히려 턱을 상대의 주먹에 갖다 댄 격이었다. 오히려 링 바닥에 나뒹구는 김기용을 바라보며 ‘쟤 왜 저래?’하는 듯한 박영훈의 표정이 재미있다. <실전> 흑2로는 <해설1> 1로 빠져 싸워보고 싶다. 이건 수상전이 된다. 꽤 복잡한 수순이 이어지지만 결론은 백이 빠르다는 것. 흑은 이렇게 싸울 수 없다. <해설1> 흑11 대신 <해설2> 1로 느는 것은 어떨까? 일단 백6까지를 상정해 볼 수 있다. 이후 상당히 머리 아픈 진행이 예상되는데, 역시 결론은 흑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수들을 김기용은 차례로 읽었다. 결국 머리를 휘휘 젓고는 <실전> 흑2로 꾹 이었다. 김기용은 이미 박정상에게 1패를 안은 상태라 이 한 판이 사실상 ‘막판승부’다. 여기서 밀리면 낙이 없다. 반면 박영훈은 이 바둑이 리그 첫 판이다. 안경 너머로 한결 느긋한 눈을 하고 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해설=김영삼 7단 1974yskim@hanmail.net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