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신문배달우리아들파이팅!

입력 2008-08-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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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집은 새벽 3시 30분만되면, 여기저기서 알람이 울려대고, 자명종이 시끄럽게 울어댑니다. 그러면 저희 아들은 대견하게도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고 일어나 신문배달을 나가려고 준비를 합니다. 지난 7월 말에, 학교가 방학한 이후 신문배달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단 돈 3만 5천 원 때문입니다. 방학 전 사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날이 있었는데, 그 날 아들의 친구가 꽤 괜찮은 바지를 입고 온 모양이었습니다. 저희 아들이 그 바지가 맘에 든다고 했더니 그 친구가 “이거 새로 산 바지야∼ 3만 5천 원 주고 샀어∼” 하고 어디서 파는 지까지 자세한 정보를 알려줬다고 했습니다. 착한 저희 아들은 그걸 부모한테 손 벌려 사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기가 직접 용돈을 벌어 사려고, 신문배달 일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그 얘기를 듣고 “그냥 엄마가 사 줄게∼” 했는데 아들은 방학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며 꼭 신문배달 일을 할 수 있게 허락해 달라고 했습니다. 생각이 기특해서 일단 허락하긴 했는데, 새벽 일찍 나가는 일이라서 은근히 걱정이 됐습니다. 속으로는 ‘이놈이 며칠 버티기나 하겠어? 매일 학교 가는 것도 몇 번씩 두드려 깨워야 가는 녀석이∼’ 하면서 금방 그만두겠지 하며 걱정 반 의심 반으로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새벽부터 천둥번개가 치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습니다. 아무리 비옷을 입고 나간다고 하지만 아들이 너무 걱정이 됐습니다. 그 날은 아들을 따라 저도 배달 일을 쫓아가게 됐는데, 그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신문이 비에 젖을까봐 비닐에 일일이 싸놓고, 그걸 집집마다 배달했습니다. TV 드라마에서 보듯 휙휙 마당 안으로 던져 놓는 게 아니었습니다. 구독자의 요구에 따라 우편함에도 넣기도 하고, 우유주머니에도 넣기도 하고, 문고리에 끼워놓기도 했습니다. 집집마다 각자 원하는 위치가 다 달랐습니다. 그렇게 두 시간 가량 배달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온몸이 빗물과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기분은 너무 좋았습니다. 우선 사춘기 이후로 대화가 뜸해진 아들과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아침부터 몸을 많이 쓰는 운동을 하니까 그것도 보람이 느껴졌습니다. 그 후로 저는 몇 번씩 아들을 따라 신문배달 일을 쫓아다녔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가면,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도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어떤 곳은 오토바이를 씩씩하게 타고 다니며 신문배달 하시는 다른 신문사의 아줌마 모습도 보였습니다. 새벽 기도 다닌다고 매일 같은 시간에 나가시는 할머니도 계셨습니다. 주말이 가까워지면 낚싯대 메고 문을 나서는 대머리 아저씨도 보였습니다. 가끔은 술에 만취해 슈퍼 앞 평상에서 주무시는 아저씨도 보였습니다. 종종걸음으로 우유배달 하는 아줌마도 계셨고, 같은 시간에 아침운동 나가는 아줌마도 마주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자고 있을 때 다른 곳에선 이런 아침풍경이 펼쳐질 거라곤, 그전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이제는 아들과 함께 아침에 나오는 게 참 재밌습니다. 아들도 처음엔 바지 하나 때문에 이 일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노동의 대가를 처음으로 부모님 손에 쥐어드리는 감격을 맛보고 싶다고 그랬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아들걱정 때문에 나오게 됐지만, 이제는 건강이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답니다. ‘신문배달’ 이란 놈 덕분에 새로운 걸 참 많이 배우고, 느끼고, 경험합니다. 방학을 보람되게 보낸 저희 아들 참 대견스럽습니다. 부산 사하 | 신경숙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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