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초록돈이랑동전다시바꿔요

입력 2008-08-2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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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릴 때 친정어머니는 항상 제 돈을 가져가시며, “엄마한테 맡겨. 나중에 너 필요한 거 다 사줄게” 이러셨습니다. 하지만 엄마 손에 한 번 들어간 돈은 그 후로 다시는 나오는 법이 없었습니다. 제가 열심히 세배하고 받은 세뱃돈도, 집에 오신 손님들께 다소곳이 인사해서 받은 용돈도 엄마는 언제나 아무 거리낌 없이 걷어 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중에 우리 애 낳으면, 절대 코 묻은 돈 안 뺏어갈 거야’ 하면서 다짐을 했습니다. 그 다짐을 실천하기 위해 전 우리 애 돌 됐을 때 딸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딸아이 앞으로 들어온 세뱃돈이며 용돈이며 10원 한 장 안 건드리고 고스란히 통장에 저금해두었습니다. 그렇게 딸아이는 여섯 살이 되었는데, 언제부턴가 이 녀석이 ‘돈’에 대한 개념을 어렴풋이 알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서 배운 버릇인지, 한번 자기 손에 들어온 돈은 지갑 속에 꼭꼭 넣어두고, 그 누가 뭐라 해도 절대 꺼내주지 않았습니다. 그걸 통장에 넣어두면 이자가 붙을 텐데… 저는 딸애 지갑에 들어가 있는 돈이 영 아깝고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딸아이를 데리고 은행에 가기로 했습니다. 통장을 보여주며 “민진아. 여기 통장에 강민진! 너 이름 있지? 여기 은행에 와서 돈을 저금해 두면, 나중에 책가방도 사고, 자전거도 사고, 인형도 살수 있어. 그러니까 지금 지갑에 있는 돈도 여기다 저금해 두자” 하고 이해시켰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딸아이가 유일하게 지갑을 열어, 돈을 쓰는 곳이 새로 생겼습니다. 바로 마트 앞에 있는 장난감 자동차입니다. 500원짜리 동전을 넣으면, 노래가 나오며 앞뒤로 차가 움직이고, 화면에 만화도 나왔습니다. 그 장난감 자동차에 한번 타보더니 애가 완전히 반해버렸습니다. 그 후로 거의 매일같이 마트에 들려 그 자동차 장난감을 타고 옵니다. 그것도 한 두 번이지 거기에만 너무 돈을 쓰니까 그게 또 아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딸아이의 1만 원짜리 지폐를 가리키며 “엄마가 이 종이 하나랑 500원짜리 동전 4개랑 바꿔줄까?” 해봤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불안했는지 조금 머뭇거리는 겁니다. 그래서 “그럼 엄마가 선물로 한 개 더 줄게! 500원짜리 동전 다섯 개랑 이 종이 한 장이랑 바꾸자” 했습니다. 그러자 딸아이가 “우와∼ 엄마 이거 다 줄 거예요? 야! 고맙습니다. 사랑해요” 하고 좋아했습니다. 아직 돈 개념이 없으니 그건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우리 딸이 제게 오더니 500원짜리 동전 5개를 내미는 겁니다. “엄마∼ 이거 초록 돈으로 바꿔주세요” 이러더군요. 그래서 “왜? 그 초록 돈으로 뭐하려고? 그걸로는 자동차도 못 타잖아” 했더니 “오늘 어린이집 선생님하고 시장놀이 했는데, 초록 돈이 종이돈 중에 제일 좋은 거라서, 하드도 열 개 넘게 살 수 있고, 과자도 많이 사서 우리 다 먹을 수 있고, 또 생일축하 케이크도 살 수 있대” 합니다. 세상에나! 아이가 돈 개념이 없다고 만만하게 보고, 동전이랑 지폐랑 바꾼 거였는데, 이제는 제가 역으로 당하게 생겼습니다. 그 순간엔 초록 돈이 없다고 해서 위기는 모면할 수가 있었는데,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다음에 또 바꿔달라고 하면 그 땐 뭐라고 하죠? 아무래도 어쩔 수 없이 저희 엄마랑 똑같은 소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부산 동구|김성희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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