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바둑관전기]이부장의집념

입력 2008-11-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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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 아마추어 강자 L 씨는 한 청년의 방문을 받았다. 청년은 ‘프로가 되고 싶다’며 도움을 청했다. L 씨는 청년과 바둑을 한 판 두었다. 기초가 튼튼해 보였고, 수읽기 능력도 나쁘지 않았다. 프로기사가 되고자 하는 청년의 열정이 고스란히 반상에서 읽혔다. 하지만 L 씨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20대 후반에 접어든 청년은 프로가 되기엔 나이가 너무 많았다. 아마추어로선 상당한 실력이었지만, 프로 입단에는 한참 못 미쳤다. L 씨는 “프로기사가 되는 것 말고도 바둑계에서 능력을 펼 수 있는 길은 많다”고 청년을 다독인 뒤 돌려보냈다. 청년은 이후 한국기원에 원서를 냈고 사무국의 직원이 됐다. 그는 지금도 한국기원의 총무부장으로 재직 중인 이판진 씨이다. 이판진 부장은 프로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자신이 될 수 없다면 자식이라도 프로기사를 만들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1남 1녀에게 모두 바둑을 가르쳤다. 3일 대만으로 바둑 유학을 떠났던 딸 이정빈(18) 양이 대만기원 입단대회를 통과했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전화를 걸어 딸의 입단을 축하해 주었다. 다음 날 이 관전기를 쓰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한국기원 사무국 직원들에게 ‘입단턱’을 내려는데 시간이 있으면 함께 하자는 연락이었다. 아마5단인 이 부장은 “나한테 아홉 점 놓고 두던 딸이 이젠 나보고 두 점을 깔라고 한다”며 웃었다. 이 부장을 보고 있으면 사람의 집념만큼 강한 힘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실전> 흑1에 백은 <해설1> 1로 막을 수 없다. 흑6까지 우변이 몽땅 잡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설2> 백3으로 둘 수도 없다. 흑에게 이처럼 뚫려서는 버틸 수가 없다. <실전> 흑3으로 밀고 들어가서는 승부가 났다. 백의 마지막 둑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293수, 흑 3집반승> 해설|김영삼 8단 1974yskim@hanmail.net 글|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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