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이 <실전> 백1로 젖히자 박정상이 곧바로 흑2로 끊었다.
이처럼 ‘곧바로’ 둔 수는 대개 후회로 이어진다.
아니나 다를까 박정상은 국후 이 수에 가슴을 쳤다.
<해설1> 흑1로 늘 자리였다. 백이 2로 이으면 흑은 3·5로 자리를 잡는다. 이렇게 되면 흑은 우변의 백을 계속해서 공격해갈 수 있다. 주도권을 쥔다는 것이 곧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경기를 이쪽의 전략대로 풀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어지간한 실리보다 낫다.
박정상은 <실전>의 흑2로 끊은 수를 패착이라고 아파했다.
패착인지는 몰라도 패착에 가까운 수임에는 분명하다.
백은 콧노래를 부르며 <실전> 백3으로 손을 옮겼다. 우변은 시한폭탄이다. 언제라도 마음 내킬 때 폭파 스위치를 누를 수 있다.
물론 백의 입장에서의 얘기이다.
<해설2>를 보자. 백1로 단수를 치면 흑은 2로 이어야 한다. 백은 이후 3·5·7을 감행하며 흑을 괴롭힐 수 있다. 보다시피 흑이 아주 괴로워진다. 이른바 ‘뒷맛’이 지저분하기 그지없다. 이 모든 사단은 애초 흑이 <실전> 2로 끊어서 생겼다. 박정상이 후회할 만한 일이었다.
두 사람은 형세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세돌은 비관파, 반대로 박정상은 낙관파에 가깝다. 비관파는 자신이 유리한 바둑을 불리하다 보고 무리하다 역습을 당하는 경우가 많고, 낙관파는 불리한 바둑을 유리한 줄 알고 설렁설렁 두다 당한다. 기실 어느 쪽이 낫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바둑과 삶은 다르다. 인생은 비관보다는 낙관의 창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절반의 물이 담긴 잔을 보면서 ‘겨우 반잔이네’하는 것보다는 ‘아직 반이나 남았네’하고 살아가는 편이 낫다.
물론 제일 좋은 것은 물을 다 마셔버려 놓고도 ‘누군가 채워놓겠지’하는 것이다. 그저 세상은 뱃속 편히 사는 게 최고다.
해설｜김영삼 8단 1974yskim@hanmail.net
글｜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