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와인의전도사’안준범사장

입력 2009-01-07 00: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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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역삼동 차병원 인근에 위치한 와인바 ‘쉐조이’의 안준범 사장은 이탈리아 와인 전문가로 통한다. 40대 초반의 비교적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와인 문화가 보급되기 시작한 2000년대부터 전문적인 강의와 와인 수입을 통해 이탈리아 와인을 널리 알리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이탈리아 와인의 전도사’라는 애칭이 있을 정도다. 사실 안 사장이 원래부터 와인을 공부한 것은 아니다. 한국외대 불어과(87학번) 출신인 그는 졸업 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3대학 영화과와 연극과, 소르본대학 철학과 등에서 연달아 3개의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남들은 하나 하기도 힘든 학위를 영화와 연극, 철학이라는 세 분야에 딴 것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예술과 문화에 심취한 유학생이었다. 공부를 할 때만 해도 현재처럼 와인을 업으로 할 지 상상도 못했다. ●프랑스에서 와인에 빠지다 그런데 프랑스라는 환경이 그를 와인에 빠지게 만들었다. 와인이 싸니까 유학생들은 일상적으로 와인을 마셨고 그도 다른 유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와인을 빈번하게 접했다. 그러던 와중 프랑스 와인 업계에 있던 사람으로부터 론 지역에 있는 포도주 대학 ‘유니베리시테 뒤 뱅’에 가보라고 권유를 받았다. 인텐시브 코스이지만 이 대학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6개월 간 총 530시간에 걸쳐 타이트한 교육을 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1999년 당시 33명의 학생이 있었는데, 한국인도 세 명이 있었어요. 프랑스어에 어려움이 없던 저는 2등으로 졸업했는데 이로 인해 대학교 창립자 자크 메니에와 친분이 생겼고, 이후 도움을 많이 받게 됐어요.” ●이탈리아에서 하루에도 100km를 넘게 돌며 와인을 섭렵하다 프랑스 와인은 공부했지만 이탈리아 와인이 약하다고 판단한 그는 내친김에 이탈리아 와인까지 섭렵하기로 결심했다. 자크 메니에는 이탈리아 피아첸차 대학에 있는 마리오 프레고니 교수에게 그를 가르쳐달라는 편지를 친히 써 보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소믈리에 코스는 1년 6개월이 걸리는 데, 그는 프레고니 교수에게 동시에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해 숨 가쁜 와인 공부를 시작했다. “듣고 싶은 건 다 들을 수 있었어요. 하루는 밀라노, 하루는 피렌체, 또 하루는 볼로냐 등 해서 하루에도 100km를 넘게 돌아다니면서 와인을 마시고, 공부를 했어요. 대학에서 만난 스페인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농장마다 돌아다니며 코르크를 판매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이탈리아 와인을 공부한 뒤에는 그 친구를 따라 스페인 리오하로 가 농장을 돌아다녔어요. 유럽에서 8년 간 있었죠. 프랑스에 있을 때 이탈리어를 미리 공부했고, 또 이탈리아에서 스페인 가기 전 스페인어를 공부해 언어적인 어려움은 크게 없었어요.” ●이탈리아 와인의 전도사가 되다 그는 오랜 기간의 유럽 생활을 정리하고 2000년 말 국내로 들어왔고, 이듬해인 2001년 2월 보르도아카데미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당시 프랑스 와인에 대해 강의하는 사람은 있었어도 이탈리아 와인을 가르치는 사람은 드물어 보르도아카데미를 비롯해 중앙대 연세대 경희대 등을 돌면서 이탈리아 와인 강의를 도맡아 하다 시피 했다. 강의를 하면서 국내 와인 시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산물이 2001년 9월 문을 열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는 ‘쉐조이’ 다. “당시만 해도 외국에서 와인메이커 등이 와서 행사를 한다고 하면 40여명 밖에 안 오던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이 곳에는 많은 분들이 오셨고, 단골이 돼 와인을 드셨죠. 현재 카사델비노의 은광표 사장님, 베레종의 이상황 사장님 등 현재 업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분들이 이곳의 손님이었어요.” 이탈리아 와인을 알리고 싶었지만 당시 ‘와인은 프랑스’라는 선입견이 국내에서는 지배적이라 어려움도 많았다. 도움을 받으려고 이탈리아 대사관 상무관실을 찾아갔지만 냉대받기도 했고, 심지어 이탈리아에서 와인이 생산되느냐는 질문도 수없이 감내했다. 안티노리, 프레스코발디 등 큰 개념 밖에 없던 시절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노력하는 자에게는 결국 보상이 돌아오는 법. 와인수입사에서 이탈리아 와인을 수입할 때 그에게 자문을 구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스스로 수입사에서 들여온 이탈리아 와인을 가장 먼저 주문해 전파했다. “‘이탈리아 와인의 전도사’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일겁니다. 그래도 이탈리아 와인을 알리는 데 있어서 전력을 다했어요.” ●이탈리아 와인은 음식과 함께 할 때 빛을 발한다 2003년 그는 매일유업에서 막 시작한 와인수입사 레뱅드메일에 들어갔다. 보르도와인아카데미에서 자신의 강의를 들은 레뱅드메일 김민수 팀장이 도움을 요청했고, 그는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의 여러 산지를 돌며 와인을 셀렉션 할 수 있다는 조건을 받아들여 좋은 와인을 골라 국내로 들여오는 일을 시작했다. 이탈리아 와인 요리오(최근 만화 ‘신의 물방울’로 인해 국내에서도 유명해짐)와 쿠마로를 비롯 스페인의 틴토 페스케라, 무가 등이 그가 골라 국내에서 히트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탈리아 와인에 대한 애정은 음식과 연결시키는데 있어서 더욱 확대된다. 프랑스 와인은 저마다 개성이 강하지만, 이탈리아 와인은 음식과 무난하게 잘 조화시킬 수 있는 점이 매력이란다. 하지만 더 열심히 알리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는 “외식하면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많이 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파는 하우스 와인이 칠레 와인이다”며 피식 웃음을 짓는다. ●책을 통해 이탈리아 와인을 더욱 알리고 싶다 경희대 관광대학원 마스터소믈리에&와인컨설턴트 과정의 강의를 맡고 있는 그는 올해 목표로 책과 와이너리 투어를 꼽았다. “이탈리아 와인의 대중화가 느린 데는 책이 없어서죠. 이탈리아 와인은 정말 복잡한데 제대로 알려주는 책이 없어요. 그래서 올해는 책을 낼 겁니다. 이탈리아 최고인 피에몬테의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에 대한 책(‘랑게 언덕의 백과사전’)을 먼저 번역하고 다음에는 그동안 틈틈이 한 작업을 토대로 이탈리아의 지역적인 특징 등에 대한 3~4권 정도의 단행본을 낼 생각하고 있어요. 21세기북스에서 내는 ‘와인 읽는 CEO 시리즈’도 써서 곧 출판할 겁니다. 와이너리 투어도 서너 차례 만들어서 갈 생각이고요.” 와인교육전문가로도 일컬어지는 그는 교육에도 관심이 많다. 지난해 자신의 홈페이지(chezjoey.co.kr)에 와인의 입문과 이탈리아 와인 등 11개의 강의 동영상을 만들어 올렸다. “영화를 하는 친구가 있어 도움을 받아 이 곳에서 강의를 만들어 내보냈어요. 반응이요? 좋았는데 30분짜리 1강좌 당 2만원(20일간 이용)을 받은 게 좀 비쌌던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 조만간 가격을 조정하거나 하는 등 방안을 강구해 서비스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와인은 ‘꿈꿔왔던 이상적인 삶’이다 그에게 있어 와인의 매력은 뭘까. 그는 ‘하나의 문화’라고 정의한다. “전 사람을 좋아하고, 먹고 마시는 것을 좋아해요. 와인 일을 함으로써 이탈리아에서 와이너리 사람이 오면 통역을 하는 등 늘 외국 사람을 만나고 할 수 있어 와인은 오랜 기간 친밀한 문화를 이어갈 수 있는 하나의 또 다른 문화 같아요. 책도 읽고, 계속 공부를 하게 만들죠. 와인 책을 하나 쓰려고 해도 역사도 알아야지, 문화도 알아야지, 여러 가지를 배워야 하잖아요. 꿈꿔왔던 이상적인 삶이고, 문화적인 갈망을 때로는 와인에서 발견할 수 있어요.” ●세월이 다듬어준 와인이 좋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좋아하는 와인 스타일도 차이가 있다. 그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알코올은 12.5도에서 13도 사이, 미디엄 바디 안에서 균형감이 있고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는 와인이라고 말한다. “나에게 다가오면서도 거리감을 유지하는 와인이 좋아요. 가벼움이 있으면서 무게감도 있고, 산도와 탄닌의 많고 적음은 상관없지만 균형감이 있어야하죠. 레드 와인으로 말하면 산도, 탄닌, 알코올, 둥근맛(물을 마실 때와 꿀물을 마실 때 휘감는 느낌의 차이로 이해하면 된다. 영어로는 ‘round′로 표현) 등 네 가지가 조화를 이루는 걸 말해요. 제일 좋은 와인은 세월이 다듬어준 균형이 아닐까 싶어요. 세월이 정제한 것, 세월 안에 드러나는 것이요. 와인은 단정 지을 수 없어요. 얘기치 않은 놀라움을 안겨 주거든요.” 글·사진=이길상 기자 juna1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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