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아빠맘몰라주는철부지딸

입력 2009-03-18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4


저희 딸이 올해 신입생으로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지난달 자취방 구해 이삿짐까지 정리해 주고 오는데, 남편 표정이 계속 어둡기만 한 겁니다. 며칠 후 다시 오겠다 했지만, 딸의 독립을 몸소 체험하고 돌아서려니 마음이 애잔하고 서글펐던 모양입니다. “푸름아, 네 꼭 밥해서 묵어야한다. 엄마가 반찬 다 해놨으니까, 일찍 일찍 일어나서 밥해 묵고, 꼬옥 잘 묵고 댕겨야한다. 알긋제”라며 남편은 그 말을 몇 번이나 했나 모릅니다. 거기다 입학식도 일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자, 그것도 맘이 아팠던 모양입니다. 말은 “이제 다 컸는데, 굳이 엄마 아빠 따라갈 필요 없재? 대학교 입학식이니깐 니 혼자 있어도 되재?” 라고 했지만, 오래도록 딸애 손을 놓지 못하고 꼭 잡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서 딸애 입학식 날이 됐는데, 갑자기 딸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런데 목소리가 잔뜩 화가 나있었습니다. “엄마! 엄마가 내한테 뭐 보냈나!” 갑작스런 그 말에 저는 “그기 뭔 소리고? 내가 보내긴 뭘 보냈다 말이가? 내 그런 거 없다” 하니까 “그라믄 아빠가 보낸 기가? 아휴! 내 몬 산다. 내 아빠한테 전화해 보고 쫌 있다 전화하께” 이러더니 한참을 기다려도 연락이 없었습니다. 얼마 후, 이번엔 제 남편이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내가 아무래도 푸름이한테 뭘 잘못 한 거 같다. 네가 미안하다고 대신 전화 좀 해줘라∼” 그래서 무슨 일인가 하고 얼른 딸애한테 전화했더니 저희 딸이 여전히 화난 목소리로 그랬습니다. 아빠가 학교로 ‘전보’를 보냈다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혼자 입학식 치를 딸이 걱정돼 우체국에 가서 입학 축하한다는 전보를 보냈는데, 그걸 학교 과 사무실로 보낸 겁니다. 과 사무실에서 제 딸한테 전보 받아가라고 전화를 했고 제 딸은 자다가 그 전화를 받았습니다. 얼떨떨한 상태로 생전처음 과 사무실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보를 찾아서 나오는데,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화가 났다고 했습니다. 전보를 보낸 건, 딸이 생각하기엔 촌스러운 방법이었는지 모르지만, 남편 입장에선 최고의 방법이었을 겁니다. 무뚝뚝해서 평소 전화도 문자도 안 하는 사람이 멀리 있는 딸애한테 제일 빨리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겁니다. 그런데 딸애가 그걸 받고 버럭 화를 냈으니 기가 죽어서 “이제는 딸자식도 다 필요 없다. 자식이 뭔 소용있노, 내는 이제 당신 밖에 없다. 그러니까,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살자” 집에 와서 그랬습니다. 그래놓고 막상 며칠 후 딸 자취방 화장실에서 한참을 안 나오고 꾸물거리더니, 큰 수건을 반으로 잘라 꺼내보였습니다. “이래 작아야 방을 닦아도 잘 닦인다. 걸레가 너무 크면 못 쓴다” 하는데, 작은 것까지 챙겨주는 남편의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짠했습니다. 딸은 그런 것도 모르고, 남편이 “니는 아빠 가고 나서 안 울었나, 엄마아빠 안 보고 싶더나?” 하니까 “아빠는∼ 내가 얼라가? 울긴 와 우노? 독립해서 신나죽겠는데∼” 이러면서 좋아하기만 했습니다. 제가 얼른 다리를 꼬집어 신호를 보냈는데도, ‘와?’ 이러면서 지 아빠 맘을 끝까지 몰라줬습니다. 부모가 되는 게 이런 건지 퍼주고 퍼주고 퍼주어도 주는 것이 행복하기만한 마음입니다. 그게 부모마음인 건지 문득 마음이 짠해졌습니다. 앞으로 저희 딸이 저희 마음 알아줄 만큼 철이 들려면 몇 년 더 있어야할 텐데, 그동안 저희 남편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품안에 자식 놓아주는 연습을 조금씩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말입니다. 경북 경주 | 권영주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