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측은지심이용한소매치기할배,너무합니데이!

입력 2009-06-14 19:4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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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 선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내다, 뭐하노? 날씨 참말로 좋은데, 대구 한번 안 올끼가?”

몇 년 전에 남편이 갑자기 소를 키워보겠다고 해서, 저희 부부는 대구에서 밀양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대구는 아주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가지요.

그러니 거의 매일 얼굴을 보며 지냈던 친구 선이가 입 내밀고 한마디 할 법했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 친구 핑계를 대며 대구에 갔는데, 기차가 연착 되는 바람에 약속에 좀 늦은 상태였습니다. 마음이 급했죠.

그런데 그 때. 제가 계단을 막 뛰어 내려가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할아버지 한분이 올라오고 계셨습니다. 지나치는가 싶더니 ‘어이쿠’ 소리를 내시면 앞으로 고꾸라지시더라고요.

할아버지는 손발이 마비가 되셨는지, 왼쪽 발은 계단을 제대로 딛지도 못하셨고, 왼손은 아예 뒤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서 괜찮으시냐고 붙잡아 드렸는데요, 할아버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 듯, 너무도 태연하게 “새댁, 고맙소, 근데, 그리 왼쪽만 잡으면 안 되고, 가방 내리 놓고 내를 안아가며 좀 세워주소” 하시더라고요.

만약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었으면 같이 좀 도와달라고 했을 텐데, 아무도 없어서 저는 혼자, 가방을 내려놓고, 할아버지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우고 낑낑거리며 일으켜 세워드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개미새끼 한 마리 찾아볼 수 없었던 조용한 지하도 계단에 갑자기 한 남자가 후다닥 내려오더니, 눈 깜짝할 새에 제가 내려놓은 가방을 휙 낚아채 가는 게 아니겠어요?

전 두 손으로 할아버지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소매치기를 따라가지 못하고, 그 뒤통수를 향해 그저 입으로만 “엄마야! 내 가방!”하고 외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그 할아버지께서 얼른 따라가 보라는 말씀도 안하시고, 그저 울상이 된 제 얼굴을 힐끗 한 번 보시더니, 절룩거리면서 계단 난간을 잡고 천천히 올라가시더라고요.

전 너무 어이가 없고 억울한 마음에 “할배요, 지 우야지예? 가방을 아까 그 남자가 훔쳐가 버렸는데, 우야면 좋십니꺼. (엉엉)” 하고 울먹이며 하소연을 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할 수 없지, 우야것소”하고는 계단을 쭉 올라가버리시더라고요.

어? 그런데 정신 차리고 보니까, 아까 뒤로 꺾여 있었던 할아버지 팔이 제자리에 가 있고, 왼쪽 다리도 좀 절룩거리긴 했지만 아까만큼 마비된 것 같지 않고… 순간 이건 아닌데? 뭔가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할아버지를 붙잡고 혹시 아까 그 남자와 아는 사이시냐고 여쭤보고 싶었지만, 제가 머뭇거리는 사이, 이미 할아버지는 사라지셨지요.

아무튼 저는 너무 당황스러웠고, 맥이 빠진 채로 주머니에 휴대전화를 꺼내, 저를 기다리고 있을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놀란 친구는 얼른 제가 있는 곳으로 와줬고, 제 기분을 달래주며 밥도 사주더라고요.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깔깔거리며 놀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친구와 일찍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올 때, 친구가 차비하라며 만 원짜리 몇 장 주머니에 넣어줬는데, 그걸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자니, 더 기막히고 억울해서 화가 솟구치더군요.

사실 그 가방에 있던 지갑에는 친구 만난다고 큰 맘 먹고 인출했던 십만 원이 있었고, 친구에게 줄 생일 선물도 있었습니다. 친구가 생일이 지난 지 한참 됐는데, 제가 직접 얼굴 보면서 전해주려고, 갖고 있었거든요.

아무튼,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이런 마음을 이용해 나쁜 짓을 하다니… 그 사람들 참 나쁘죠? 전 쓰러진 할아버지 보면서 몸이 불편한 저희 친정아버지를 생각했을 뿐인데…
하여튼 그날 친구도 보고 왔는데, 하루 종일 너무 속상하고 우울했습니다.

경남 밀양시 윤미정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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