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의 리버스토크] 표절, 베끼든 말든 좋으면 그만이다?

입력 2009-11-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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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운드독’이란 일본 그룹이 있다. 80년대 중반 결성해 지금까지 20장 이상의 앨범을 발표한 중견 밴드다.

기자가 하운드독을 처음 안 것은 92년 여름, 일본 음악을 음반이나 방송을 통해 접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당시 신선한 캐릭터와 감각적인 영상으로 젊은 시청자의 인기를 모으던 드라마가 있었다. 이 드라마는 주제가 역시 대히트의 조짐을 보였다.

어느 날 한 독자가 하운드독의 ‘플라이’가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보내왔다. 놀랍게도 그때까지 듣도 보도 못했던 일본 그룹이 부르는 노래와 인기 절정의 그 드라마 주제곡은 너무나 똑같았다. 이후 기자의 기사를 비롯해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의혹을 제기했고, 결국 문제의 노래는 일부 소절을 수정해야 했다.

90년대 초만 해도 관련업계 사람 외에 일반 시청자가 다양한 해외 콘텐츠를 접하기는 정말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그처럼 우연치않게 표절 의혹을 접하는 순간 느끼는 충격과 배신감은 더욱 강렬했다.

92년 여름, 그 때도 마찬가지였다. 주제가에 이어 이번에는 드라마가 문제가 됐다. ‘트렌디 드라마’의 효시라는 91년 일본 드라마 ‘도쿄 러브 스토리’와 유사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인터넷 다시보기도, 드라마를 다운로드 할 수 있는 불법 P2P 사이트도 없었고, 시중에서 테이프를 사는 것도 불가능했다.

일본 통신원을 통해 어렵게 현지에서 발매된 ‘도쿄러브스토리’ 시리즈의 비디오 테이프를 국제특급우편으로 받았다. 그리고 일본어 잘하는 친구와 함께 이틀 밤을 꼬박 새며 테이프를 두 번 반복해 봤다.

당시 두 드라마를 비교하면서 너무나 닮은 캐릭터와 구성, 심지어 몇몇 부분은 구체적인 에피소드와 장면까지 똑같은 것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후 일본출장을 가거나 여행을 가면 한동안 숙소에 밤늦게까지 TV를 보며 우리 프로그램과 비슷한 것을 찾아본다고 잠을 설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주먹구구식인 정말 무식한 취재였다. 그 때와 비교하면 요즘은 정말 콘텐츠의 천국이다. 그런데 정작 표절 논란이 딱 부러지게 결론이 나는 경우는 오히려 별로 없다.

작업 과정에서 정당하게 ‘샘플링’을 했을 뿐이라고, 좋아하고 존경하는 아티스트여서 그 마음을 표시하는 ‘오마주’일 뿐이라고, 또는 자신이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패러디’를 한 것이라고 말하면 끝이다.

때로는 ‘비슷하게 들리거나 보일 뿐, 전혀 다른 것’이라며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뭘 모르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그리고 ‘맞다, 틀리다’라는 논쟁이 소모적으로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흐지부지 된다. 분명 정보는 넘치는데 진위와 옥석의 구별은 더욱 모호해졌다.

어찌 보면 표절 여부가 이제는 무의미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말처럼 가치 판단의 기준이 ‘옳고 그른 것’이 아닌, ‘좋거나 싫은 것’으로 바뀌어가는 상황에서 표절이든, 아니든 자기만 좋으면 그만이 아니겠는가.

엔터테인먼트부 부장 |oldfiel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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